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방방곡곡 ‘댕댕이 산타’가 생겼으면 [사람IN]

춘천·장일호 기자 2024. 6. 28.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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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여름이었다.

유기견 보호소 내 비닐하우스 문을 열자 개 수십 마리가 보였다.

그 덕분에 2023년 본격적으로 춘천 지역 마당 개를 돌보는 모임인 '댕댕이 산타 클럽'이 시작됐다.

댕댕이 산타 클럽을 통해 "'한 마리'를 위한 일이 앞서야 '모든 개'를 위한 일도 시작할 수 있다"라는 것을 겨우 배웠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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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이 주목한 이 주의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 이야기에서 여운을 음미해보세요.

6년 전 여름이었다. 유기견 보호소 내 비닐하우스 문을 열자 개 수십 마리가 보였다.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극심한 무더위로 늘어진 탓이었다. 자원활동을 나간 이여름씨(42)는 그중 털이 유난히 긴 강아지 한 마리에게 눈을 뗄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떠올랐다. “제가 모두를 구할 수 없지만 한 마리 정도는 입양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어요.” 진도 믹스견 ‘모모’가 그해 여름 이씨 집으로 왔다. 모모는 이씨에게 인간의 무릎 아래에도 세상이 있다는 걸 알려줬다. 모모의 눈으로 본 세상이 새로 열렸다.

이여름씨는 6년 전 유기견 보호소에서 반려견 ‘모모’를 만났다. ⓒ시사IN 신선영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2년 전 가족이 있는 강원도 춘천으로 내려왔을 때, 이씨를 가장 괴롭힌 것은 이른바 ‘마당 개’였다. 모모와 산책하는 동안 50㎝ 남짓 짧은 목줄에 묶여 있는 개를 지나칠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2023년 개정 동물보호법이 시행되며 마당 개에게도 최소한 2m의 목줄이 허락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글자에 불과했다. “앞으로도 마당 개를 계속 마주쳐야 하는데 그럼 계속 제 마음이 불편할 거잖아요. 저 마음 편하자고 시작한 일이었어요.”

사비를 털고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의 도움을 받아 마당 개 환경개선 작업에 나섰다. 견주를 만날 수 없을 때는 물품과 함께 편지를 남겼다. ‘안녕하세요. 동네를 지나다니다가 선생님 댁 강아지를 보았어요. 정말 착하고 예뻐요. 그런데 목줄이 너무 짧은 것 같아요. 긴 줄을 선물할게요. 긴 줄을 해주면 강아지가 더 행복해져요. 꼭 교체해주세요.’ 이름을 밝혀야 할까 망설이다가 익명을 선택했다. 발신자 이름은 ‘댕댕이 산타’로 했다. “제가 하는 일이 마당 개에게 산타 할아버지가 하는 일처럼 느껴지기를 바랐어요.”

드물게 ‘강아지를 사랑하지만 그동안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몰랐다’는 분을 만나면 보람도 느낀다. 그러나 여전히 반려동물의 법적 지위가 ‘물건’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날이 더 많다. ‘네가 개에 대해 뭘 얼마나 아느냐’ ‘지금 이대로 잘 지내고 있으니까 참견하지 마라’ 같은 말을 마주하면 정확한 대답을 해주고 싶었다. 이씨는 자신의 말에 권위를 싣기 위해 민간 자격증인 ‘반려동물 행동교정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하고,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면 좀 나을까 싶어 서울에서 함께 활동하던 환경운동 모임(‘맨땅에 초로록’)에 SOS도 요청했다.

동네 마당 개 견주가 입양을 부탁한 강아지 ‘콩이’. 이여름씨가 입양 홍보를 맡아 임시 보호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그 덕분에 2023년 본격적으로 춘천 지역 마당 개를 돌보는 모임인 ‘댕댕이 산타 클럽’이 시작됐다. 목줄을 바꿔주고, 말라붙은 그릇을 씻어주고, 그늘막을 쳐주고, 구충약을 먹이고, 털을 골라주고, 견주가 허락하는 경우 산책도 시켰다. 개가 문자 그대로 ‘웃는다’는 걸 경험한 사람들은 다음 모임에도, 그다음 모임에도 나왔다. 신뢰가 쌓이면서 이씨에게 마당 개 입양을 부탁하는 견주도 생겼다. 이씨는 모든 것을 한 번에 바꿀 수 없다는 걸 안다. 댕댕이 산타 클럽을 통해 “‘한 마리’를 위한 일이 앞서야 ‘모든 개’를 위한 일도 시작할 수 있다”라는 것을 겨우 배웠을 뿐이다.

춘천·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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