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돈 사태’ 선행한 소설들의 재현 윤리…작가는 안다 [책&생각]
‘그들을 정원에 남겨두었다’
재현의 윤리와 도전 톺아
이번주 한겨레 보도로 널리 공론화된 정지돈 소설가와 과거 교제했던 여성 김현지씨 간의 ‘사생활 무단 인용’ 의혹 분쟁은 현실·창작 윤리, 좁게는 작품 안팎 재현의 윤리에 관한 여러 쟁점을 내포한다. 둘의 엇갈린 주장을 놓고, ‘내막’이라고 할 ‘사실 진위’가 명백해지긴 쉽지 않고, ‘의도’라고도 할 ‘내심’이 확인되긴 더 어렵다. 이미 ‘내심’을 논하는 비평가가 있긴 하다. 김봉곤 작가 사태 이후 드물지만 문학 작품에 재현의 윤리가 소재로 형상화되어 왔다. 문학이 현실을 선행했다면, 작품 속에 어떤 답도 있겠다. 더 나은 결미의 상상을 허락한다. 독자들 판단에 참고될 만한 근작들을 찾아 다시 펼쳤다.
이중 작가 초롱
이미상 작가의 첫 소설집(2022)의 표제작 ‘이중 작가 초롱’은 제목부터 중층화되는 작가 윤리의 형질을 감지시킨다. 재현 윤리 범주에서 두 가지 유형이 등장한다.
작중 초롱은 등단 전 습작 합평 때 비난을 줄곧 들었다. 작품이 ‘악’하댄다. 그 시기 습작을 갈아엎어 쓴 등단작으로 초롱은 크게 주목받는다. ‘불법 촬영’으로 인한 피해(자)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대신 감싸 형상화했다는 호평. 이즈음 누군가 초롱의 습작을 유포해 공개 비난한다. 같은 소재로, 피해자 고통을 남 일로 보던 습작과 태도가 6개월 새 등단작 수준으로 바뀔 수 있냐는 거다. 초롱은 매장된다. 무엇을 어디까지 어떻게 활자·영상 따위로 드러내는가. 통상 말하는 첫 번째 재현의 윤리다.
습작 유포자가 알고 보니 당시 글쓰기 선생이다. 선생의 과거가 재현 윤리 두 번째 유형을 함의한다. 과거 민주화 운동 동지가 작가가 된 선생을 찾아온다. “죽이러”, 오래전 대공분실에서 당한 대로 들려준 이야기를 소설에 허락 없이 썼다는 이유로. 소설 제목이 ‘대공분실’이긴 했다. 그러나 동명의 록 클럽 ‘대공분실’에서 따와 그곳의 “범속한 일상을 심상히 묘사할 뿐” 남영동의 고문, 인물은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선생은 설명했고 억울했지만 사과했고 사과했지만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초롱에게 말한다. “나는 떳떳했어. (…) 그 정도 변형이면 아무도 그게 친구의 이야기인지 알지 못할 테니까. 그런데 본인은 알아보더라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걔랑 나는 알았어. 내가 친구에 관해 한 자도 적지 않은 채 친구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내심’ 또는 불식간 “친구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투영됐고, 때문에 친구는 단지 “그 점을 인정하기를 바랐”을 뿐이라고.
그들을 정원에 남겨두었다
재현의 윤리는 ‘오토픽션’에서 더 긴박해진다. 게다 작중 화자의 직업이 작가라면? 이 단편 속 화자인 의사 ‘나’가 그렇다. 실제 의사 작가인 이현석은 소설 속 소설을 쓰는 소설가의 소설가로서, 작품 안팎에서 자신의 윤리를 물을 수밖에 없다.
이시진은 늘그막 아내와 딸 유나를 팽개치고 재산도 넘긴 채 집을 나간다. 동성 연인과 살기 위해서다. 훗날 중병을 얻어 대학병원에 입원하는데 수술 동의자가 남동생이라고 신분을 속인 그 연인이다. 뒤늦게 온 가족의 어떤 모욕에도 남자 연인은 병원을 떠나지 않는다. 재활이 불가능한 상태로 시진이 요양병원으로 옮겨지며 둘은 영영 작별하게 된다. 누구도 정보를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 수연은 이 사연을 각색해 블로그에 올린다. 실상 레즈비언으로서 ‘생활동반자법’ 입법의 ‘당위’를 공론화하기 위해서였다. 요양병원의 의사로 이시진을 담당하는 ‘나’는 대학동기 수연의 1년 전 글에 분개했다. 딸 유나는 고소까지 검토했다. 병, 수술 과정, 동성 관계 등 모든 게 적나라했던 탓이다. “네 글은 픽션이 아니라고, 그런 글을 쓰기 전에 최소한 동의는 구해야 하는 거”라고 따지는 ‘나’에게 수연은 코웃음 치며 묻는다. “넌 물어봤니?”
