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하는 기자] 시인은 시인하는 사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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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는 또래보다 한 뼘은 작았고, 무엇보다 아주 말랐었다.
한참 호기심이 많은 꼬마의 눈에 동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지루하고 따분했다.
"스무 살의 나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컸다.
인생에 있어 누구나 한 번쯤은 삶과 엉겨 붙어 싸워본 적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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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의 나는 하루에도 아홉 번씩 죽었다
서른 살의 나는 이따금 생각나면 죽었다
마흔 살의 나는 웬만해선 죽지 않는다
죽는 법을 자꾸 잊는다
무덤 속에서도 자꾸 살아난다
사는 일이 큰 이득이란 듯,
살고
살아나면
살아버린다
서른과 마흔,
사이에
산문이 있었다
그걸 쓰느라 죽을 시간이 없었다!
- 박연준, 「시인하다」,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2024, 문학동네
어릴 적 나는 또래보다 한 뼘은 작았고, 무엇보다 아주 말랐었다. 하지만 모험심은 남달랐다. 한참 호기심이 많은 꼬마의 눈에 동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지루하고 따분했다. 매일 반복적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허구한 날 친구들과 낯선 길을 찾아 자전거를 타고 동네 곳곳을 쏘다녔다. 어서 어른이 되어서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맘대로 다니고 싶었다.
“스무 살의 나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컸다. 반복되는 일상에 자꾸만 갈증과 허기를 느꼈다. 성인식을 치르기도 전에 이미 나는 충분히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플 때까지 시를 쓰고, 아프지 않기 위해 시를 썼다. 아프기 위해 시를 쓰는 날도 있었다.
“서른 살의 나는” 몸이 아픈 것을 제외하고는 예전처럼 예민하게 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예민할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새로 옮긴 직장에 적응해야 했고, 새로 사귄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데’ 여념이 없었다. 몸이 아픈 것은 병원에 가면 나아졌지만, 내 안의 나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마음이 아픈 날이면 며칠을 앓고 또 앓았다.
이제 곧 마흔이다. 매일매일 할 일이 쌓여있고, 세상에는 할 게 너무도 많다. “사는 일이 큰 이득이란 듯” 감정에 무뎌지고 “죽는 법을 자꾸 잊”으면서 사니까 끝내 “살아버린다”. “마흔 살의 나”에겐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십 대에 매일 아프다가 삼십 대에 조금씩 무뎌진 것처럼, 한층 더 ‘성숙’해질까. 아니면 단단한 일상을 붙잡고 자라는 넝쿨처럼 한 뼘씩 ‘성장’할까. “서른과 마흔” 사이에 무엇이 있든, 나는 이십 대의 나를 다시 소환하고 싶다. ‘죽을 만큼’ 힘들어하면서도 고독을 자양분으로 삼아 하루하루 점철되던 날들. 죽을 용기도 없으면서 매일 ‘죽겠다, 죽겠다’ 중얼대면서 정말 죽을 것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무언가에 몰두했던 그때가 문득 그립다.
인생에 있어 누구나 한 번쯤은 삶과 엉겨 붙어 싸워본 적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열정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그걸 허세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누구든 삶에 문학적인 면모가 있다고 믿는다. ‘시와 같이’ 짧고 굵은 일련의 일들이 모여, 삶의 변곡점에 섰을 때는 누구나 “산문이” 되듯이.
박희준 기자
#누군가 #박연준 #모험심 #호기심 #반복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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