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 도전에 직면한 안온한 개미의 경제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2024. 6. 27.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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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투자부진을 걱정하는 이야기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실은 주요국들 중 가장 활발하게 투자하는 국가가 한국이다. 2023년 기준 한국 GDP에서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32%에 달한다. GDP 대비 투자 비중이 30%를 넘어가는 국가는 흔치 않다. 한국보다 투자를 많이 하는 나라는 중국 정도밖에 없다. GDP에 잡히지 않는 기업들의 해외직접투자(FDI)까지 감안하면 한국은 ‘왕성한 투자국가’이다

투자는 ‘현재의 욕망을 미래로 이연’하는 행위이다. 다른 표현으로는 ‘보유하고 있는 경제적 자원을 당장 쓰면서 효용을 누리기보다는, 미래에 파이를 더 크게 키워 소비’하고자 하는 경제적 활동으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뭔가 검약·근면한 느낌이고, ‘개미와 배짱이’ 우화에서의 개미가 떠오르기도 한다.

투자는 미래에 대한 꿈이 적극적으로 투영되는 행위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크지만, 다른 방향에서의 해석도 가능하다. 현재의 욕망을 끊임없이 미래로 이연시키지만, 그 성과는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GDP 구성항목들 중 경제주체들이 누리는 당장의 효용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는 민간소비인데, 2023년 한국의 GDP 대비 민간소비 비중은 49%에 불과하다. 국가 간 비교에서 한국 경제의 투자 의존도는 압도적으로 높고, 민간소비 비중은 평균을 하회하고 있다.

한국과 비슷한 ‘개미형 경제’의 극단이 중국이고, 그 대척점에는 미국이 있다. 2023년 중국의 GDP 대비 투자 비중은 41%이고, 민간소비 비중은 39%이다. 투자 비중은 극단적으로 높고, 민간소비 비중은 극단적으로 낮다. 미국은 민간소비 비중이 67%에 달하고, 투자 비중은 21%다. 미국의 GDP 대비 투자 비중은 오랫동안 15% 내외에서 움직이다가, IRA(인플레이션방지법안) 발효 이후 반도체와 배터리 등 전 세계 공장을 미국으로 끌어들이면서 그나마 20%대에 올라섰다.

한국, 20세기 초 선진국 반열 유일

혹자는 말한다. G2의 반열에 오른 중국 경제가 5% 성장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라고. 절반은 맞고, 절반은 다르게 생각할 여지가 있다. 성장의 내용이 다르다. 미국처럼 충분히 소비하면서, 즉 당장의 즐거움을 누리면서 2%대로 성장하는 경제와 집단적으로 욕망을 억제하면서 5% 성장하는 경제를 수치만 가지고 비교할 일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한국과 중국,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성장률은 높지만, 국민들의 만족도가 높지 않은 이유도 민간소비의 비중이 낮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다만 투자 중심으로 돌아가던 경제가 민간소비로 순조롭게 전이됐던 사례를 찾긴 힘들다. 미국만이 거의 유일한 성공 사례이다. 한때 저축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을 정도의 왕성한 소비 문화, 이를 가능하게 한 기축통화국으로서의 이점 등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1억 내수를 외쳤던 일본도 민간소비 중심 경제로의 전환에 실패했고, 중국도 전망이 밝아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예외적인 사례라면 한국이 그래도 투자로 일가를 이룬 국가라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투자 중심 국가는 ‘제조업 강국’의 다른 표현이다. 장기적인 걱정은 미국 주도로 글로벌 밸류체인이 재편되면서 동아시아 국가들이 담당했던 제조 공정을 미국이 하겠다고 나서는 데 있다. 1970년대 이후의 글로벌 경제는 미국은 아이디어를 내고, 생산은 동아시아 국가들 주도로 이뤄지는 분업체제로 이뤄져 왔다. 미국은 ‘열 번 틀려도, 한 번만 맞으면 대박을 치는’ 고부가가치 경제로, 동아시아 국가들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빡빡한’ 제조업 공정에서 비교우위를 가지고 살아왔다. 미국이 동아시아 국가들처럼 제조업 공정을 잘 운용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우리에게 익숙했던 판이 바뀌고 있는 만큼 한국 경제도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해야 한다.

뜬금없는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한국 경제가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불평등’이라고 본다. 세세하게 분위별 소득 증감 등과 관련된 불평등 진위 논쟁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 경제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다만 20세기 초 피식민지 국가에서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거의 유일한 사례가 대한민국인데, 우리의 성공 스토리는 평등에 기댄 경쟁과 이에 따른 역동성에 의해 가능했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평등하게 경쟁하는 사회가 밑거름

발터 샤이델은 저서 <불평등의 역사>에서 인류사의 경향적 추세는 불평등이 강화되는 흐름에 다름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그래도 중간중간 불평등이 완화되는 시기가 도래하곤 했는데, 평등한 사회는 기존 질서가 철저하게 파괴되는 국면에서 나타났다는 주장을 편다. 책은 전쟁과 혁명, 대규모 역병 등이 나타난 이후에 평등한 사회가 나타났다고 서술한다.

나는 한국전쟁 직후의 극빈국 한국이 그런 사회였다고 본다. 36년의 일제 식민지배는 기존 봉건왕조의 기득권 세력을 축소시켰다. 이승만 정권의 토지개혁을 거치면서 봉건제 경제의 지배층이었던 지주들의 힘이 빠졌다. 곧바로 비극적인 전쟁이 뒤이었다. 그야말로 ‘그라운드 제로’였고, 모두가 동일한 출발점에 섰다. 서울대 사회학과 이재열 교수는 전쟁 직후의 한국이 고만고만한 ‘프티 부르주아’의 사회라고 이야기했는데, 공감이 간다. 좋은 직업은 공무원과 은행원 정도였고, 나머지는 농촌의 소규모 자영농이나 영세 자영업자였다는 것이다. 대체로 비슷한 이들이 비교적 평등하게 경쟁을 했다. 현재의 재벌 집단들을 보더라도 유력한 봉건지주가 성공한 자본가로 변신한 사례는 거의 찾기 힘들지 않은가. 교육이 계층 이동의 유력한 사다리였지만, 대학을 나오지 않더라도 성취가 가능했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상고 출신의 대통령 두 사람을 배출했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가 지닌 역동성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전쟁 이후 수십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성취와 실패가 누적됐고, 이를 반영한 질서는 공고화됐다. 안온한 개미로 사는데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요즘과 같은 상황에서는 한국의 고착화된 질서와 역동성의 상실이 큰 핸디캡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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