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가족도 처벌 면제…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 침해” [헌재 "친족상도례 헌법불합치"]

이종민 2024. 6. 27.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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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위헌 취지 판단 의미는
직계혈족·배우자, 동거 안해도 적용
“친족상도례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친족간 폭행·공갈·특수절도도 특례
“피해·관계회복 더 쉽다고 할 수 없어
사회적 합의 거쳐 대안입법 강구를”
“상속회복청구권, 10년 제한은 위헌”

27일 헌법재판소가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한 데는 일률적인 형 면제가 범죄피해자의 재판진술권이라는 헌법상 권리를 침해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다만 가족 사이 발생한 범죄를 ‘특별히 취급’할 필요성도 있다며 이들의 관계나 피해 정도, 회복가능성 같은 구체적 사정을 반영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라고 국회에 촉구했다.

이날 헌재는 우리나라의 역사·문화적 특징을 고려할 때 친족상도례 규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긍정했다. “경제적 이해를 같이하거나 정서적으로 친밀한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발생하는 수인 가능한 수준의 재산범죄에 대한 형사소추 내지 처벌에 관한 특례의 필요성은 수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 2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이종석 헌법재판소장(가운데)과 헌법재판관들이 6월 심판사건 선고를 위해 자리하고 있다. 이날 헌재는 친족상도례를 규정한 형법 328조 1항에 대한 위헌 확인 소송 4건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를 결정했다. 이제원 선임기자
다만 재산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 친족관계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획일적으로 형을 면제해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이 침해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형을 면제한다고 해서 가해자를 재판에 넘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무상 친족상도례가 적용되는 사건은 검찰 단계에서 불기소 처분을 하도록 하고 있어 피해자로서는 진술 기회를 박탈당한다.

헌재는 우선 친족상도례 조항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고 지적했다. 직계혈족이나 배우자에 대해선 실질적 동거 여부와 관계없이 적용되고, 8촌 이내 혈족이나 4촌 이내 인척은 동거를 요건으로 한다. 각각의 배우자도 포함된다.

헌재는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할 경우, 경우에 따라 형사피해자인 가족 구성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것이 돼 본래의 제도적 취지와는 어긋난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친족 간 범죄라고 해서 불법성이 경미하다거나 피해나 관계 회복이 더 쉽다고 할 수도 없다. 예컨대 특정경제범죄법상 횡령에서 범죄수익이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가중처벌하는데 이 역시 친족 간 발생한 범죄라면 형이 면제된다. 친족 간 폭행·공갈·특수절도도 마찬가지로 특례 대상이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뉴시스
헌재는 피해자 혼자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능력이 결여된 경우도 본래 법률 취지와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번 헌법소원의 청구인 중 한 명인 A씨도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작은아버지 부부로부터 퇴직금, 상속재산 등 약 2억3600만원을 빼앗긴 경우였다. A씨는 1993년부터 2014년 11월까지 20여년 동안 경남 창원시 소재 돼지농장에서 일했다. 그러던 중 부친이 사망하자 장례식장에서 만난 작은아버지 부부의 권유로 돼지농장을 떠나 동거하기 시작했다. 작은아버지 부부는 A씨와 4년 동안 동거하면서 A씨의 재산을 가져갔다.

A씨는 여러 기관의 도움으로 공공후견인을 선임해 작은아버지 부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다만 검찰은 A씨가 동거하지 않았던 기간에 빼앗긴 1400여만원에 대해서만 피해를 인정했다.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는 이들 부부가 ‘동거친족’으로 인정돼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은 이런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법관으로 하여금 형 면제 판결을 선고하도록 획일적으로 규정했다”고 꼬집었다.
헌재는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대안 입법을 강구하라고 국회에 요청했다. 구체적으로 “현실적 가족·친족 관계와 피해의 정도 및 가족·친족 사이 신뢰와 유대의 회복가능성 등을 고려한 피해자의 가해자에 대한 처벌의 의사표시를 소추조건으로 하는 등 여러 가지 선택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날 헌재는 상속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안 사람이 다른 공동 상속인에게 상속분 가액을 청구할 수 있는 기간을 10년으로 제한하는 민법 조항도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민법 999조 2항의 ‘상속권의 침해 행위가 있은 날부터 10년’ 중 민법 1014조에 관한 부분으로, 헌재는 “‘가액반환의 방식’이라는 우회적·절충적 형태를 통해서라도 상속권을 뒤늦게나마 보상해 주겠다는 입법 취지에 반할 뿐 아니라 권리구제의 실효성을 완전히 박탈한다”고 지적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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