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잘 지키는 김희선이 배우로 사는 법
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신세대와 기성세대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명확한 구분은 어렵다.
하지만 꽤 설득력 있는 주장이 있다. 내가 어릴 적 유행하던 아이템이 다시 유행하기 시작한다면 한 사이클 돌았다, 즉 세대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배우 김희선은 기성 세대다. 그가 과거 드라마 '미스터 큐'나 '토마토'에서 유행시킨 '곱창 밴드'가 다시금 눈에 띈다. 게다가 MZ세대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블랙핑크 제니나 아이유가 이를 착용한 모습이 포착됐다. 20여년 전에는 김희선이 그 시대의 제니이자 아이유였다.
'김희선이 이제 기성세대가 됐다'는 말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X세대를 주름답던 그는 MZ세대가 주축이 된 2024년에도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물론 20년 전과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통해 '꼰대'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시계를 1990년대로 돌려보자. 김희선은 고교 시절인 1992년 '고운 얼굴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후 광고업계의 러브콜을 받았다. 이후에는 SBS '인기가요'의 MC를 맡았다. 지금도 내로라하는 K-팝 스타들이 음악순위프로그램의 MC로 나서듯, 당시 신인이자 최연소로 '인기가요'의 안방마님 자리를 꿰찬 김희선은 1990년대의 아이콘이었다.
이후 김희선의 필모그래피는 '배우'로 꽃을 피운다. 그에게 '인기가요'를 맡겼던 SBS는 드라마 '공룡선생'에 김희선을 발탁한다. 그 후 김희선은 탄탄대로를 걸었다. '드라마의 대모'라 불리는 김수현 작가의 '목욕탕집 남자들'에서 발랄한 청춘의 표상을 보여줬다면 이후에는 각종 트렌디 드라마를 휩쓸었다. 김민종과 함께 했던 '미스터큐'를 비롯해 '토마토', '프러포즈', '해바라기', '세상 끝까지', '슬픈 연가' 등 제목 만으로도 향수를 자극하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김희선이었다. 남자 배우는 달랐다. 김석훈, 류시원, 안재욱, 송승헌, 권상우 등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이들에게만 김희선의 옆자리가 허락됐다.
김희선은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 배우다. 그러면서 김희선은 업계의 불문율을 보기 좋게 깼다. 연예계에서는 '결혼은 무덤'이라는 선입견이 강했다. 특히 여성 연예인들에게 더욱 가혹하게 적용됐다. 결혼과 동시에 외국으로 떠나는 경우도 적잖았다. 그래서 한 때 유명 여성 연예인들의 단골 신랑감이 '재미 교포'였다. 실제로 결혼과 동시에 작품 러브콜이 줄고 대중과의 접점이 약화됐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결혼 후 활동 의지를 줄이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김희선은 달랐다. 그는 2007년 락산그룹 회장의 차남인 사업가와 결혼했다. 이후 김희선은 출산과 육아에 전념했다. 그렇게 6년이 흘렀다. 그 사이 김희선은 30대 중반이 됐다. 하지만 그의 컴백작인 사극 '신의'의 상대역은 역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배우 이민호였다.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등 전설적인 드라마를 남긴 고 김종학 PD가 '신의'를 연출하며 김희선을 택했다는 것은 꽤 상징적이었다. 결혼과 출산 같은 개인사가 배우의 커리어를 꺾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여기서 김희선은 한 발 더 나아간다. 더 이상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을 고집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많은 여배우들이 꺼리는 '엄마'를 자처했다. 2015년작인 '앵그리 맘'이 대표적이다. '일진' 출신 엄마가 딸을 위해 발벗고 나서는 이야기였다. 분명 엄마 역이었지만 '엄마 같지 않다'는 평이 이어졌다. 극 중 김희선은 교복 연기에 도전했고, 이질감이 없었다. 엄마의 영역으로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면서도 자신의 건재함은 유감없이 발휘한 셈이다. 이후에도 재벌가 며느리로 분한 '품위있는 그녀'를 비롯해 '앨리스' 등에서 엄마 역을 맡으며 나잇대의 맞는 역할을 맡아 호평받았다.
그리고 김희선은 현재 MBC 드라마 '우리, 집'에 도전 중이다. 이번에는 가족 문제 상담의 1인자로 국민적 인기를 끄는 심리상담의 노영원 역을 맡았다. 재건성형의 대가인 의사 남편, 부유한 시부모, 거기에 잘생긴 모범생 아들까지 둔 캐릭터다. 설명만 놓고 봤을 때는 '주인공의 엄마'쯤 되는 주변 인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야기는 김희선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결국 김희선의 행보는 '드라마 주인공의 변천사'로 볼 수도 있다. 그가 20∼30대일 때는 젊은 선남선녀를 중심에 둔 로맨틱코미디가 대세였다. 세상이 그들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김희선이 40대가 되면서는 '엄마'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드라마가 많아졌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만, 김희선은 스스로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김희선은 그의 필모그래피에 토크쇼를 더했다. tvN '밥이나 한잔해'에서 방송인 이수근, 이은지, 그룹 더보이즈 영훈 등과 공동 MC를 맡고 있다. 멤버 중 유일하게 배우다. 하지만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털털함과 솔직함을 담당한다. 사생활을 털어놓는 데도 주저함이 없다. 과하지도 않다. 나이를 먹으며 '선'을 넘으면 주책이란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김희선은 그 선을 잘 지킨다. 엄청난 장점이자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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