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동에 쓸 소고기 조달도 어려워져"…日엔화 구매력 '역대 최저'

방성훈 2024. 6. 2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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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 5월 실질실효환율 1970년 집계 이래 최저
엔화 구매력, 고점比 3분의 1…54년 전보다도 낮아
에너지·식료품 국제 가격 내려도 엔화가치 더 많이↓
수입물가 상승에…세대당 작년보다 77만원 더 부담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일본 엔화의 구매력이 역대 최저 수준을 또다시 경신했다. 미국 달러화 대비 엔화가치가 약 38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하락한 영향이다. 해외 의존도가 높은 에너지와 식료품 수입물가가 상승해 가계 부담을 키우고 있으며, 일부 품목의 경우 수입업자들이 아예 구매를 포기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사진=AFP)

28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에 따르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엔화의 실질실효환율 지수(2020년=100)는 5월 68.65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8월 기록한 역대 최저치(73.19)를 밑돈 수치다. 1995년 4월 역대 최고치와 비교하면 약 3분의 1 수준으로, 달러당 360엔으로 환율이 고정됐던 시기보다도 엔화가치가 하락한 것이라고 닛케이는 설명했다.

BIS는 약 60개 국가·지역을 대상으로 물가 변동 및 무역규모 등을 고려해 각 통화의 상대적인 가치를 평가한 뒤 실질실효환율 산출한다. BIS는 1994년 이후 데이터를 공표하고 있으며, 1970년부터 1993년까지 추계치는 일본은행(BOJ) 통계에 따른 것이다.

즉 54년 전보다도 엔화의 구매력이 낮아졌다는 의미다. ‘슈퍼 엔저’가 원인이다. 달러·엔 환율은 이날 오전 장중 한때 161.2엔까지 치솟아(엔화가치는 하락) 1986년 12월 이후 약 37년 반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유로화 대비로도 172엔을 넘어섰다. 1999년 단일통화인 유로화 도입 이래 최저치(172.15엔)에 근접한 수준이다. 호주달러 대비로도 2007년 이후 가장 낮다.

엔화의 구매력 저하는 BOJ의 기업물가지수에서 확인할 수 있다. 5월 수입물가지수는 엔화 기준으로 전년 동월대비 6.9% 상승한 반면, 미 달러화 등 계약통화 기준으로는 3% 하락했다. 국제 제품 가격이 하락해도 엔화가치가 더 많이 떨어져 가격 인하에 따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해외 의존도가 높은 에너지 및 식료품에서 두드러진다. 달러화로 거래되는 동남아시아산 바나메이 새우(흰다리새우)의 경우 국제 시세는 하락했지만, 일본에서 수입하는 가격은 되레 높아졌다.

일본식 소고기 덮밥인 규동에 쓰이는 소고기 조달도 어려워졌다. 주로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해 쓰고 있는데, 엔저 때문에 1년새 30% 가격이 급등했다. 이에 올해 1~4월 미국에서 소고기 수입량이 전년 동기대비 20% 줄었다. 한 수입업자는 “수입 과정의 비용 문제까지 고려하면 구매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며 “해당 물량은 다른 국가에서 사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앞서 닛케이는 엔저 때문에 학교 급식에서도 소고기 관련 메뉴가 사라지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칠레산 포도, 스페인산 냉동 돼지고기도 비슷한 상황이다. 회전초밥 가게에서는 연어가 저품질 생선으로 교체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햄을 생산하는 한 중소업체는 “수입 가격이 너무 올랐다. 재고로 버티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재고도 금방 소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입물가 상승은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쳐 가계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 미즈호 리서치 앤드 테크놀로지스에 따르면 달러·엔 환율이 160엔이라고 가정했을 때 수입물가 상승에 따른 세대당 재정 부담은 1년 전보다 9만엔(약 77만원)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개인소비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닛케이는 “인플레이션 때문에 명목임금이 늘어도 실질소득은 줄어들고 있으며 이는 작년 2분기부터 개인소비를 위축시키고 있다”며 “근로자부터 고령자까지, 고급 식자재부터 일반 소비품까지 절약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과거와 달리 엔저는 수출업체의 가격경쟁력 강화 측면에서도 긍정적 효과가 크지 않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실례로 수출수량지수는 최근 12개월 평균 105를 기록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수출이 급감했던 2021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신문은 “생산기지의 해외이전 등으로 엔저에 따른 수출량 증가나 일본 경제를 밀어올리는 효과는 더이상 기대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방성훈 (ba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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