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성찰]공화국을 허무는 지도자의 분노
분노는 상반된 성격을 가진 난해한 감정이다. 하나는 자신과 주위를 해치는 화염, 다른 하나는 진보적인 역사를 창출하는 힘이다. 대표적으로 전자는 인간을 극한의 고통에 몰아넣는 전쟁이며, 후자는 억압된 자들이 새 질서를 세우는 혁명이다. 같은 분노인데도 어째서 반대의 현상이 일어날까. 대개 종교는 이를 해로운 감정으로 본다. 불교에선 열반과 해탈을 방해하는 3독심, 즉 탐욕과 성냄과 무명에 속할 정도로 중대한 번뇌다. 자신의 참된 심성을 가리고, 죽어서는 지옥에 떨어진다고 한다. 기독교의 7대 죄악에도 분노가 들어 있다.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 또한 <화에 대하여>에서 이성의 통제를 떠난, 보복하고 싶은 욕망인 악덕으로 보았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과불급이 없는 중용에 따른 분노의 표출은 온화한 인격과 통한다고 보았다. 연구자들은 위협적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진화의 본능으로 보기도 한다.
나는 분노의 발생 원인과 대상에 따라 그 가치가 정반대가 된다고 본다. 욕망 추구를 위해 적으로 삼은 상대를 지배나 제거 대상으로 본다면, 업의 악순환에 갇혀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욕망을 뿌리로 한 분노는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자신의 덕성을 파괴하고 역으로 분노의 노예가 된다. 반대로 공공선을 지향하거나 이웃의 고통에 차마 참지 못하고 폭발한 분노는 그 업의 선순환으로 인해 더 큰 복덕을 얻게 될 것이다. 인류와 연계된 심층의식에서 나온 연민과 자비의 마음은 희생적 정열을 불러일으킨다. 이웃의 고통을 내 것으로 삼겠다는 개아를 초월한 강인한 의지가 자동적으로 따라온다.
<분노하라>(임희근 옮김)의 저자 스테판 에셀은 2차 세계대전 때 레지스탕스에 참여한 경험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 “이제 총대를 넘겨받으라, 분노하라!”고 외쳤다. 그는 부정하고 부조리한 사회에 대해 사르트르가 ‘인간의 책임’을 강조한 것에 감명을 받고 현실에 뛰어들어 사선을 넘나들기도 했다. 지금이야말로 레지스탕스가 필요한 때다. 자본 권력은 여전히 인간을 도구로 삼아 이윤을 극대화한다. 화재로 23명이 숨진 화성 리튬전지 공장의 참상은 자본에 포획된 인간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분노는 닥쳐올 위기적 상황을 자각하고 우리 모두를 구제하는 이타심으로 무장한 연대의 감정이다. 인간 존엄성을 무너뜨리는 불평등한 사회, 지구온난화로 오지 않을 후손들의 미래, 자원 약탈을 위한 자연 파괴, 수십 번의 집단 자살을 향한 핵무기, 지구를 황폐화시키는 원전 건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멸시, 소수자들에 대한 각종 형태의 폭력 등은 일상적인 위협을 우리에게 가하고 있다.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길거리로 나와 분노함으로써 고통스러운 현실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지도자들의 분노는 피눈물로 쌓아올린 신뢰의 사회를 무너뜨리고 있다. 그들이 국가 지도자로 등극한 것은 정의를 갈망한 자신의 분노에 찬동한 대중들의 공감에 의한 것. 그러나 막상 권력을 잡은 뒤엔 공공(公共)의 분노가 사적인 분노로 뒤바뀌는 일들이 일어난다. 리더의 분노는 구성원들 간의 공정성을 훼손시키고 조직의 불확실성을 배가시킨다. 아래로 분노의 연쇄반응이 일어나 조직을 붕괴시킨다. 하여 지도자들은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분노의 독을 내뿜지 않아야 한다.
분노를 부정적으로 본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분노와 용서>에서 이를 특정 대상을 목표로 믿음에 종속된 가치를 실현하는 선택적 수단으로 본다. 편향성에 사로잡힌 지도자의 분노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는 자기 합리화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인적·물적 환경을 소진시킨다. 일제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후, 자신만의 우월한 도덕적 분노를 뿜어댄 지도자들이 득세했기에 숱한 백성의 희생이 따랐던 것이다. 그들과 다름없는 현 대통령의 선택적 분노가 고 채 상병 사건의 투명한 처리를 방해했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한 것이다. 민주공화국이 깊은 수렁에 빠지기 전에 대통령은 솔직하게 결자해지해야 한다.
원익선 교무 원광대 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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