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돈 없어 감옥에 끌려간 5만7267명
정권 교체가 누군가에겐 공포를 뜻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돈이 없어 벌금을 내지 못해 감옥에 끌려가는 가난한 사람들이 그렇다. 문재인 정부 5년차였던 2021년 한 해 동안 벌금미납으로 감옥에 갇힌 사람은 2만1868명이었다. 문재인 정부에 이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2022년에는 2만5975명으로 늘었다. 윤석열 정부 2년차인 2023년에는 두 배 이상인 5만7267명으로 급증했다. 부자 감세로 줄어든 곳간을 벌금으로라도 채우려고 무리했던 것 같다. 벌금 때문에 잡혀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그만큼 벌금 납부도 늘어난다.
벌금형을 선고받았다는 것은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될 만큼 가벼운 범죄를 저질렀다는 거다. 가벼운 범죄에는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노출된다. 얼마라도 급전이 필요한데, 돈을 융통할 방법은 꽉 막혀 있을 때, 이 곤란한 상황을 파고드는 악질 범죄자들이 있다. 마치 은행이라도 되는 양 불쑥 문자를 보낸다. 통장을 보내면 대출이 가능한지 살펴보겠다는 거다. 통장을 보낸 대가로 돈을 주겠다는 유혹과 달리, 대출 운운하는 것은 미끼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진화한 수법이다.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면, 자기 통장은 대포통장으로 악용된다. ‘전자금융거래법’은 통장을 넘겨주는 행위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고 있다. 이런 경우엔 집행유예를 통해 따끔한 교훈을 주면 그만이지만, 경찰-검찰-법원으로 이어지는 형사시스템은 기계적인 처벌을 반복한다. 피도 눈물도 없다.
200만원쯤 빌려볼까 하다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전과자가 되고 500만원 정도의 벌금을 맞는 처지가 된다. “가난이 죄”라는 말이 꼭 들어맞는 상황이다. 500만원이면 50일을 갇혀야 하는데, 생계를 내팽개치거나 돌봐야 할 가족을 두고 감옥에 가서 몸으로 때울 수도 없다. 격리해야 할 만큼 위험하거나 죄질이 나빠서 감옥에 가두는 벌을 받은 것이 아닌데도 그렇다.
이렇게 감옥에 갇힌 사람이 지난해에만 5만7267명이었다. 올해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돈 때문에 감옥에 끌려갈지 모르겠다. 냉방장치도 없는 좁은 감옥에서 구금의 고통만 몸에 새기며 가난의 설움을 곱씹어야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
당장 500만원쯤 되는 벌금을 한꺼번에 마련하는 건 어렵지만, 50만원씩 10개월에 걸쳐 나눠 낼 수 있다면? 그만큼 감옥 가는 사람들은 부쩍 줄어들 거다. 인권연대의 장발장은행은 벌금을 빌려주고 나눠 갚도록 하는 것만으로 가난한 사람의 감옥행을 막고 있다. 검찰이 스스로 마련한 ‘검찰집행사무규칙’도 6개월에서 최장 12개월까지 분할납부(분납)나 납부연기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수급권자와 차상위계층, 한부모가족, 자활사업 참여자, 장애인, 본인 외에는 가족을 부양할 사람이 없는 사람, 가족이 아프거나 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사람, 실업급여를 받거나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사람이 대상이다. 당사자가 신청해도 되고, 검사 직권으로 분납을 결정할 수도 있다. 현황은 어떨까?
정보공개를 청구하니, 검찰은 신청자 대부분이 분납 허가를 받았다고 했다. 2023년에는 2만9787명 신청, 2만9777명 허가였다. 3만명 가까운 사람 중에 딱 10명만 빼고 모두 허가받았다. 놀라운 확률이다. 5만7267명이 감옥에 끌려간 2023년의 벌금 납부 대상자는 51만209명이었다. 이 중 겨우 5.8%만이 분납 신청을 했다. 왜일까. 제도를 몰라서일까.
검찰은 분납 신청 자체를 잘 받아주지 않는다. 분납을 허가받으려면 벌금의 절반이나 적어도 30% 정도를 미리 내야 한다. 500만원이라면 200만원 정도는 선납하고, 나머지 300만원을 2개월로 나눠 내게 하는 식이다. 규정대로 6개월이나 12개월에 나눠 내게 하는 일은 전혀 없다. 분납의 장점을 하나도 살리지 못하는 완고한 운영이다.
검찰이 열심인 것은 벌금 징수다. 지청별로 ‘특별검거반’을 만들고, 당장 벌금을 내지 않으면 OO빌라인 집에 쫓아가겠다. 식품인 당신 직장에도 쳐들어갈 거란 협박을 일삼고 있다. 말로만 그치지 않고, 진짜 잡으러 가는 경우도 많다.
검찰은 2022년 8월에 “빈곤 취약계층 벌금미납자 형집행 제도개선”을 천명했고, 이를 통해 감옥 대신 사회봉사를 활성화하고, 검사 직권으로 분납을 허가하는 등의 노력을 한다고 밝혔지만, 검찰의 ‘제도개선’ 이후 가난한 사람의 감옥행은 두 배 이상 늘었다. 살아 있는 권력 앞에선 꿈쩍도 못하는 검찰이 가난한 사람에게만 엄정한 법집행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냉혈한들에게 형집행권을 계속 맡겨둬야 할지도 검찰개혁의 과제로 따져봐야겠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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