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훈의 법과 사회]정보의 비대칭 틈새 노리는 사기꾼
국가 범죄통계에 의하면 전체 범죄 건수가 줄어들고 있다. 살인과 강도, 강간 같은 강력범죄도 감소하고 재산범죄도 줄어드는데, 유독 사기 범죄만 증가하는 추세다. 10년 전에 비해 절도는 줄었는데 지능범죄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사기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사기죄가 범죄 건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수법도 다양하고 교묘해졌다. 대부분 조직적으로 벌어진다. 피해자나 피해액도 대규모다. 보이스피싱도 그렇고 전세 사기도 마찬가지다. 이에 반해 사기범 검거율은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 수사당국은 신종사기 등 민생침해범죄 집중단속을 외치지만 진화하는 사기범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검수완박처럼 사법시스템이 뒷걸음질하는 사이 사기범 천국이 되었다고 진단하는 이도 있다. 디지털·인공지능 시대에 신종사기범이 폭증한 탓인지, 검거율이 떨어져 사기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것인지, 수사가 제대로 안 돼서인지, 양형이 무른 탓인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다.
강력범죄가 줄어드는 건 다행이다. 생명 또는 신체를 침해당할 위험성이 낮아졌으니 안전한 나라라는 징표다. 법정형과 양형이 강화된 측면도 있지만, 검거율과 촘촘한 CCTV 설치나 범죄예방정책 덕이다. 범죄건수도 줄어드는 추세이고 흉악범죄는 더욱 감소하고 있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안전한 나라, 대한민국이라 자부할 수 있다. 가끔 발생하는 ‘묻지 마 범죄’만 막을 수 있다면 객관적 안전도와 주관적 안전감 모두 최상위인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런데 안심하기엔 아직 이르다. 내 재산을 노리는 사기꾼이 사방에 널려 있다. 살인이나 강간은 가끔 벌어지고,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범죄가 아닐 수 있지만 사기는 이미 내 근처에 와 있는 범죄다. 보이스피싱이나 딥페이크는 지금 나에게 와 있을 수 있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두 통이나 받았다. e메일이나 문자 열어보기가 겁난다. 사기당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면서 열어보는 게 일상습관이 되었다. 전세사기, 문자사기, 유사수신행위, 다단계사기, 리딩방 등 사방에서 정보 부족과 부에 대한 욕망의 틈새를 노린다. 방심하기만 기다렸다가 덥석 물어버린다. 덜컥 덫에 걸리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재산도 날리지만 미래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가정도 파괴된다. 막다른 상황에 부닥치면 자살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찌 보면 강력범죄가 노리는 생명과 신체보다 더 중한 것을 잃게 되는 수도 있다.
사기는 속아 넘어간 피해자의 부주의를 탓할 수 있다. 사회경험이 없는 청년이나 신혼부부 제 잘못일 수도 있다. 돈이 된다니 달려든 투자 피해자를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조직적 전세사기만 놓고 보더라도 법과 제도의 탓이 더 크다. 여러 원인이 있지만, 허술하고 방만한 전세자금대출 제도나 부동산 감정평가의 허점이 투기꾼의 갭투자를 부추기고 조직적 사기가 가능하도록 악용되었다. 계약상 중요한 정보의 비대칭성은 덜렁거리지 않고 꼼꼼히 따져 봐도 개인이 메울 수 없는 문제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사기꾼이 노리는 정보의 불균형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가가 법과 제도로 막거나 채워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정보의 비대칭 상태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임대인정보 제공 의무가 세입자 안전장치의 예다. 집주인 확인 없이도 전세 보증금 임차권등기를 할 수 있는 제도는 이미 도입되었다.
금융·통신 기술과 인공지능(AI)의 발달에 따라 사기수법은 진화하고 하루가 다르게 변이가 출현한다. 조직적이며 국경을 넘나든다. 기존의 전통적인 법과 시스템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예방과 신속한 사후 구제 및 사기범 엄벌을 내용으로 하는 사기방지기본법을 제정하거나 자산과 금융정보를 감시·추적·분석하는 통합기구나 시스템을 구축하고, AI 기술을 활용하여 불법스팸문자를 차단하는 등 종합적인 대책 마련과 입법 보완이 시급하다.
하태훈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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