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中에 밀린 K풍력발전, 국산 터빈 ‘반의 반토막’
국내 점유율 2019년 53%→작년 13%
해외 기업들 사이 ‘샌드위치’ 신세
정부, 시장 공급망 제대로 파악 못해
“풍력발전 시장은 계속 커질 텐데 국내 기업들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습니다. 이미 외국산에 공급망을 장악당한 태양광 전철을 밟을까 우려됩니다.”
풍력발전의 핵심 장치인 터빈의 국산 점유율이 4년 새 53%에서 13.3%로, 4분의 1로 쪼그라든 것으로 나타났다. 품질과 탄탄한 공급망을 앞세운 유럽 기업들이 국내에서 점유율을 늘리는 동시에 중국 기업들까지 공격적으로 진출해 오며 우리 기업들은 ‘샌드위치 신세’가 된 상황이다. 27일 국내 한 풍력업체 임원은 국내 현실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부가 탄소 감축을 위해 해상풍력 시장 규모를 2030년까지 지난해보다 100배 넘게 키우겠다고 목표를 삼았지만 막상 해외 업체들에 시장을 내주게 생겼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핵심 부품의 70% 이상을 중국산이 장악한 국내 태양광 시장과 흡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면서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위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터빈은 바람을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발전 장치로 날개 역할을 하는 블레이드, 지지대 역할을 하는 타워 및 하부구조물과 함께 풍력 발전의 핵심 구조물이다. 국내 주요 터빈 업체는 두산에너빌리티와 유니슨 등 두 곳이 있지만 그간 내수시장이 워낙 작았던 탓에 사업을 키우거나 역량을 강화하는 데 한계가 컸다. 업계 관계자는 “빈약한 내수시장만으로는 손익분기점도 맞추기 힘들다”며 “반면 외국 업체들은 자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훨씬 큰 시장을 토대로 성장해 한국 시장을 잠식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주도로 국내 풍력발전 시장이 본격 확대될 예정인 가운데, 시장 확대에 따른 과실은 해외 기업이 가져가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 ‘제10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르면 국내 해상풍력 발전 규모는 기존 0.1GW(기가와트)에서 2030년 14.3GW로 확대될 예정이다. 1GW당 건설비를 7조 원으로 잡으면 총 시장 규모는 100조 원에 달할 것이라고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말 한국에너지공단이 선정한 국내 해상풍력 프로젝트도 모두 외국 기업이 쓸어갔다. 5곳 가운데 3곳(총 990MW)의 터빈을 덴마크 베스타스에서 맡기로 했다. 나머지 2곳(총 441MW)은 독일 벤시스와 중국 밍양이 공급하기로 했다. 벤시스는 중국 풍력발전 1등 기업인 골드윈드가 인수해 사실상 중국계다.
업계에선 국내 생태계 보호와 경쟁력 육성 등 투 트랙으로 풍력발전 산업에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산 부품 사용 비율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프로젝트 입찰에 가산점을 주거나 보조금 등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고부가가치 사업을 중심으로 국내 기업 육성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은 “한국이 미국에서 태양광 모듈 사업을 키운 것처럼 풍력도 고부가 분야에서 전략수출 산업으로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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