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법원, 응급 낙태 허용? 대선 토론 전날 홈페이지 '실수' 공개
미국 연방 대법원이 환자의 건강 보호를 위해 낙태를 할 수 있다는 의견이 우세한 의견문을 공식 홈페이지에 잠깐 공개했다가 지우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미국 대선 후보 첫 TV 토론회를 하루 앞두고 사실상 조 바이든 대통령에 유리한 내용이 유출됐다는 평가다.
26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및 CNN방송 등에 따르면 연방대법원은 임신부가 '건강상의 이유로' 낙태를 할 수 있다는 소견이 6대 3으로 우세한 내용이 담긴 대법관 의견서를 잠시 공개했다. 의견서는 곧 홈페이지에서 삭제됐고, 퍼트리샤 매케이브 연방대법원 대변인은 "법원 실수로 문서가 웹사이트에 잠깐 올라왔으며 적절한 시기 최종 결정이 공개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만일 의견서의 내용과 동일하게 판결문이 나올 경우, 아이다호 주의 상소를 기각하고 임신부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낙태 시술을 한 의사를 법 위반으로 기소할 수 없다고 한 하급심 판결이 다시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아이다호 주는 미국에서 낙태를 가장 제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주 중 하나로, '여성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닌 경우 낙태 시술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이번 소송전의 시작은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다호주는 2022년 6월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50년 만에 뒤집으며 여성의 임신중절 권리를 폐기하자, 즉각 임신 6주 이후 낙태 금지법을 시행했다. 성폭행이나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임신부의 생명이 위험할 때만 예외적으로 낙태를 허용한다고 명시했다. 이를 어긴 의사는 최대 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그러자 바이든 행정부는 아이다호주의 엄격한 낙태 금지법이 연방정부 자금을 받는 병원으로 하여금 위급한 환자를 돌봐야 할 의무가 명시된 '응급의료처치 및 노동법'(EMTALA)과 충돌한다며 아이다호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EMTALA에 따르면 임신 중절이 되더라도 환자의 안정과 건강을 지키는 게 우선이다. 아이다호에서 EMTALA를 지키는 의사는 주법(낙태 금지법)에 따라 유죄가 되어 징역을 살게 되는 셈이다.
실제로 잠시 공개된 의견서에서 엘레나 판사는 "아이다호주의 엄격한 금지로 인해 주 최대 응급 서비스 제공업체가 약 2주에 한 번씩 임산부를 주 밖으로 공수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4월 AP 통신은 "올 상반기 긴급 상황으로 인해 최소 6명의 임산부가 주 밖으로 공수된 사례가 있었다"며 "작년에는 "한 환자가 긴급 항송을 한 사례도 있다"고 보도했다.
이 사건은 1심에서 바이든 행정부 손을 들어줬다가 2심에서 뒤집혔는데 항소법원이 소속 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열어 다시 심리하기로 한 상태다. 항소법원은 전원합의체 심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임신부의 건강 보호를 위한 낙태를 허용하기로 했는데 아이다호주가 이 부분을 문제 삼아 대법원에 심리를 요청한 상태였다.
다만 미국 언론은 대법원이 아이다호주의 상고를 기각하더라도 이는 일시적으로 낙태 금지 규정에 대한 예외를 허용하는 것일 뿐이며, 이 사건이 전원합의체 심리를 거쳐 결국 대법원까지 올라올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이번 의견서 '실수 공개' 해프닝이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TV토론 하루 전날 벌어진 점도 눈길을 끈다. 2년 전 미국 대법원이 낙태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로 여론이 확연하게 갈리면서 이번 대선의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됐다. 낙태권 찬반 논쟁이 대선의 핵심 쟁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임명한 보수 성향 판사들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어 수백만 명 여성의 권리를 빼앗고 생식의 자유를 앗아갔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 또 "이번 대선에서 공화당이 이긴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아기의 생명은 대단히 중요하다"며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한) 대법관들에게 감사를 전한다"고 반대 목소리를 냈다.
CNN 대법원 분석가이자 텍사스 대학교 법과대학 교수인 스티브 블라데크 "대법원 의견서만 보자면 이번 결과는 바이든 행정부에 중요하지만, 일시적인 승리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하늬 기자 hone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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