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풀이로 무슨 비빔밥이냐고? 먹어보고 말을 혀”

송인걸 기자 2024. 6. 2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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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논산 팔도식당 돌솥콩나물무밥
콩나물과 무가 가득한데도 돌솥밥이 고슬고슬하다. 송인걸 기자

“덥쥬? 일 고만허시고 속 풀러 가유.”

낮이 연중 가장 길다는 하지였다. 충남 논산 양촌면에 들어선 집속탄 공장 취재차 논산시청에 출장을 갔다. 한창 취재하는데 홍보실 김효 주무관이 팔을 잡아끈다.

“술도 안 마셨는데 무슨 속을 풀어? 취재해야 되아.”

“늦으면 한참 지둘려야 헌다니께유. 을른 가유.” 김 주무관이 거듭 채근했다.

“왜이랴, 일부러 그러는겨? 내가 양촌에 취재 오면 홍보실 혼나는 날이라서? ”

“아이구, 서루 헐 일 하는 거쥬. 혼날 때 혼나드래두 속은 풀어야쥬.”

기자와 기관 홍보 담당자 관계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고 한다. ‘가까이 지내면 타죽고 멀리 거리를 두면 얼어 죽으니’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가 좋다는 해석도 있다. 논산은 최근 양촌면에 방위산업체인 케이디인더스트리(KDind)사가 집속탄 공장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주민이 시와 업체의 편법 동원 등 짬짬이 의혹을 제기해 갈등을 빚고 있다. 한겨레는 집속탄 공장 건설 관련 의혹을 잇따라 보도했다. 국방수도를 목표로 국방 산단을 조성하고 업체를 유치하는 논산시 입장에서는 한겨레가 눈엣가시일 터이다.

이날도 한 논산시 관계자가 “인구 줄어드는 마당에 미래 먹거리 만들다 보니 좋은 회사만 유치할 수 있냐”고 항변하기에 “논산 딸기가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은데 같은 지역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생산한다고 하면 수출이 되겠나, 이게 미래 먹거리냐?”고 대꾸했더니 눈초리가 곱지 않았다.

김효 논산시청 홍보실 주무관이 21일 낮 팔도식당 파란 대문을 들어서고 있다. 송인걸 기자

차로 10여 분을 달려 연무읍 동산리 연무복지회관 앞 주차장에 도착했다. 식당이 없다. 걸어서 가야 하나보다 생각하는 데 서너 걸음 앞서가던 김 주무관이 반쯤 열린 파란 대문 집으로 쑥 들어간다.

‘팔도 보리밥, 돌솥콩나물밥, 돌솥무우밥’

대문 위에 간판이 없다면 밥집인지 모르고 지나칠 것 같았다. 간판은 빨간색인데 세월이 쌓여서인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김 주무관을 따라 대문을 들어섰다. 안뜰은 나이 지긋한 청단풍나무와 상추, 대파, 콩, 고추, 호박 등이 자라는 텃밭이 있다. 안채로 이어진 통로는 묘목 티를 갓 벗은 작은 간지럼 나무, 익모초, 꽃송이 무게가 버거운 장미가 자란다. 연무대도 제법 도회지인데 대문 하나 넘으니 순간이동을 해 시골집에 온 것 같다. 오래전 와본 것 같이 마음 편하게 식당 문을 열었다.

“어서 오셔유. 두 분?”

실내는 식탁 다섯개에 작은 주방이 전부다. 식탁, 의자, 벽, 천장 모두 낡았는데 정갈했다. 60대 부부가 옆 식탁에서 누룽지로 식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수저 놓기를 기다려 아저씨에게 말을 붙였다.

“단골이신가 봐요?”

“오래 다녔쥬.”

“이 집 음식 맛이 어떻기에 자주 오세요?”

“그러니께 음~ 맛이 좋으니께 오는 거쥬.”

아주머니가 거들었다. “건강하고 편안한 맛이쥬.”

지켜보던 김 주무관이 웃으며 말했다. “곧 나와요. 드셔 보면 알 수 있어요.”

