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몸으로, 우린 ‘좋은 춤’을 출 수 있지 [책&생각]

최원형 기자 2024. 6. 28.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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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변호사·작가·무용수 김원영의 ‘몸을 위한 변론’
‘동등한 권리’ 추상적 개념 너머 구체적인 몸들
공연자와 관객이 만들어가는 더 나은 공동체
공연 ‘현실원칙’에서 춤을 추고 있는 무용수 김원영의 모습. 옥상훈 작가, KIADA2023, 문학동네 제공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
몸을 위한 변론
김원영 지음 l 문학동네 l 1만9000원

장애가 있든 없든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과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 이런 추상적인 진술은 많은 이들이 폭넓게 공감하는 ‘평등’의 규범과 이념을 법과 권리의 차원에서 우리 사회 전체에 새겨 넣는다. 규범과 이념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예컨대 법과 권리의 차원에서 평등하다는 규정과는 별개로, 장애를 지닌 몸은 어떤 ‘능력’을 발휘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하반신을 쓰기 어려워 휠체어를 타는 사람이 춤을 추는 것, 뇌성마비로 종종 ‘말 막힘’을 겪는 사람이 연극 대사를 읊는 것, 시력이 0인 사람이 사진을 찍고 전시회를 여는 것 등은 가능한가? 단지 가능한 것을 넘어 온전히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가? 능력을 발휘해 자신을 ‘차별’화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영역에서, ‘평등’이라는 추상적인 말은 종종 무력하게 느껴진다.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을 쓴 김원영(42)은 변호사, 작가이자 장애인 무용수다. 골형성부전증으로 휠체어를 타는 그는 장애가 있는 자신의 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그래서 어려서부터 “몸에 주의를 기울이기보다는, 언어와 규범의 세계에서 교양과 전문성으로 무장한 어른으로 살고자 애썼다”고 고백한다. 대학에서 장애인권운동을 하고 법학을 공부해서 변호사가 되고,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언어와 규범으론 어찌할 수 없는 ‘몸의 문제’는 줄곧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특수학교 재학 시절엔 일반고 친구들과 함께 연극을 만들기도 했고, 대학 입학 땐 총연극회 가입도 생각했다. 변호사 자격을 딴 뒤인 2013년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이라는 공연팀을 만들었는데, “아름다울 기회를 평등하게 만들겠다”고 밝힌 당시 포부에서 그를 사로잡고 있던 문제가 어떤 것인지 엿볼 수 있다. “평등에 관한 내 믿음은 몸의 ‘능력’ 차이 앞에서 자주 길을 잃었다.”

공연 ‘현실원칙’에서 춤을 추고 있는 무용수 김원영의 모습. 옥상훈 작가, KIADA2023, 문학동네 제공
공연 ‘현실원칙’에서 춤을 추고 있는 무용수 김원영의 모습. 옥상훈 작가, KIADA2023, 문학동네 제공

꾸준히 춤과 연극에 매진해온 김원영은 ‘인정투쟁: 예술가 편’(2019), ‘무용수-되기’(2020) 등에 참여했고, 2020년 제56회 백상예술대상에선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2019)로 연극 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후보에 올랐다. ‘온전하고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은 그가 스스로 ‘몸의 문제’에 천착해온 과정과 그 속에서 얻게 된 사유를 담은 책이다. 자신의 ‘무용수-되기’ 경험뿐 아니라 이사도라 덩컨부터 최승희, 바츨라프 니진스키 등으로 이어지는 무용의 역사, 19세기 ‘프릭쇼’(서구에서 유행했던, 오늘날의 기준으로 장애인의 신체를 전시하는 쇼)에서 오늘날 ‘장애 무용’으로 인식을 넓혀온 변화의 흐름, 극단 ‘애인’을 비롯해 국내외 장애인 예술가들의 활동 등을 생생하게 아우른다.

“장애인의 신체는 공공장소 어디에서나 크고 작은 소란의 진원지다.” 흔히 장애인의 몸은 일정한 통제 아래에 있는 ‘문명’이 아니라 통제가 안 되는 ‘야만’으로 상상된다. 이런 사회질서는 장애인의 몸을 훑어보는 타자의 ‘시선’으로 드러나고, 장애인들은 시선에 포착당하지 않게 스스로 몸을 단속한다. 지은이는 기어다니는 대신 휠체어를 탔고, 팔과 다리가 더 길어 보이도록 휠체어 바닥에 스티로폼 방석을 까는 등 “정교하게 몸을 다듬었다.” 다른 이들이 보고 있을 때 휠체어에서 내려와 기어가는 일은 그로 하여금 프릭쇼의 등장인물이 되도록 만들 터다. 프릭쇼는 “이주민과 장애인에 대한 인종적, 장애차별적 역사를 가진 폭력과 착취의 현장”이었다. 다만 지은이는 프릭쇼가 “다른 한편 사회에서 배제된 몸들이 직업적으로 활약하고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기회”였다는 사실에도 주목한다. 인종·장애차별적 환경 속이었을지언정, 감추고 숨겨야 했던 몸을 드러냈다는 의미도 있다는 것이다.

