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강’이 있었다면 어떻게든 ‘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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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의 두 번째 시집 '동시존재'에는 '이쪽'과 '저쪽'을 분간하기 쉽지 않은 곳에 봉착한 이가 결국 어느 쪽으로 갈지 방향을 정하고, 그에 따라 가는 상황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는 시가 여럿 실려 있다.
시인의 관심은 어떤 선택이든지간에 그것이 당장 큰 변화를 끌고 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언제나 여러 가능성을 가늠하면서 선택을 하고 그를 통해 삶을 이어간다는 것, 선택 이후에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내용은 결국 우리 자신의 책임 속에서 채워진다는 것을 강조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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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존재
이종민 지음 l 아시아(2024)
이종민의 두 번째 시집 ‘동시존재’에는 ‘이쪽’과 ‘저쪽’을 분간하기 쉽지 않은 곳에 봉착한 이가 결국 어느 쪽으로 갈지 방향을 정하고, 그에 따라 가는 상황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는 시가 여럿 실려 있다. 어디를 선택하든지 선택하지 않은 방향에 원래부터 있던 풍경은 바뀌지 않는다. 가령 그곳에 강이 흐르고 있었다면, 내가 그 길을 가지 않는다고 강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없어도 거기” “강”은 있다(‘무한동력’). 하지만 이런 일은 선택된 길에서도 마찬가지로 벌어진다. 인간이 “페달을 밟”든 “브레이크를 잡”든 어떤 방식으로 움직인다 해도 가고자 하는 길에 “강”이 있었다면 ‘강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같은 시).
인간이 살면서 마주하는 숱한 선택의 순간들이 길디긴 삶의 규모로 봤을 때 보잘 것 없을 뿐이란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시인의 관심은 어떤 선택이든지간에 그것이 당장 큰 변화를 끌고 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언제나 여러 가능성을 가늠하면서 선택을 하고 그를 통해 삶을 이어간다는 것, 선택 이후에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내용은 결국 우리 자신의 책임 속에서 채워진다는 것을 강조하는 데 있다.
“이정표 앞에서 우리는 각자 걸어갈 방향을 정했다/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쪽과/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쪽으로// 예상되는 합류지점은 팔각정이었다 팔각정에는 벤치가 있고 근처에 약수가 있고 오래된 벤치프레스가 있다고 그가 일러주었다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약수를 떠놓자고 종이컵을 나눠 가졌다 약수를 받기 위해서는 줄을 서야 한다고도 일러주었다// 그의 몸에서 바싹 마른 나뭇잎 냄새가 난다 마른 나뭇잎 냄새는 썩기 시작하는 나뭇결의 냄새와 비슷하다// 이 산이 원래는 공동묘지였대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걸었다 곧게 자란 나무가 있고 구부정하게 자란 나무가 있고 다른 모양으로 구부정하게 자란 나무가 있는 길/ 원래라는 말을 오래 생각하며 걸었다// 반대로 걸어가면 어디쯤에서 만나게 될지 궁금하지 않아?/ 그의 말을 곱씹으며 걸었다 궁금한 것을 궁금해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하며 걸었다// 팔각정으로 길게 늘어선 발자국/ 쪼그려 앉아 종이컵으로 떨어지는 물을 바라본다 누구의 발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의 소리/ 나무가 죽어가고/ 그가 오지 않지만 그가 오고 있는 산에서// 계속 가게 될 것이다 약수를 담은 종이컵 두 잔을 들고”(‘둘레길’ 전문)
이 시 역시도 화자는 ‘둘레길’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선택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시는 “각자 걸어갈 방향을 정”하는 이들의 모습에 대해 말하지만, 나와 지인 중 누가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쪽”을 택했고 누가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쪽”을 향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내’가 가는 길 위에서 포착되는 “곧게 자란 나무”, “구부정하게 자란 나무”를 하나씩 짚는다. 끝에 다다를 곳에 대한 막연한 상상보다 끝을 앞서서 궁금해 하는 이의 “마음”을 떠올리면서, ‘나’의 선택이 마련하는 과정에 집중한다. 이 시를 두고 삶에 어떻게 충실할까라는 물음에 대한 시 나름의 응답이라 해도 될까. 어떻게 될지 단언할 수는 없지만 무슨 선택을 하든 중요한 건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감당하려는 태도에 있는 것이라고.
양경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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