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분열에 휩쓸리지 않으려면[책과 삶]
거대한 물결
미치코 가쿠타니 지음 | 김영선 옮김
돌베개 | 332쪽 | 1만9000원
미치코 가쿠타니는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의 서평가로 유명했다. 1998년 비평 부문 퓰리처상을 받았다. 은퇴한 뒤 자신의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정치·사회·역사를 조망하는 비평서를 쓰고 있다.
미치코의 <거대한 물결>은 일본 에도 시대 말기 화가인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대표작인 목판화 ‘후지산 36경’ 중 ‘가나가와 바다의 파도 아래’에서 제목을 따 왔다. 미치코는 1980년대 미국 육군대학원의 군사용어인 ‘뷰카(VUCA)’로 2020년대를 설명한다.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이다. “오늘날 세계를 뒤흔드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오래된 확신과 전제를 쓸어내고 기회와 위기 모두의 변곡점을 만들어내고 있다.”
미치코는 19세기 말 자본주의 산업화가 발전하던 미국의 도금시대(鍍金時代), 정치·경제적으로 혼란이 극심하던 유럽의 1차 세계대전 직후 시기를 주목한다. 당시 미국에선 경제적 불평등과 반이민 열풍이, 유럽에선 파시즘이 번성했다. 미치코는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정책, 성소수자 권리의 후퇴 등 현재 상황과 비슷하다고 분석한다. ‘부족 정체성’이 시민의 의무와 상식보다 우선하고, 개인들이 고립돼 전체주의에 휩쓸리기 쉬운 시대라는 것이다.
현재가 사회의 근본적 변화가 가능한 시기라는 희망도 던진다. 미치코는 위키피디아, 유튜브, 틱톡 등 디지털 기술이 ‘양날의 검’이라고 본다. 변방의 목소리가 기득권을 뒤흔들 수도 있지만,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혐오를 증폭시킬 수도 있다. “지금 우리는 최대 고비의 순간에 있다. 점점 더해가는 혼란에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의 가치와 제도를 지키고 더욱 공정하면서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길을 찾을 것인가.”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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