과거 “아름다울 기회를 평등하게 만들겠다”는 포부를 지녔던 지은이는 휠체어 위에서 비장애인 동료와 왈츠를 추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프릭’이 될 위험을 거부했다. “장애인의 몸이 언제나 추하고 이상하고 기괴한 소란덩어리로 취급받는 사회에서 섬세한 연출 기법과 무대 디자인, 연기 훈련이 만나면 어떤 몸이든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여러 다른 장애인 예술가들로부터 그가 끝내 발견해낸 것은 ‘자기 신뢰’, 곧 자신의 몸을 전적으로 믿음으로써 자신만의 고유성을 찾아내는 역량이었다. 뇌성마비로 장애가 있는 배우 백우람은 무대 위에서 종종 5초가량 ‘말 막힘’에 빠지지만, 언제부턴가 말 막힘의 순간에 ‘침묵의 5~6초’라는 이름을 붙이고 아예 자신의 공연 주제로 삼아버렸다. ‘캔두코’의 간판무용수였던 데이비드 툴은 다리 없이 두 팔로만 누구도 따라 하지 못할 춤을 췄다.

연극 ‘인정투쟁: 예술가 편’(2024) 속 배우 백우람의 모습. 백우람 제공
‘캔두코’ 무용단 소속으로 양다리가 거의 없는 무용수 데이비드 툴은 비장애 무용수들과 다른 자신의 몸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2020년 공연 ‘아티피셜 싱스’에서의 모습. ©Stopgap photo by Chris Parkes, 문학동네 제공
독일 브레멘극장 무용단의 ‘하모니아’(2022) 공연 모습. 세계의 장애인 무용수들과 협업해 만든 공연으로,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비장애인 무용수들과 역시 각기 다른 피부색과 국적을 지닌 장애인 무용수들이 등장한다. ©Jörg Landsberg, 문학동네 제공

“아마도 좋은 춤이란 장애가 결코 춤출 수 없는 결함이 아님을 깨달으면서도, 동시에 무엇이든 다 출 수 없다는 근본적인 태도의 공존 가운데 나오는 것이 아닐까?” 지은이는 춤을 ‘잘 추기’와 ‘좋은 춤’ 추기, 모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잘 추기’가 주어진 환경에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면 ‘좋은 춤’은 그것을 평가하는 타자의 시선에 좌우된다. 어떤 이들은 장애인이 ‘잘 추기’만 해도, 곧 자신의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면 충분하다 말한다. 이런 태도는 “평등주의적이지만 개개인의 차이를 소거한다.” 개개인을 구체적인 ‘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추상적인 공감이 아니라 그의 ‘탁월성’에 주목하는 시선이다. 이 탁월성은 “평등의 반대말도, 성찰 없는 능력주의”도 아니며, 그보단 ‘좋은 춤’을 하나가 아닌 다채로운 기준으로 상상할 수 있는 공동체의 역량을 바탕으로 삼는다.

“중증장애인 무용수는 잘 추려고 노력하기에 좋은 춤을 추고, 좋은 춤을 추는 데 필요한 경험과 기술을 연마할 기회를 가지기에 더 잘 출 것이다. 그 가운데서 그 무용수만의 ‘탁월성’이 발현된다.”

무엇보다 지은이가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구체적인 삶이다. 규칙과 질서는 우리를 만들어내지만, “당신과 나는 그 규칙보다 크다.” 당신과 나는 미리 정해진 어떤 형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개개인과의 만남을 통해 각각의 개별적인 접근성이 어떻게 확보될 수 있는지 경험을 쌓”는다. 그리고 “그 각각의 다른 경험을 상호 연결하고 통합해야 탁월함에 근접할 수 있다.” 나와 다른 몸은 내가 이 세상의 다양한 맥락을 도외시하고 나와 같은 것들에만 휩쓸려갈 때 나를 붙들어주는 ‘닻’이 되어준다. 서로의 탁월성에 주목하려는 노력을 통해, 언뜻 모순되어 보이는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 우리 존재와 공동체에 대한 바람이 구체화될 수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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