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첫 에너지학회장 맡아… ‘C·C·C-테크’ 연구·개발도 선도할 것”[M 인터뷰]
국내 1호 여성 자원공학자 출신
폐기물 활용 차수성 시멘트 공정
유엔기후변화협약에 등록되기도
SMR 함께 개발해야 선진국 앞서
원전 vs 신재생 대립은 그만두고
국가 차원 ‘메가 프로젝트’ 필요
대전 = 박수진 기자 sujininvan@munhwa.com
국내 여성 1호 자원공학자로 유명한 안지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책임연구원)가 올해 여성 첫 한국에너지학회장을 맡았다. 안 회장의 취임은 여성 최초라는 점에서뿐 아니라 그린·탄소중립으로 에너지 패러다임이 대전환하고 있는 가운데 그간 소수 연구 분야로 인식되던 폐기물 자원화·순환경제 부문 과학자가 학회를 이끌게 됐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1990년대 초반 매장량은 풍부하지만 부가가치가 적은 석회석을 제지·의학 등 300여 개 용도로 쓰이는 ‘침강성 탄산칼슘(PCC)’ 합성기술로 재탄생시키며 ‘폐부산물을 자원으로 바꾸는, 마법의 손을 가진 미다스 터치’라는 별칭까지 얻었던 안 회장은 정부 탄소광물플래그십 사업단장으로 탄소광물화(이산화탄소(CO₂)가 화학적 반응으로 탄산염광물로 전환되며 저장되는 방법) 기술을 이용해 이산화탄소 감축에 힘쓰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안 회장의 ‘대기직접포집(DAC)’ 원천기술이 일론 머스크가 후원하는 ‘엑스프라이즈’ 재단의 ‘100대 기술’에 선정되며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안 회장은 지난 24일 대전 유성구 지질자원연구원에서 진행된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통 에너지산업에서 미래 에너지산업으로 전환하면서 필요한 기후(Climate)·탄소(Carbon)·청정(Clean) 등 ‘기후변화대응기술(C―테크 산업)’ 연구·개발(R&D)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기 위해 앞장서겠다”며 “기후위기의 근본적 해결과 탄소중립을 위한 산업 육성·신시장 창출을 목표로 에너지 미래융복합 분야 세계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안 회장과의 일문일답.
―1980년대만 해도 자원공학 전공이 흔치 않았을 것 같은데 자원공학을 공부하고 특히 폐기물 재활용 분야를 연구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지구과학을 좋아하는 걸 보신 고등학교 담임선생님 권유가 있었다. 입학해 보니 과가 개설된 후 30년 만의 첫 여학생이었다. 120명 중 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남학생이었다. 1988년 지질자원연구원에 입사했고 서울에 있던 연구원이 결혼 첫해 이곳 대전 연구단지로 내려온 뒤 서울에서 대전까지 출퇴근하며 연구를 이어갔다. 그 시절에는 흰 가운에 검은 재 묻혀가며 주류였던 석탄, 연탄을 주로 연구했다. 그러다가 대학원 시절 우연히 방문한 일본에서 석회석을 활용해 고부가가치의 침강성 탄산칼슘을 활발히 제조하는 걸 보고 연구에 뛰어들게 됐다. 석회석을 1200도 고온에서 가열하거나 물과 결합시키는 등의 화학적 과정을 거치면 순수한 결정의 나노 입자가 나오는데 이게 침강성 탄산칼슘이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석회석은 2000∼3000원대고 주로 제철이나 시멘트용으로만 썼다. 시멘트로 만들어도 한 포대가 5만∼7만 원대였을 정도로 가격 변동도, 부가가치도 적은 소재였다. 반면 일본은 석회석으로 만든 침강성 탄산칼슘을 제지·플라스틱 등에 다양하게 활용하며 80년간 각 공정 기술을 독점하고 있었고, 미국은 의약분야 제품 가공 캡슐로 이용하는 등 의학 부문으로 활용도를 넓히고 있었다.”
―불모지에서 우리만의 원천기술을 어떻게 확보했나.
“초기에는 한정된 장비와 적은 예산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남성과학자를 선호하던 당시 사회여건도 1세대 여성과학자로 버티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위기마다 기회가 주어졌고 연구가 산업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연구철학을 바탕으로 기술개발의 최종 목표점을 향해 끊임없이 전진했다. 분야마다 최신 기술 동향을 파악하고 난도 높은 목표를 설정했다. 재활용이란 단어도 거의 사용하지 않던 시절 영일만 앞바다에 매립되던 포스코의 석회석 및 백운석 폐기물 전량을 시멘트 원료로 전량 자원화시킨 데 이어 1990년대 국제학회를 다니며 침강성 탄산칼슘 합성기술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공공 부문에서 연구결과를 공개하는 건 내 경우가 유일했다. 그러다 보니 미국 제약회사인 화이자며 국내외 여러 기업·기관에서 협력하자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미국 화이자 침강성 탄산칼슘 연구소에 초대받아 가보니 한국에서는 관련 연구자가 나 혼자였는데 미국은 몇천 명이 응용기술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 시절 미국이 새롭게 도전하는 걸 보고 ‘아라고나이트형 침강성 탄산칼슘 합성메커니즘’ 연구를 시작했고 2004년 ‘이달의 과학자상’을 수상하게 됐다.”
