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일상의 용기

권명환 해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부장 2024. 6. 27.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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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결핍, 완벽주의라는 갑옷 뒤에 숨어
나 자신, 우리로 존재할 용기…불완전함과 빈틈을 수용해야
권명환 해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부장

나는 매일 진료실에서 ‘용기’와 만난다. 용기는 영웅뿐만 아니라 일상의 보통 사람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슬픔과 고통의 장애물을 맞닥뜨리는 중에 용기가 가장 잘 드러난다. 내담자들에게서 용기를 발견할 때 경외감을 느낀다.

한 달 동안 각기 다른 사고로 가족 세 명을 잃은 분을 만났다. 그분은 지금까지 울지 못했다. 울면 자신이 무너질까 봐 남겨진 아이 생각에 울 수 없었다. 대화를 나누다가 진료실에서 억눌렀던 감정이 터졌다. 지연된 슬픔은 늘 그런 식이다. 뒤늦게 차오르는, 한참 오열하고 나지막이 속삭인다. “어떻게든 살아야죠.”

내담자들의 용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자기 긍정이다. 자신을 가로막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지속하는 자기 긍정, 용기는 그것이 크든 작든 저마다의 폐허에서 다시 시작하는 움직임이다. 바닥을 친다는 말, 바닥만큼 명징한 희망이 있을까. 바닥에서 상승하는 그 움직임이 용기의 스냅 사진이다.

많은 분이 한 발짝 떼는 게 두려워서 진료실을 찾는다. 대어를 낚으려면 먼바다로 나가야 한다. 뭍에서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로 발만 떼면 된다. 사실 그들 대부분은 이미 다 갖추고 있다. 물고기 잡는 법도 알고 안전한 배도 준비되어 있다. 다 갖추었는데 뭔가 부족한 불안감에 망설이고 주저한다. 용기를 내면 안정된 발판을 잠시 잃지만 용기를 내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잃게 된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스무 번 봤다는 내담자와 얘기를 나누었다. 스무 번이나 보면서 느낀 게 뭔지 물었다. 그분은 담담하게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아니, 좋은 어른이 되겠다고 약속할게요”라고 답한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 것과 약속하는 건 무엇이 다른가? 나는 약속의 다짐에서 용기를 느꼈다. 오랫동안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온 분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전체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용기를 낼 수 있다. 나에게서 너와 우리로 관심을 확장하고 나아가 좋은 어른이 되겠다고 약속한다. 그것은 자신의 모습 있는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함께 살 용기 즉 협력할 용기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알코올중독 구 씨(손석구)에게 아무도 술 끊으란 말을 하지 않는다. 구 씨가 이미 천 번 넘게 들었을 말, 사실 당사자가 제일 잘 안다. 알코올중독은 하나의 먹이밖에 먹을 줄 모르는 물고기, 술이 애인이고 오래 내 곁을 지킨 친구인데 갑자기 절교하라면 어떨까? 아직 대안이 없는데 술만 끊으면 행복해질까? 술에 취해 넘어져 피를 흘리면서도 소주를 사는 구 씨, 사람 질리게 하는 주정 의존에도 단주를 말하는 사람이 없다. 그건 외면이나 방관이 아니라 오래 지켜본 이웃의 배려가 아닐까.

중독은 사회적 관계에 참여할 용기가 부족한 사람이 눈앞에 직면한 문제를 회피하는 전략이다.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는 게 아니라 두려움을 헤쳐 나가는 것이다. 하루를 사는 게 하루를 저지레하는 기분이 들 때면 그때 내담자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좋은 어른이 되겠다고 약속할게요.”

SNS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나만 빼고 다들 행복해 보인다. 화려하고 자기애가 넘치며 영화 같은 일상을 산다. 하지만 실상은 자신이 바라는 나와 지금 자기 모습이 너무나 달라 괴로워하기 일쑤다. 자기애, 나르시시즘에는 평범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내재해 있다. 자신이 특별하지 않아서 사람들의 관심을 못 받거나,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 말이다. 자학과 자뻑은 동전의 양면이지 않을까. 자기애는 자신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특별하지 않기 때문에 만든 자기 보호의 갑옷이다.

많은 분이 늘 뭔가 부족한 느낌 때문에 힘들어한다. 사람들의 인정이나 돈과 인간관계에서 부족함을 느낀다. 채워지지 않는 결핍으로 인해 나에게 없는,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따져보는 일에 몰두한다. 이러한 끊임없는 비교는 결국 자신을 초라하고, 위축되게 만든다. “우리는 다른 사람처럼 되기 위해 자신의 인생 4분의 3을 희생한다.”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늘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 때 흔히 사용하는 또 다른 자기 보호의 갑옷이 완벽주의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면 비난과 수치심의 고통을 피할 수 있다는 믿음. 완벽주의는 어쩌면 하나의 속임수다. 무엇이든 완벽해야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하고 자존감을 채울 수 있다는 속임수. 그들은 자신의 단점과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완벽과 무결점은 유혹적인 말이지만 세상에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불완전할 용기를 내야 자신의 스토리를 쓰고 그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 진짜 자기 자신으로 산다는 건 자신의 빈틈을 수용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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