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 로마법 선언 연원…1953년 친족 문제에 국가개입 최소화 취지 제정
가족유대 약화되며 의미 퇴색
‘가부장제 산물’ 비판도 커
피해자가 처벌 선택하는 등
일률적 형 면제 규정 바뀔 듯
27일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친족상도례가 71년 만에 수술대에 올랐다.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는 친족 사이에 발생한 재산범죄에 주는 ‘특례’를 뜻한다. 가족 사안의 특수성을 인정해 사법기관이 개입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가족 간 유대관계가 약해지면서 의미가 퇴색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형법 328조의 친족상도례는 “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고대 로마법 선언에 연원을 둔 조항이다.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가까운 친족 사이에는 재산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경우가 많아 친족 간의 재산범죄에 대해선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가정 내 문제가 사법화하면 가정의 결속력을 흔들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최근 가족의 형태가 다양화하고 유대관계가 약화하면서 친족상도례는 ‘가부장제의 산물’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전통적인 가족 형태가 해체되고 재산분쟁도 늘면서 시대착오적이라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럼에도 친족상도례는 민법상 가족이 아닌 관계까지 적용됐으며, 특례 대상 범죄도 늘었다. 2013년 대법원이 친족상도례를 형법상 재산범죄를 포함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재산범죄에도 확대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한 판례도 현재까지 유지돼왔다.
류기환 전 세한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친족상도례 규정의 개정 방향’ 논문에서 “친족상도례 규정의 입법 취지를 다른 시각에서 보면 친족 사이에서의 재산범죄는 친족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파괴하고, 친족 사이에서 맺어진 생활공동체로서의 정서적 유대감을 해체한다는 점에서 일반인의 범죄에 비해 오히려 더 가중된 비난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친족상도례가 구체적 사정과 사안의 경중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적용된다는 지적도 받았다. 지적장애인, 치매 환자의 친족이 친족상도례를 악용해 재산범죄를 저질러도 처벌이 사실상 어렵다. 이날 헌재가 결론 내린 헌법소원의 청구인 중 한 명은 지적장애 3급 장애인으로, 부친 사망 후 친척들이 상속재산 등을 빼앗았지만 검찰이 공소권이 없다고 결정하면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앞으로 친족 간 재산범죄에 대한 보호 장치가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배인철 변호사(삼광파트너스 법률사무소)는 “반의사불벌죄로 전환한다든가 액수에 제한을 두는 등 타협점을 찾아서 친족상도례의 취지는 살리면서도 제한적으로 적용하는 식으로 개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방송인 박수홍씨 사례처럼 친족상도례를 악용하는 ‘꼼수’에 대한 방어도 가능해질 수 있다. 박씨의 친형은 현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데, 비동거 관계로서 친족상도례상 형면제 대상은 아니지만 친고죄 대상이 된다. 그런데 직계존속으로서 형면제 대상인 박씨의 부친이 자신이 횡령했다고 주장해 처벌을 피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국회는 여러 차례 친족상도례 개정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14대 국회에 친족상도례의 형면제 조항의 적용 여부를 판사가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이 제출됐지만 통과되지 않았다.
헌재가 가족 간 재산범죄에 대한 특례 필요성은 긍정하면서도 ‘일률적 형면제’를 지적한 만큼 국회는 친족상도례 조항을 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 같은 소추조건 규정으로 바꾸는 안을 고려할 수 있다. 형을 아예 면제하기보다 피해자에게 6개월의 고소 기간을 주거나,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을 경우 형벌을 선고할 수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가 의사표현을 하지 않아도 공소할 수 있어 가정 내 문제 해결에 국가가 먼저 개입한다는 점에서 친고죄와 다르다.
양태정 변호사(법무법인 광야)는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는 처벌 불원 의사만 있으면 처벌을 면하게 할 수도, 처벌할 수도 있기 때문에 피해자가 처벌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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