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김정은 회동이 촉발한 한국 핵무장론, 현실성 있나 [ 쓴소리 곧은 소리]
한미 간 확장 억제력이 위협받으면 핵개발 촉진하는 ‘임계 영역’ 들어갈 수도
(시사저널=박노벽 전 주러시아 대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파장이 한반도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6월19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평양에서 김정은을 만나 북한과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에는 유사시 러시아가 북한에 군사적 지원을 지체 없이 제공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푸틴 대통령은 한국이 북한을 침공할 계획이 없다는 점을 들어 "이 조약상 군사원조는 오직 침공, 즉 군사적 공격이 있을 때 적용되기 때문에 한국은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사 사태는 공격과 방어를 구분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정치적 대립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이러한 설명은 설득력이 크지 않다.
핵무장 찬성론·반대론·유보론 공존
일단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지원하는 대가로 유사시 러시아의 다양한 지원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은 핵무기로 무장한 두 개의 세력과 마주하게 되었다. 러시아와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 나갈지 고민해야 하는 기로에 놓여 있다. 미국 측 인사마저도 러시아와 북한 간 군사적 관계 심화는 한국이 핵무장 방향으로 내몰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국내에는 자체 핵무장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 찬반론과 유보론이 존재한다. 핵무장 반대론자들은 핵무기 보유가 경제·안보적으로 실익이 없고, 한미 동맹과 국제 비확산 체제(NPT)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하며 또한 북한 핵무력의 취약성과 방어적 성격을 지적한다.
반면, 핵무장 지지론자들은 미·러, 미·중 간 안보 대립과 핵무기 경쟁 가열,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등 핵 위협 확대 추세, 미국의 국제 분쟁 개입 한계로 인해 확장 억제 신뢰도 약화 등을 이유로 핵무장 추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최근 러·북 간 조약 체결로 군사 지원이 공식화되면서 핵무기 개발론이 더욱 힘을 받고 있다.
국내 언론과 연구기관이 자체 핵무장 등 대안 검토가 필요하다고 문제를 제기한 데 대해 우리 국방부는 "핵무장을 검토한 것은 없으며 한미 간 확장 억제로 북한의 핵미사일 등에 대응하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한미 군사·안보 당국은 워싱턴 선언에 따라 확장 억제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 핵협의그룹을 발족시켜 핵 운용에 관한 군사 정책적 협력을 강화해 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주한미군의 주둔 자체가 미국의 확장 억제 실행 의지를 확인해 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일리가 있는 주장이지만 확장 억제가 그 자체로 작동하려면, 구체적 행동계획이 담보되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한미 당국은 동맹인 한국과 미국에 대한 동시 공격 발생 시 미국 일부 또는 전역이 외부의 핵 공격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어느 쪽을 선택하지 않고 즉각 대응하는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한편, 확장 억제의 계획 실행 시 최종 핵 사용 여부는 미국 대통령이 결정권을 갖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존치 여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바 있어, 만약 그가 11월 대선에서 당선된다면 확장 억제에 대한 정치적 재확인이 필요해질 것이다.
국내에는 북한 핵무기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이 제기되어 왔다. 한미 확장 억제 외에 미국의 전술핵 배치를 통한 나토식 핵공유, 자체 핵무장, 잠재적 핵능력 구비 등이 주로 거론된다.
먼저, 미국의 전술 핵무기를 한국에 배치해 북핵을 억제하자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미국은 전술 핵무기가 전장용 무기라는 점에서 재래식 무기로도 효과적으로 군사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보고 러시아와는 달리 보유분을 감축해 왔다. 앞으로 어떤 정책을 취할지는 불확실성과 한계가 존재한다. 또한, 중국 등 주변국들은 전술 핵무기의 한국 배치가 미국 통제하에 있다는 점에서 중국이나 러시아를 겨냥하는 것이라고 간주하며 강하게 반대할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주러시아 대사로 근무할 때 사드 배치에 대한 러시아의 정치적 반대에 대응했던 바에 비추어볼 때, 미국의 전술핵 배치는 사드 배치 이상의 거센 반발에 대처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고 있어 국제 안보 상황은 계속 유동적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 양상에 따라 전술핵 사용 가능성을 내비친 바 있고 핵무기 사용의 문턱을 낮추는 방향으로 내부 지침을 변경하고자 한다.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고도 정밀무기나 기술까지 받아 우리와 미국 본토를 타격할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근거를 가진 만큼, 이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문제를 넘어 한미 간 확장 억제력 운용에 심각한 위협을 주게 된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핵무기 개발을 촉발하는 임계 영역(trigger zone)에 진입하게 하는 압박이 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 미국과 사전 대비 방안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전술핵 배치엔 중·러 거세게 반발할 것
한편, 첨단 재래식 무기 기술을 활용한 대응 방안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위성, 센서 네트워크, 스텔스 항공기 등 감시 기술의 고도화로 재래식 무기의 대응력이 강화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적대 세력의 움직임을 정확히 감시하고 대응할 수 있는 무기 체계의 발전으로 상대방의 핵 사용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전략적 성격의 핵무기와는 차이가 있는 전술적인 분야로 평가된다. 일정 기간 핵 선제공격을 저지하는 정도로 재래식 첨단 무기에 의한 잠정적인 대응 역량으로 간주된다.
잠재적 핵능력이란 전력 생산을 위한 원전 연료 생산에 필요한 농축이나 폐기물 처리와 관련한 재처리 능력을 지칭한다. 일본의 원전 산업 사례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원자력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차원의 활동이며 핵무기 개발과는 철저히 별개의 문제로 다루어야 한다. 우리의 농축, 재처리는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원자력의 효율적 유용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어 산업·과학적으로 우리에게 긴요해지고 있다. 우리 정부는 북핵 도전 대처와는 별개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차원에서 농축이든 재처리를 추진하려면 이에 대한 내부 정책 결정을 먼저 내려야 한다. 아울러 원자력 이용에 대한 신뢰와 협력 강화를 위해 동맹인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 되든 정치적 이해와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고위급의 외교 노력은 상시 필요할 것이다.
국내 정치권 일각에서 핵보유 추진 입장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단순히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미국을 설득할 뿐만 아니라, 일관성 있게 추진할 초당적 공감대를 확보해야 하며 이를 실현시킬 의지를 얼마만큼 갖고 있느냐는 게 문제가 된다. 핵 문제 논의와는 별도로 외교안보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 경주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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