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드라마 시청 땐 살인범 취급 … 선글라스 꼈다고 “반동” [2024 北인권보고서]

김예진 2024. 6. 28.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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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들 ‘충격적 증언’ 보니
휴대전화 주소록에 별명 넣으면 안 돼
리씨 성을 ‘이’로 표기해도 처벌 대상
외화벌이 노동자 열악한 환경서 생활
목욕시설 없어 6개월 동안 못 씻기도
北인권기록센터가 면접 조사해 정리
민주, 인권재단 이사 추천 8년째 불응
“(공개처형을) 가장 마지막으로 목격한 것은 2023년 2월경 ○○군 남새(채소)밭에서 한 공개처형입니다. 이외에도 최근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등으로 공개처형을 많이 합니다. 2023년 3월과 4월에도 공개처형했다고 들었습니다.”
 
통일부가 27일 공개한 2024북한인권보고서에는 불과 1년4개월 전에도 공개처형이 있었다는 충격적인 증언이 새롭게 담겼다. 이 증언을 한 탈북민은 “처형 대상자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어긴 사람들과 살인 등 강력 범죄로 인한 대상자들”이라고 말했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 콘서트 등 영상을 시청한 주민이 살인범 수준으로 취급되는 현실을 증언한 것이다.
北 실태 생생 고발 김선진 북한인권기록센터장이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4년 통일부 북한인권보고서 발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발간이다. 뉴스1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탈북한 한 여성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 관련 강연 영상을 본 기억을 떠올리며 “영상 속 해설자가 말하길 결혼식에서 신부의 흰색 드레스와 신랑의 신부 업어주기는 ‘괴뢰(남한)식’이라고 했고, 선글라스 착용, 와인잔으로 와인 마시기, 여러 개 장신구를 동시에 착용하는 것도 모두 반동이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리(李)씨 성을 ‘이’로 표기하는 것도 반동사상문화로 처벌 대상이다. 휴대전화 주소록이나 문자메시지에 ‘괴뢰식’ 말투를 쓰는지 검열도 수시로 벌어진다. ‘아빠’, ‘~(직함)님’, ‘쌤(선생님)’ 같은 호칭이나 ‘~했어요’ 등 해요체나 ‘빨리 와!’ 같은 표현도 대표적인 단속 사례다.

2018년 탈북한 한 여성은 “손전화기를 들고 걸어가면 단속원들이 와서 손전화기를 다 뒤져본다. 주소록도 살피는데 예를 들어 ‘아빠’라는 표현은 우리식이 아니라고 단속한다. 주소록에는 이름만 있어야지 그 앞에 별명을 붙여서도 안 된다. 선생님도 ‘쌤’이라고 쓰면 단속된다”고 증언했다. ‘OO 아빠’라는 활용도 안 된다. 북한에서 기존에 쓰이던 용어인 세대주(남편), 아버지로만 사용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외화벌이 목적으로 러시아, 중국, 아프리카 국가 등에 파견되는 ‘해외파견 노동자’ 실태도 심각했다. 탈북민 C씨는 “2019년 (러시아에) 파견된 40명가량이 건설현장 내 컨테이너에서 생활했다. 목욕할 수 있는 시설이 없어 6개월 동안 한 번도 못 씻었고, 한 달에 한 번 세수할 정도였다. 식수는 수질이 나빠 건설현장 내 건설용수를 끓여서 사용했다. 2020년부터는 작업현장 내 빈방에서 생활했는데, 먼지가 가득했고 물도 나오지 않아 씻지도 못하는 열악한 상황이었다”고 증언했다.

북한과 러시아가 최근 밀착하면서 러시아로 파견되는 노동자들이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북한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 위반이지만 러시아는 이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북한 노동자들의 생계권과 인권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러시아 시베리아 벌목장의 북한 노동자들. 세계일보 자료사진
중국 정부가 탈북민을 계속 강제북송 중인 가운데, 강제북송을 당할 경우 겪게 되는 인권 참상도 여실히 드러났다. 이번 인권보고서에 추가된 새로운 증언 중에는 “(2017년 북송돼) 온성군 보위부에서의 조사를 받을 때 제가 이름, 나이, 등록 거주지 등을 모두 거짓으로 이야기했고, 부모가 없는 고아라고 했다. 모든 것을 거짓으로 말했기 때문에 저의 신분이 확인되지 않아서 매일 폭행을 당했다”라는 증언도 있다.

코로나19 기간 국경봉쇄로 인해 사망자가 나왔다는 증언도 들어 있다. 한 탈북민은 “국경 봉쇄조치 이후 2층 높이 초소에서 망원경으로 감시하고, 국경지역 70 마다 한 명씩 60발을 장전한 채 경비를 섰다. 철조망에는 고압 전류가 흐르다 보니 국경을 넘어 탈북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제가 있을 때는 아무도 (봉쇄지역에 진입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2020년 가을 국경경비 군인이 근무 중, 복면을 쓴 채로 중국에서 북한 봉쇄구역으로 들어오려는 자를 사살하여 칭찬을 받은 적이 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국제사회의 인권 관련 문제 제기를 의식하는 대목도 실렸다. 또 다른 증언을 보면 “가족과 친하게 지내던 (구금소) 보위원이 있었는데 집에 와서는 ‘유엔에서 이번에 북한이 인권 때문에 많이 두드려 맞았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최근 들어 인권에 대해 조금 신경 쓰는 것이 보였다”고 했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현황은 지난해 정부보고서에 총 11곳으로 기재됐으나 올해 10곳으로 정정됐다. 김선진 북한인권기록센터장은 “지난해 관리소를 교화소로 혼동했던 것으로 파악해 수정한 것”이라고 했다. 정치범수용소는 북한에서 가장 엄중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간주하는 사람들이 보내지는 곳이자 국제사회에서 최악의 인권 침해 장소로 꼽히는 곳이다.

이번 보고서에서 추가 증언을 내놓은 141명 탈북민 가운데 남성은 34명 여성은 107명이었다. 10대가 32명, 20대가 59명, 30대가 31명, 40대가 8명, 50대이상은 11명으로 젊은 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가장 최근인 2020∼2023년 탈북한 경우가 29명이었고 대부분 2000년 이후 탈북한 경우였다.

이번 보고서는 2016년 국회를 통과한 북한인권법에 따라 북한인권 조사 기관인 통일부 북한인권기록센터가 하나원에서 탈북민을 면접 조사해 정리한 것이다. 북한인권법에 따라 북한인권재단이 출범해야 하지만 8년째 야당 추천 이사가 채워지지 않아 출범이 지연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이날 세계일보에 “주요 현안에 밀려 아직 논의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도 “당장 논의하기엔 총선 이후 국회가 정상 가동되기까지 시일이 소요됐고, 북한인권재단 이사를 추천하기까지 내부 추천과 검증 등도 진행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김예진·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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