뭘 시켰냐고 되물었더니 이 집은 메뉴가 ‘돌솥콩나물무밥’ 한가지란다. 간판에는 세가지였는데…

충남 논산 연무읍 팔도식당에서 지난 21일 주인 양귀자씨가 돌솥콩나물무밥을 차리고 있다. 송인걸 기자
원통형 돌솥밥 뚜껑이 눈길을 끈다. 송인걸 기자

주인 양귀자(62)씨가 호박나물, 열무김치, 고사리, 무생채, 도라지, 달걀 프라이를 내왔다. 된장찌개와 고추장, 간장 양념장에 이어 돌솥밥과 대접이 상을 채웠다. 돌솥 뚜껑이 원통형이다. 마치 튀르키예 전통모자 페즈처럼 생겼다.

돌솥에 차있던 김이 빠지니 밥 위에 콩나물이 수북하다. 대접에 밥을 푸는데 ‘오호라’ 콩나물 밑으로 무가 수북하다. 메뉴를 하나로 합친 것 같다. 이래서 콩나물무밥이라고 부르나 싶었다. 콩나물과 무를 삶았는데도 밥이 고슬고슬하고 쫄깃쫄깃했다. 밥을 푸고 나물들을 넣고 반만 양념장으로 비볐다.

비빔밥 한입 물고 묵은 된장찌개 한 스푼을 더했다. 심심하던 맛이 점점 선명해지고 교묘하게 조화를 이뤘다. 고사리가 씹히는가 싶으면 도라지가 씹히고 고슬고슬한 밥알은 아삭아삭한 콩나물과 무에 섞여 구수했다. 왜 손님 아주머니가 ‘건강하고 편안한 맛’이라고 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표정을 살피는 김 주무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반 남긴 밥에 같은 재료를 넣고 고추장으로 비볐다. 맛이 강할 것 같았는데 첫맛은 역시 심심했다. 무엇으로 비빌지는 각자의 취향일 뿐. 수저로 대접 긁는 소리가 났다. 밥상을 차린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우리는 반찬은 물론 구수한 누룽밥 국물까지 남기지 않았다.

식당안이 한가해지기를 기다려 주인장을 찾았다.

팔도식당 안뜰 텃밭. 송인걸 기자

“조미료 안 쓰시죠?”

“조금씩 써유. 안 쓰면 맛이 안 나니께.”

“집된장이죠?”

“산 된장이유. 직접 못 담가유.”

난감해하는 분위기를 눈치챈 양씨가 “엄마 손맛을 흉내 내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려고 했을 뿐인데 많은 분이 좋아해 주신다”고 말을 이었다. “잘 담그는 집에 맞춰서 된장 맛이 지퍼유. 식재료는 텃밭서 키운 걸 쓰고 시장에 가서 사기도 허쥬.”

팔도식당 안뜰 풍경. 송인걸 기자

팔도식당이 문 연 지는 약 25년, 그가 이 식당을 운영한 것은 3년 전이다. 그는 아는 언니가 주인이었는데 계속 문 열 형편이 안되니 해보라고 해서 인수했다고 했다. 평소 손맛이 좋다는 칭찬을 듣던 터라 용기를 내어 식당을 맡았다. “애들이 학교 댕길 적인디, 어느날 아들이 그래유. ‘도시락 먹는데 반 애들이 전부 엄마 반찬이 최고 맛있다고 한다’고. 지금도 도시락 반찬 하듯 나물을 무쳐유.”

실제 그가 준비하는 하루 음식량은 20여명분 정도로, 잊지 않고 찾아주는 단골들에게 내놓기 위한 것이란다. 돈 많이 벌고 싶지만 세상일이 욕심 낸다고 되는 건 아니라고 덧붙였다. 돌솥밥 1인분에 8천원을 받는다. “혼자 하는 작은 식당이고 언니가 수십 년 동안 정성을 다해 입소문이 났으니 단골손님 입맛에 맞추려고 최선을 다하쥬. 돌솥콩나물무밥은 소화가 잘되니 속 편해지고 싶을 때 언제든 오셔유.”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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