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메가 캐리어' 탄생전야 불안한 풍경들
대한항공은 4년 가까이 끌어온 아시아나항공 인수 작업이 '9부 능선'을 넘었다고 자평한다. 기업결합 승인이 필요한 세계 14국 가운데 가장 까다로워 보였던 EU의 승인을 지난 2월 조건부로 얻었고 이제 미국만 남았다는 것이다. 대한항공은 이르면 오는 10월 경 미국도 기업결합을 승인할 것으로 기대한다. 작년과 올해 유럽 에어버스 항공기 50여 대를 주문한 데 이어, 최근 미국 보잉 것도 30여 대 사들이겠다고 시사하는 등 적잖은 '합병 비용'을 치렀기에 갖는 자신감이란 시각이 있다.
20년 11월 아시아나 인수 발표 당시 대한항공은 "항공 소비자의 노선과 스케줄 선택 폭이 넓어지고 편익이 향상될 것"이라고 밝혔다. 양대 국적 항공사 합병으로 독과점이 심화해 소비자 후생이 저하되는 일은 없을 거란 공언이었다. 하지만 합병이 채 완성도 안 된 상태에서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벌써 많은 우려를 낳는 중이다. SBS는 최근 이른바 '메가 캐리어' 탄생을 앞두고 잇따라 드러난 '항공 난맥상'을 집중 보도해 왔다. 대한항공을 대신해 유럽에 취항하는 저가항공사의 잦은 출발지연과 사고, 소비자 피해는 안중에 없는 대한항공의 일방적 유럽 노선 예약 취소, 급기야 벌어진 대한항공의 안전사고가 그것이다.
▶ 오사카행 티웨이 항공편 11시간 넘게 지연…승객들 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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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sbs.co.kr/d/?id=N1007683409] (6/14 모닝와이드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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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sbs.co.kr/d/?id=N1007683409]
▶ [단독] 휴가 코앞인데…대한항공 '일정 변경' 일방 통보 (6/19 8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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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독] 타이완행 대한항공 737맥스-8 긴급 회항…"3명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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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sbs.co.kr/d/?id=N1007694155]
▶ 타이완행 대한항공 긴급 회항…보잉737 맥스8기종 (6/22 8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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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완행 대한항공 항공기, 기체 결함에 긴급 회항 (6/23 SBS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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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롤러코스터처럼 급하강"…대한항공 항공기 긴박했던 회항 당시 (6/23 8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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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부 기압' 장치 이상으로 급강하…'전수 점검' 지시 (6/23 8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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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독] '급강하' 회항 대한항공…'정비 불량'에 무게 (6/25 8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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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보도 뒤 국토교통부가 항공사 '특별 점검'에 나섰다. 항공 주무 부처로서 당연하고 다행한 일이지만 문제 해결로 바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결과를 봐야 한다.
국토부는 우선 일주일 새 운항지연 사고만 5번 일으킨 티웨이항공에 7월까지 안전대책을 마련해 보고하라고 했다. 티웨이는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의 정당성을 따지는 척도가 된다. 최대 국적 항공사를 대체할 역량을 입증해야 한다. 승객 안전보다 유럽 당국에 약속한 취항 횟수를 지키기 위해 무작정 비행기부터 띄울지 모른다는 우려를 불식해야 한다. 유럽을 우선한 항공사에 의해 오사카행 승객들처럼 영문도 모른 채 몇 시간씩 비행기에 갇혀 출국이 늦어지는 일이 벌어져선 안 된다.
휴가철을 앞두고 일방적으로 유럽 노선을 줄줄이 취소한 대한항공은 "소비자를 보호하라"는 국토부 지시에 보상 방안을 내놨다. 출입국 일정 변경에 따라 소비자가 지출한 '비용'을 '입증'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대한항공 책임이 아니라 보상할 수 없다"던 기존 입장에서 한 발 나아간 점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여전히 운항 취소 계획이 모든 소비자에게 전달 안 돼 불편을 겪는 예약자들이 지금도 나타나는 중이다. 유럽 주요국에 비슷하게 취항해 온 아시아나 표를 구매해 승객을 내보내는 것에도 한계가 있어 많은 예약자가 결국 출입국 일정을 조정해야 할 판이다. "소비자를 보호하라"던 국토부 지시가 무색해졌다.
최근 대한항공 안전사고는 국토부 특별 점검 뒤 벌어졌다는 점에서 더 문제다. 타이완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여객기가 여압장치 이상으로 6,000m를 급강하하고 회항한 사건이다. 고도를 급히 낮추는 과정에서 2명이 코에서 출혈을 일으키고 과호흡과 고막 통증 환자가 발생하는 등 모두 18명이 다쳤다. 특별 점검 직후 발생한 사고에 국토부는 급히 국적 항공사 11곳에 여압 체계 점검을 지시했다. 박상우 장관이 직접 대한항공을 찾아 안전 강조도 했지만 영(令)이 안 선 모양새가 된 건 사실이다. 휴가철을 앞두고 항공 안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사고 원인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밝힐 예정이다. 여압 상실에 따른 비상강하는 ICAO(국제민간항공기구)도 준사고로 분류하고 있다. 엄격한 조사가 불가피하다. 제조사 보잉이 사전에 해당 기종의 여압 기능 문제 발생 가능성과 함께 정비 방안을 알렸던 만큼 지금까진 대한항공의 '정비 불량'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다만 특정 장치에 문제가 생겼다고 중요한 여압 기능을 순차적으로 모두 먹통 되게 만들고, 이런 이슈를 구매자에게 그저 '통지'하는 데만 그친 보잉엔 문제가 없는지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여압 기능은 회항하는 동안 결국 '복구' 된 것으로도 전해지는데, 과연 사고 당시 조종사의 급강하는 무조건 승객 목숨을 구하는 빠른 영웅적 판단으로만 봐야 하는 것인지도 관건이다.
항공 전문가 가운덴 정비 분야의 열악해진 노동 조건에 주목하는 이가 많다. 코로나 때 숙련 인력이 대거 이탈한 뒤 새로 채용된 젊은 직원들 위주로 강도 높은 노동을 하고 있다는 거다. 실제로 직장인 익명 게시판 앱에는 "요즘 큰 사고가 나기 전 징조들이 너무 많이 보여 걱정" "한계에 다다랐다" "정비사가 한 사람 몫을 하려면 최소 5년, 넉넉히 10년은 돼야 판단도 하고 작업도 하는데 인력계획이 주먹구구"라는 등 사전에 문제를 경고해 온 정비사들의 토로가 가득하다. 이들 정비사들은 사내 승진에서도 후순위로 밀리는 일이 다반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계에 봉착했다는 대한항공 정비사들에게 국토부는 최근 "티웨이를 도와주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대형 항공사가 시장을 독식할 때 안전 경쟁에 둔감해지고 소비자 불편이 늘어날 수 있다는 건 상식선에서 누구나 제기할 수 있는 의문이었다. 다른 분야도 아닌 항공이어서 모든 피해는 꼼짝없이 온 국민이 지기 마련이다. 국토부는 '메가 캐리어' 지원을 통한 산업경쟁력 강화라는 허울에 매몰돼 항공사 감독에 실패한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벌써 현장에선 "국토부 감독관이 온다고 하면 회사 정문에서부터 '의전' 하느라 더 바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별 점검' '전수 점검' 등 쏟아낸 대책이 보여주기 식에 그쳐선 안 될 것이다. 1억 명 넘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인 만큼 철저한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
노동규 기자 laborstar@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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