소설가로 등단한 ‘나’가 2년 전 쓴 단편 인물의 모티브가 바로-뛰어난 역량에도 왜곡된 시선을 감당 중인-수연이었다는 사실을 당사자는 알고 있었다는 것, 제아무리 “가공”해 “흔적”을 지웠다 해도 작가 스스로는 찜찜해 왔다는 사실, 그럼에도 자위해오던 재현 윤리의 비교우위조차 죄 까발려지는 순간이었다. 게다 지금 10개월째 서로 임종을 지켜주자 약속한 두 노인의 사랑 얘기를 써오질 않았던가. 그래서 유나와의 만남이 불편했고, 그래도 소설이 막힐 땐 결말의 ‘당위’를 찾고자 식물인간 이시진을 찾지 않았던가.
소설집 ‘다른 세계에서도’(2021)의 표제작도 깊다. ‘오토픽션’의 필요와 특장이 여실하다. 사안과 인물의 내밀성, 중층성을 활자로 드러낼 뿐만 아니라, ‘관습적 재현’의 불온함을 작가는 묻는다. 이 단편의 배경인 2019년 4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던 그날, 작가 박서련의 단편 ‘그 소설’ 속 여성 소설가는 산부인과 수술실에 누워 있었다.
그 소설
단편집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2022)에 수록됐다. ‘나’는 계류유산 경험을 임신중절로 변형해 소설을 쓴다. 작중 소설가인 화자는 말하고 싶다.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세계가 달라졌다는 그런데 나는 그대로라는 감각이 낯설게 일어선다. …여자들의 얼굴은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과 달라졌지만 역시나… 새로울 것 없는 세계”를. 그 새로울 것 없음을 감각시키기 위한 새로운 형식으로. 누구도 도용할 수 없는 형식으로. 이 감행은 상상 밖 고행이 되고 만다. 소설의 파장과 함께 ‘경험의 소유권’ ‘이야기의 물권’이 논란이 된다.
대학 문창과 합평수업 때 맨 먼저 낙태 소설을 발표했던 별명 ‘화류계’인 언니 동기는 “그거 혹시 내 얘기 아니”냐 따지고, 엄마한텐 “어떤 새끼가 그랬어?” 추궁받고, 급기야 수술 전 이미 헤어져 연락한 지 10년 된, 그래서 소설을 쓰는 동안 단 한번 “떠올리지 않”았던 그 ‘어떤 새끼’로부터 듣는다.
“왜 그런 얘기를 썼어?” “그게 정말 우리 얘기가 아니라면, 왜 그런 걸 썼냐고.” “내가 다 폭로할 거야.” “네 소설 아니라고. 넌 낙태충 살인자 년이라고.”
이 소설은 작중 소설가와 소설 쓴 박서련을 스스로 동시 겨눈다는 점에서, 오토픽션의 문학적 무게를 보여준다. “누구도 훔쳐갈 수 없는 내 얘기” “절대로 흉내낼 수 없는 내 얘기”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이야기, 그러나 “누구나의 내 이야기가 되는” 정언명령이랄까. 재현 윤리 밖 소설을 감별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까.
대학에서 소설 가르치며 창작하는 문지혁 작가의 장편 ‘중급 한국어’(2023)엔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두 돌이 지났을 무렵부터 은채는 자주 말했다. “아빠, 나 글 쓰고 싶어.” 사실 지금 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실제로 아이는 아빠, 나 굴 뜨고 띠퍼, 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초고를 아내에게 보여 주었을 때 아내는 이 부분을 마뜩잖아했다. “꼭 이렇게 소리 나는 대로 써야 돼? 우리 애를 이렇게 묘사하는 거 난 별로야.”
토굴에서 쓸지언정 ‘작가의 사람들’이 이처럼 많다. 익명, 변형, 그러니까 작중 사건의 지평선을 넘는다. 문학은 인간의 상처 곁에 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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