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화’된 몸짓… 무대 위에선 평등하다[북리뷰]

신재우 기자 2024. 6. 2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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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
김원영 지음│문학동네
뇌성마비 · 언어장애의 백우람
특유의 굵은 목소리로 큰 울림
휠체어 탄 발레 무용수 김원영
무대에 삶의 흔적 당당히 표현
‘기는 동작’ 비장애인과 차별화
다르지만 ‘동등한 힘’ 주목해야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의 저자 김원영이 공연 ‘현실원칙’에서 회색 바닥에 내려와 바닥에 손을 짚고 허리를 비트는 안무를 선보이고 있다. 책을 통해 저자는 춤의 역사에서 장애가 있는 몸이 다뤄지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옥상훈 작가·KIADA2023·문학동네 제공

김원영은 무대에 오르는 것이 아닌 내려오는 무용수다. 골형성부전증으로 걷지 못하는 그는 공연장에서는 휠체어에서 내려와 두 팔로 기어서 움직이는가 하면 팔에 온 힘을 집중해 아름다운 움직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신체가 부각되지 않을 수 있는 변호사의 삶을 그만두고 그는 실제 무대를 택했다. 이 책의 저자이자 ‘실격당한 자를 위한 변론’, 김초엽 작가와 함께 쓴 ‘사이보그가 되다’를 통해 장애에 대해 확장된 시선으로 다뤄온 그가 이번에 주목한 것은 몸. “효율적이고 빠르고 균형 잡힌 몸”은 아니지만 한 명의 무용수로서 그는 공연을 통해 몸을 바라보고 몸에 대해 말한다.

공연 무대는 우리 사회에서 ‘몸’에 대해 가장 냉정한 곳 중 하나다. 신체적 조건이 무엇보다 우선시되고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시험대인 만큼 오랜 기간 이곳은 건장한 몸을 가진 이들이 활개 치는 장소였다. 이 무대에 장애인 예술가들이 오른 초창기 사례는 영화 ‘위대한 쇼맨’을 통해서도 소개된 바 있는 ‘프릭쇼’다. 영화에서 다뤄진 것과 같이 19세기 미국에서의 프릭쇼는 전형성에서 벗어난 이들을 ‘전시’하는 방식을 통해 대중에게 이들을 소개했다. 키가 1m도 되지 않는 청년과 얼굴에 털이 난 여성, 서커스 단원 등 배우 휴 잭맨이 연기한 공연기획자 피니어스 T 바넘은 우연히 마주친 기이한 외형을 가진 이들을 모았다. 그러나 영화와 달리 바넘은 ‘프릭’의 몸을 가진 이들을 진정으로 무대의 주인공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그는 서로 다른 평균, 보통, 정상과 대비되는 ‘타자’를 통해 관객인 미국의 중산층에게 “정상적 미국인의 자아 정체성”을 갖는 만족감을 주었고 공연자들은 이들을 위한 비교 대상에 가까웠다.

전형적이지 않은 신체 외에도 공연 문화에서 소수자는 인종에도 해당했다. 일본의 가와카미 사다야코는 남편인 오토지로와 함께 일본의 전통극인 가부키로 1899년 미국에 최초 진출했다. 이들은 남자배우가 여자 역할을 맡는 기존의 가부키가 아닌 서양인들의 관심을 끌 만한 여성 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서는 형식을 강요당했고 졸지에 서양에서 원하는 일본인의 할복 내용까지 공연해야 했다. 서양 무대에 진출한 동양의 공연 예술은 “새로운 현상이라기보다는 19세기 중반부터 형성된 동양에 대한 유럽인들의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무대는 어떤가? 저자는 ‘극단 애인’에서 활동하는 배우 백우람과 하지성을 소환한다. 이들은 뇌성마비와 언어 장애가 있다. 백우람은 대사가 명료하게 들리지는 않지만 특유의 굵고 큰 목소리와 깊이 있는 표정으로 수차례 비장애인 배우와 함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들판에서’ 등의 공연을 펼치고 있다. 하지성은 저자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낸 배우다. 지난해 제59회 백상예술대상에서 그는 연극 ‘틴에이지 딕’으로 연극 부문 연기상을 수상해 저자가 생각했던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냈다. 전동휠체어를 탄 그가 손을 위로 치켜들고 무대로 나가 외친 말은 다음과 같다. “연극을 한다고 하니 현실을 생각하라던 아버지, 이것도 현실이에요!”

공연계에서 평등에 가장 다가선 것은 관람의 기회다. 1998년 공연장이나 영화관 등에 휠체어 관람석이 마련되는 법적 근거가 생겼고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고려해 해설이 포함된 문화 콘텐츠가 ‘배리어프리’(노인과 장애인 등의 약자가 큰 어려움 없이 접근할 수 있는 문화예술 콘텐츠)라는 표현과 함께 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무용수로서 ‘평등’은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저자가 책을 통해 단칼에 “(무용수로서의) 자격은 평등하지 않다”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는 기회의 평등이 아닌 ‘몸’의 평등에서 비롯된다. 김원영은 자신에게 발레무용수가 되는 데 필수적인 신체능력이 없다고 인정하는 동시에 ‘차별’에 대한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휠체어 없이는 어슬렁어슬렁 기어서 무대에 오르고 내려야 하는 그에게는 효율적으로 어떤 일을 해낼 수 없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가 무대에서 보이는 ‘힘’은 다른 무용수는 보일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발레리나의 32회전 동작과 그가 ‘기는 동작’은 모두 서로 다른 차별적인 개인을 만든다. 그리고 각각의 차별적인 능력을 지닌 개인들이 서로의 동등한 힘에 주의를 기울일 때 우리는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 세계를 살아가게 된다.

흔히 몸에는 삶의 흔적이 남는다고 말한다. 춤은 그 삶의 흔적을 타인에게 당당하게 드러내는 자리다. 김원영은 춤에 엄두를 내지도 못했던 유년 시절을 지나 ‘인정투쟁: 예술가편’ 등의 공연에 무용수로 참여하는 현재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프릭쇼에서 시작해 1980년대 일본 교토(京都)에서 온몸으로 기어 무대에 오른 재일조선인 공연예술가 김만리, 백우람과 하지성까지 숱한 역사가 덧붙여진다. 휠체어에서 내려와 회색 바닥의 공연장에서 손을 짚고 허리를 비틀고 가부좌를 틀기도 하는 그의 춤에는 삶이 있다. 360쪽, 1만9000원.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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