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뜻미지근[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2024. 6. 2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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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음식점에 갔더니 음식에 대한 설문조사가 있기에 답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설문 문항 중 하나가 '찬 음식은 차갑게, 뜨거운 음식은 뜨겁게 나왔는가?'여서 의아한 적이 있다.

'뜨뜻미지근'은 음식이나 사람에 쓰이면 결코 좋은 뜻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바로 차려낸 음식상이 아니면 우리가 대하는 음식의 상당수는 뜨뜻미지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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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음식점에 갔더니 음식에 대한 설문조사가 있기에 답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설문 문항 중 하나가 ‘찬 음식은 차갑게, 뜨거운 음식은 뜨겁게 나왔는가?’여서 의아한 적이 있다. 뭐 이런 당연한 것을 묻나? 밥, 찌개, 국, 탕은 따뜻해야 하고 나물이나 김치는 차가워야 한다. 맥주는 시원해야 하고 청주는 따뜻하게 데워 먹으면 좋다. 만드는 이, 봉사하는 이, 먹는 이 모두가 감각적으로 아는데 굳이 묻다니.

그런데 한때 존경하던 이가 정치인이 된 이후의 모든 여정이 뜨뜻미지근한 것을 보고는 이 설문이 다시 생각났다. ‘뜨뜻미지근’은 ‘뜨뜻하다’와 ‘미지근하다’의 말뿌리만을 가져다 다시 합친 것이다. 두 단어의 온도를 따지자면 ‘뜨뜻’ 쪽이 조금 높은데 여기에 ‘미지근’이 결합돼 묘한 느낌을 준다. 이 결합이 가리키는 온도를 정확히 수치화할 수는 없겠지만 체온보다는 좀 낮고 좀 더 따뜻하면 좋을 듯한 딱 그 정도의 온도일 것이다.

우리 밥상의 필수품인 숟가락의 용도는 무엇일까? 젓가락은 반찬을, 숟가락은 밥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아니다. 숟가락은 국물, 그것도 뜨거운 국물을 위한 것이다. 유난히 발달한 국물음식, 그것은 뜨거워야 하고 ‘탕’이란 이름이 붙었으면 식탁에서도 펄펄 끓어야 한다고 믿으니 숟가락은 필수이다.

‘뜨뜻미지근’은 음식이나 사람에 쓰이면 결코 좋은 뜻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사랑을 하려면 화끈하게 해야 하고 일을 처리할 때도 확실히 결단을 내려야 하는데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뜨뜻미지근이다. 그런데 가늘고 긴 이 정치인의 생명력을 보면서 음식도 다시 생각해 본다. 뜨거운 것은 금세 식어 미지근해진다. 차가운 것 또한 상온에 두면 미지근해진다. 바로 차려낸 음식상이 아니면 우리가 대하는 음식의 상당수는 뜨뜻미지근하다. 그러나 불꽃처럼 뜨겁지는 않더라도 ‘미지근’보다는 ‘뜨뜻’에 가까워야 한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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