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형의 책·읽·기] ‘소외에 귀 기울이는 문학과 무속의 굿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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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코 불쌍토다, 천하에 네 외로운 줄 누가 알리, 말 못 하고 원 못하는 네 마음을 누가 알리. 오냐라, 가족이면 붙잡고 의지라도 하겠나, 친구라면 마음 편히 하소연이라도 하겠나. 오냐라, 귀하디 귀한 인간의 몸을 받잡고 이 세상에 나왔으니, 울지 말고 설워 말고 크게 되고 성불하니 무소처럼 혼자 가거라." 전남 목포대 국어국문과 교수로 활동하는 고성 출신 김개영(사진) 작가가 세상의 슬픔을 풀어주는 장엄한 '오구굿'을 완성시켰다.
그의 첫 장편소설 '나의 시적인 무녀 선녀 씨'는 어머니가 무당이었던 가족사를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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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인 어머니 소재 가족사 그려
장애인·퀴어 등 사회적 약자도
“차별 받기에 민중과 더욱 공감”
“불쌍코 불쌍토다, 천하에 네 외로운 줄 누가 알리, 말 못 하고 원 못하는 네 마음을 누가 알리. 오냐라, 가족이면 붙잡고 의지라도 하겠나, 친구라면 마음 편히 하소연이라도 하겠나. 오냐라, 귀하디 귀한 인간의 몸을 받잡고 이 세상에 나왔으니, 울지 말고 설워 말고 크게 되고 성불하니 무소처럼 혼자 가거라.”
전남 목포대 국어국문과 교수로 활동하는 고성 출신 김개영(사진) 작가가 세상의 슬픔을 풀어주는 장엄한 ‘오구굿’을 완성시켰다. 그의 첫 장편소설 ‘나의 시적인 무녀 선녀 씨’는 어머니가 무당이었던 가족사를 풀어낸다.
어머니의 작고 20주기를 맞아 펴낸 이번 소설은 14년의 긴 수정을 거쳐 완성됐다. 선녀 씨(어머니의 별칭)를 위한 애도와 진정한 자기 찾기의 과정이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시작해 그를 위한 49재 오구굿으로 마무리, 선녀 씨가 품어왔던 마지막 시 한 편을 완성시킨다. 대산문학창작기금 선정작이다.
선녀 씨에게 샤먼은 거부하려 했으나 끝내 받아들인 운명이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 막내딸로 태어났으나 사춘기에 신병이 와 무녀의 길로 접어들어 집에는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됐다. 기독교 집안에서 샤먼은 ‘사탄의 추종자’에 불과했다. 20대 초 경찰 공무원과 결혼했으나 파경을 맞았고 두번째 남편과도 원만하지 못했다. 호색한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선녀 씨는 자기 복을 남에게 주었지만 막내 아들을 사고로 잃고, 큰 놈은 의대를 포기했고, 작은 놈은 백수가 되어 제 앞가림도 못했다.
27일 본지와 인터뷰를 가진 김개영 작가는 “어렸을 때는 사회적 차별을 많이 겪었지만, 무속을 공부하면서 나름의 깊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며 “어머니의 삶을 변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평생 남이 잘 되기만을 빌었던 착한 어머니의 모습은 문학의 속성과 다르지 않다. 김개영 작가 또한 처음에는 시인 지망생이었다. 대학시절 시를 주로 썼고, 고 이성선 시인을 비롯한 고성지역 주요 문인들에게 시를 배웠다. 속초·고성지역의 문학동인 ‘물소리 시낭송회’, ‘바람소리’ 등에서 활동했지만 어째서인지 시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대학 졸업 쯤 교내 문학상에 당선되며 소설가의 길로 전향, 2013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다. 그의 소설에는 사회적으로 환영받지 못하는 약자가 이어진다. 선녀씨의 수양 아들 ‘깨깐이’ 형은 정신연령이 12살에 머물러 있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제자 ‘여진’ 누나도 무녀의 길을 이어간다. 대학에서 시를 쓰는 ‘나’ 또한 ‘원래 걔는 따로 논다’는 뜻으로 ‘갠따로’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8살 때 죽은 동생 ‘진호’의 혼은 선녀 씨 곁에 머물러 있다. 대학 선배 ‘사형’은 퀴어다. 모두 선녀 씨와 다름 없는 인물이다.
고성 등 영북지역의 무속문화도 언급된다. 김 작가는 “고성·속초·양양·강릉의 무속신앙은 깊은 바다와 높은 산이 맞물려 여전히 민중의 삶에 생생하다”며 “무속인은 가장 차별받고 업신여김 당하는 존재라 민중과 더 공감할 수 있다. 동해안 무속과 강신무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부분도 아쉽다”고 말했다. 개인사를 기반으로 한 소설이지만 “사실이 30% 허구가 70%”라고 작가는 밝힌다. 때문에 세밀하고 단단한 묘사 속에 슬픔에 머물지 않는 받아들임의 과정도 묻어나온다.
작가는 “어머니는 새벽에 전화를 받을 때마다 늘 가슴이 철렁했다고 한다. 타인의 슬픔을 감지하면 울기부터 하셨다”고 말한다. 무녀는 우주만물을 연결하고, 누구에게도 말 못하는 사연을 듣는 존재이지만 그 또한 감정을 지닌 한 명의 사람일 뿐이다.
세상을 떠나고, 만신에 빙의된 선녀 씨의 넋두리가 더욱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 내아들아, 천금 같고, 만금 같은 내 자식아, 곰같이 든든하고 딸같이 살가웁고 동무처럼 의지되던 내 아들아, 내 죽을 때, 영호야 네 이름을 세 번이나 불렀건만, 너는 내 소리를 알아듣질 못했구나.” 김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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