4년만 맞짱 토론…바이든 ‘불안’, 트럼프 ‘절제’
서로에게 “최악의 대통령” 공격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첫 대선 TV토론에서 90분 내내 경제, 이민, 임신중지권, 우크라이나와 중동 전쟁 등 주요 현안에서 날 선 공방을 벌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토론 도중 발언을 머뭇거리는 등 불안한 모습을 연출하면서 최대 약점인 ‘고령 리스크’를 둘러싼 우려를 키웠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실관계가 틀리거나 논점을 벗어난 대답을 반복했지만, 이전보다 절제된 태도로 토론에 임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재대결하는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CNN방송이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 맞붙었다. 전·현직 대통령이 대선 토론회에 나란히 등장한 것은 미 역사상 처음이다.
토론 시작 전부터 둘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2020년 대선을 앞두고 9·10월에 열린 두 차례 토론 이후 4년 만에 토론 무대에 선 두 사람은 악수나 눈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첫 토론 주제인 경제 문제에서부터 두 사람은 정면으로 부딪쳤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재임기 실업률이 15%에 달했다면서 일자리 창출 등을 성과로 내세웠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우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제를 갖고 있었다”면서 “그(바이든)가 만든 일자리라고는 불법 이민자들을 위한 것뿐이었고 인플레이션은 우리를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임신중지 이슈를 놓고도 양측의 입장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재선되면 연방대법원이 폐기한 임신중지권 보호 판례인 ‘로 대 웨이드’를 복원하겠다면서 “국가가 여성의 건강 권리를 결정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며 “이 사람(트럼프)이 (여성들의 권리를) 빼앗아갔다”고 비판했다.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각 주가 임신중지 허용 여부를 판단하도록 한 연방대법원 결정을 지지한다면서 “민주당은 임신 9개월 이후에도 아기들의 생명을 죽이는데 이것이야말로 급진적”이라고 허위 주장을 했다. 다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법원의 경구 투입 임신중단약 합법화 결정에 대해서는 “대법원의 결정에 동의하고 이를 막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둘은 대선 최대 쟁점으로 부상한 이민 문제를 놓고도 설전을 벌였다. 그동안 거리낌 없이 이민자 혐오 발언을 쏟아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도 “바이든 대통령이 테러리스트에게 국경을 개방했다”면서 “불법 이민자들이 미국인들을 죽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에 최근의 멕시코 국경 폐쇄 행정명령을 언급하며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 사람들이 40%나 줄었다”고 반박했다.
우크라이나, 중동 전쟁 등 외교 문제에서도 둘의 입장 차는 뚜렷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행정부의 우크라이나 군사지원을 비판하며 “우리와 우크라이나 사이에는 바다(대서양)가 있다”면서 “왜 내가 한 것처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들이 더 많은 돈을 내도록 하지 않냐”고 말했다.
그러자 바이든 대통령은 “이 남자(트럼프)는 나토에서 탈퇴하고 싶어 한다”면서 “일본과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50개 다른 국가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데 그들은 이게 전 세계의 평화에 중대한 위협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은 우리를 3차 세계대전에 가까이 끌어들일 것”이라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이 그를 존중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토론 내내 서로를 “최악의 대통령”이라고 공격한 두 사람은 인신 공방도 벌였다. 바이든 대통령이 “오늘 이 무대에서 유일하게 유죄평결을 받은 중범죄자는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라고 하자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의 아들은 매우 높은 수준의 중범죄자로 유죄를 받았다. 조 (바이든)도 퇴임하면 그가 저지른 모든 일로 인해 중범죄자가 될 수 있다”고 맞받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사법당국의 기소를 “바이든의 선거 무기화”라는 기존 주장을 이어갔다. 또한 대선 결과에 승복할 것이냐는 진행자의 거듭된 질문에는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러진다면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조건부’ 승복 의사를 밝혔다.
이례적으로 양당이 전당대회를 통해 대선 후보를 확정하기도 전에 열린 이번 토론의 최대 관심사는 올해 81세인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 논란 대처 능력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나이 관련 질문에 “그가 물려준 끔찍한 상황에서 내가 이뤄낸 것을 봐달라”며 삼성전자의 대미 투자 등을 성과로 거론했다. 그러나 감기에 걸려 잠긴 목소리로 말을 더듬거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격에 멈칫하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이면서 민주당 일각의 후보 교체론에까지 불을 지폈다.
4년 전 토론에서 감정적인 모습을 보였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차분한 자세를 유지했다. 재임 시절부터 수많은 허위 주장을 해 온 것으로 유명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도 20여 차례 이상 사실과 다른 발언을 했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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