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치권 남성 취재기자들, 단톡방서 언론인·정치인 성희롱

노지민 기자 2024. 6. 27.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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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대통령실 출입하는 남성 기자 3명, 기자들 신체부위 품평에 정치인 성희롱도
"내밀한 대화로 보기 어렵고 전파가능성" "언론사 연합해 문제 해결 책임 이어져야"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메시지들이 쌓여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이미지. 사진=Getty Images Bank

정치권을 취재하는 남성 기자들이 다수의 언론인 및 정치인에 대해 성희롱 발언을 한 카카오톡 대화방(단톡방)이 확인됐다. 피해자 대다수는 여성이고 남성 피해 사례도 있다.

미디어오늘 취재를 종합하면 국회·대통령실 등을 출입하는 남성 기자 3명이 최소 8명 이상에 대한 성희롱 발언을 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해 해당 대화 입수 경위와 피해자 정보는 공개하지 않고,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소속 언론사까지 공개한다. 기사화하기에 부적합한 표현은 특수문자로 대체했다.

해당 단톡방에선 취재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동료 기자들이 성희롱 대상이 됐다. A기자는 단톡방에 취재 현장에서 휴대전화 및 노트북을 들고 나란히 앉아 대기하는 남성·여성 기자의 모습을 촬영해 공유한 뒤, 두 기자의 하반신 부분이 좀 더 크게 보이도록 다시 찍어서 올렸다. 이 사진을 본 B기자가 “○○(남성 성기를 지칭한 비속어) ○나 작을 듯”이라 말하자, C기자도 웃음으로 호응했다.

남성 기자들이 여성 기자 주변에 모여 있는 모습을 삽입형 자위기구에 비유하기도 했다. C기자가 특정 언론사의 기자실 지정석(부스)에 타사 남성 기자들이 모여 있다고 말한 뒤, B기자가 “○○○인가”라며 특정 여성 기자 이름을 언급했다. 그러자 A기자가 “딜도들 소집했나보지”라고 답한 것이다.

한 인물을 특정해 성희롱적 발언을 한 사례들도 확인됐다. 한 여성 기자를 두고 A기자는 “가슴이 진짜” “진짜 꽉꽉이들”이라고 했고, B기자도 “꽉찼더라”고 호응을 하면서 “혀 임티(이모티콘) 좀”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A기자는 특정 캐릭터의 혓바닥이 프로펠러처럼 돌아가는 모습의 이모티콘을 공유하기도 했다.

한국기자협회가 지난해부터 여성협회원 대상으로 주최하고 있는 풋살대회 참가자들 경기 모습도 성희롱 대상이 됐다. A기자는 “여자풋살은 ○○ 유방축구네”라고 하거나, “○○ 큰 애들이 가슴트래핑 ○○ 잘해”라고 한 뒤 특정 언론사 기자를 지칭했다. C기자는 역시 웃음으로 동조했다. 일부 참가자 사진이 공유된 가운데 외모를 품평하는 대화도 이뤄졌다.

여성 정치인도 성희롱 대상에 올랐다. A기자의 경우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 식당 이름과 여성 국회의원 실명을 거론하면서 “○○○ 말고 ○○○ 먹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밖에 A기자는 여성 기자들에 대해 “○○ 개 ○같은 걸레년이네” “씨○○ 병걸려 뒤져라” 등의 성적 욕설을 쓰기도 했다. 일부 기자의 경우 A기자와 친분 관계가 없음에도 욕설 대상이 된 것으로 파악됐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A기자는 서울신문, B기자는 뉴스핌, C기자는 이데일리 소속으로 확인됐다. A기자는 27일 “가까운 지인끼리 개설한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관련 대화를 나눈 것이 맞다. 동성끼리다보니 저희끼리 대화를 나누는 와중 수위가 높고 선을 넘는 부적절한 발언이 있었다”며 “저희끼리 나누며 저희끼리만 보는 대화방이라 생각하다보니 도가 지나쳤던 부분이 있었다”고 전했다.

▲무릎 위에 올린 노트북에 무언가를 적는 사람과 휴대전화를 보는 사람 등이 나란히 앉아 있는 이미지. 사진=Getty Images Bank

그간 문화예술계 '미투',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등을 수행한 박수진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이 대화에서 특정 기자나 여자 정치인에 대한 언설은 모두 성희롱에 해당하는 표현행위”라고 했다. 박 변호사는 “해당 단톡방에 피해자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성희롱은 성립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직장동료나 상하관계에 있는 사람들 간의 대화는 당사자에게 전달되지 않더라도 근무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출입처 내에서 한 여성 기자에 대하여 다른 남성 기자들이 성적 농담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 그 발언 당사자의 시각에서 이미 그 여성 기자는 동등한 인격체의 언론인 동료로 간주되었다고 보기 힘들며, 이는 직간접적으로 그 여성의 근무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또 “형사법적으로는 모욕죄가 문제되는데 소수의 사람만이 이야기하는 대화방이라고 하더라도 전파가능성이 있으면 공연성이 인정된다는 게 대법원의 입장”이라면서 “이 사건에서도 성적 농담을 하는 남자 기자들의 의견에 침묵하거나 동조하지 않는 대화자들에 의하여 언제든 외부로 유출될 위험성이 있어 내밀한 대화라고 보기 어렵고, 전파가능성이 인정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당사자가 모르게 성적으로 모욕한 행위이기에 더 해악적이라 볼 수 있다”며 “더 장기화되고 은밀하게 이뤄지고, 알려지지 않았더라면 더 오랫동안 큰 사안이 되었을 가능성도 큰 문제”라고 심각성을 짚었다. 김 소장은 “직장내성희롱은 노동권을 침해하는 것이기에 노동관련 법에서 규제하고 있다. 언론사 기자들이 한 행위는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언론사 기자들에 대한 노동권 침해이고, 취재 대상에 대해서도 성적 모욕을 한 것이기에 직업 윤리나 취재 윤리에도 맞지 않는 행위”라며 “문제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뿐 더 있을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유사한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언론계 내부의 적극적인 대응도 요구된다. 앞서 지난 2017년 남성 기자 4명이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여성 기자들의 실명, 회사, 신체적 특징 등을 자세히 언급하면서 성희롱한 사건이 알려졌고, 이후 솜방망이 징계 논란이 불거졌다. 2019년에는 기자, PD 등 언론인들이 다수 참여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가 이뤄지고, 불법촬영물과 음란물이 공유된 사건이 있었다.

김혜정 소장은 “국회 등 출입처의 기자실, 각 언론사들이 연합해서 문제 해결의 책임이 이어지면 좋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언론사 사이 소문이 빠르고, 마치 불법촬영물이 유포되듯 가해자들에게 관대하고 피해자들에 대해 명예가 훼손되는 방식으로 소문이 나는 등 2차 피해가 있을 수 있다”며 “각 출입처에 기자들을 파견하고 있는 언론사들은 피해자를 보호할 책무가 있고, 가해자가 소속된 언론사는 이에 대한 교육이나 징계 의무가 있다. 해당 언론사들이 이런 것들을 꼭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지 보도 직후 서울신문 측은 A기자 관련해 “오늘 업무정지에 들어갔고 사실 확인을 거쳐서 징계위원회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소집해 (사실관계) 확인이 되면 중징계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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