―폐기물을 활용해 CO₂를 감축하는 기술은 어떤 계기로 개발하게 됐나.
“20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자원 재활용이나 순환경제 연구는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생소한 개념이었다. 하지만 50년 전부터 선도하고 있던 유럽에선 무르익고 있는 분야였다. 자원공학자로서 유럽 정책과 기술을 검토하다 보니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폐기물 소각로에서 나오는 산화물을 야적해 자연적으로 대기 중의 CO₂를 흡착하게 하는 전략을 쓰고 있었다. 6개월이 지나면 산화물이 자연탄산화되면서 안정화한 중금속이 용출되지 않아 건설자재로 쓸 수 있는 기술이 핵심이었다. 이에 착안해 시멘트 생산공장과 발전소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CO₂와 부산물로 침강성 탄산칼슘을 제조하면 되겠다고 생각했고 ‘탄소광물화’라는 용어를 제안했다. CO₂에 직접반응하고 중금속을 안정화·최적화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이르렀다.”
―유엔 국제 온실가스 감축 방법으로 등록된 국내 첫 원천기술까지 개발했는데.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의 청정개발체제(CDM·국제적 온실가스 감축사업 등록제도) 방법론 개발이 우리가 다른 나라와 기술협력을 하면서 신시장도 확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이에 그동안 해오던 연구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폐기물을 고기능성 시멘트로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CO₂ 광물화·부산물처리로 탄소감축과 순환자원 확보를 목표로 하는 탄소광물플래그십 사업을 이끌며 일반 시멘트 대비 굳는 시간이 짧고 수축성이 적은 특수 시멘트인 차수성 시멘트를 개발해 1t당 0.281t의 이산화탄소 발생을 저감하는 기술을 개발하게 된 배경이다. 차수성 시멘트를 만드는 공정은 국내 첫 온실가스감축기술로 UNFCCC의 CDM에 등록되는 성과를 올렸다. 또 최근에는 CO₂를 직접 포집해 격리 제거하는 DAC 원천기술이 머스크가 후원하는 재단의 100대 기술로 뽑혔다. 인공적인 에너지 소비 없이 CO₂를 흡수·격리하는 제올라이트를 석탄재 폐기물로 제조하고, 석탄 부산물에서 고부가가치 시멘트와 희토류를 농축하는 고난도 기술이 인정을 받아 선정된 것 같다.”
―학자로 30여 년간 수많은 연구성과를 거뒀다. 에너지학회장으로서는 어떻게 기여할 생각인가.
“지난 10여 년간 이사, 부회장 등의 직책을 맡으며 에너지학회에 몸담아왔지만 사실 순환경제나 탄소중립은 마이너리티였다. 하지만 이제 그린에너지가 패러다임을 선도하는 세상이 됐다. 그간의 연구와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에너지 산업 및 기술 융복합을 선도하는 데 앞장설 계획이다. DAC 기술만 보더라도 상용화하려면 전력공급이 전제돼야 하고 그러려면 우리나라가 강점이 있는 차세대 소형모듈원전(SMR) 기술을 패키지로 함께 개발·활용해야 미국 등 선진국을 선도할 수 있다.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도 탄소광물화 기술을 통해 석탄발전 후 버려지는 석탄재에서 국가전략광물인 희토류를 뽑아내며 폐자원도 활용하고 이산화탄소 배출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그린에너지 정책과 기술을 제시하고 선도국과 개발도상국의 가교 역할을 하는 한편 후발국을 지원함으로써 글로벌 탄소중립 실현에도 기여할 수 있는 그린에너지분야 퍼스트무버가 되겠다.”
―정부 에너지 정책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우선 에너지원 구성은 다양해야 한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원전이냐, 신재생이냐로 갈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와 정책은 다르다. 유럽 등의 선진국을 보면 지속가능한 에너지 패러다임은 정권과 상관없이 50년 이상 이어지고 있다. 또 국가적 차원에서 미래를 내다보고 선도할 수 있는 메가 프로젝트를 만들어 제시해야 한다. 지금 연구자들이 2∼3년 내 성과를 내지 않으면 안 되니 뭔가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상황인데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 선진적인 연구·개발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도 국가 몫이다. 이와 함께 연구 인생은 기초 응용 산업화까지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점을 젊은 과학자들에게 강조하고 싶고 이를 위해서는 초·중·고 시절부터 과학이 익숙한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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