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예산 깎은 만큼 복구하고는 “역대 최대 증가”
내년 R&D 예산 24조8천억원…“역대 최고 수준”
“물가상승률 감안 땐 실질 예산 오히려 삭감” 지적
“과기계 회복 의문…의견 청취 제대로 했나” 비판도
정부가 내년 국가 주요 연구개발(R&D) 예산을 24조8천억원으로 확정했다. “나눠먹기식 알앤디는 제로베이스(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윤석열 대통령 말 한마디에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가 과학계와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은 뒤 조정에 나선 것이다. 정부는 올해(21조9천억원)보다 13.2% 늘어 “역대 최대 규모”라는 점을 강조했으나, 삭감 전 예산(2023년 24조7천억원)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라, 줄어든 예산으로 중단 위기에 놓인 계속과제 복원 등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란 지적이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7일 ‘국가 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안’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에서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확정된 조정안에는 이달까지 검토된 예산인 24조5천억원이 담겼으며, 9월 국회에 제출할 정부안 편성 때까지 예비타당성조사(예타) 통과 사업과 다부처 협업 예산 등 3천억원을 더 반영해 총 24조8천억원이 될 것이라고 과기정통부는 설명했다.
과기정통부는 “내년 연구개발 예산의 포트폴리오를 ‘혁신도전형 연구개발’, ‘게임체인저 기술’, ‘글로벌 최고 수준 공동연구’ 같은 선도형 분야에 재편했다”고 설명했다. 류광준 과기혁신본부장은 브리핑에서 “선도형 연구개발로의 전환은 우리나라가 기술패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라 강조했다. 경쟁력 강화가 필요한 선도형 분야로 예산을 몰아줬다는 의미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인공지능(AI)-반도체와 첨단바이오, 양자기술 분야 등 ‘3대 게임체인저 기술’ 분야에 3조4천억원을 투입하고, ‘고위험-고보상’ 구조로 올해 새로 도입한 혁신도전형 연구개발 분야에도 1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또 2차전지와 반도체·디스플레이, 차세대 통신 등 초격차 첨단기술 분야엔 2조4천억원, 우주와 미래 에너지 쪽에도 3조2천억원이 투입한다. 기초연구 예산은 올해보다 11.6% 증가한 2조9400억원으로 편성했다.
눈에 띄는 건, 올해 대규모 예산 삭감의 소나기를 피한 분야 대부분이 내년에도 예산 증액 대상이 됐다는 점이다. 한 예로 이날 공개된 ‘분야별 투자규모 상세 내역’ 일부(18조7천억원 규모)를 보면, 2차전지는 2023년 1100억원에서 2024년 1400억원, 2025년 1800억원으로 3년 연속 증액됐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도 6400억원→6600억원→8100억원으로 늘었다.
반면 올해보다 소폭 증액(각각 8.9%, 7.7%)되는 수소(2500억원)와 탄소중립(2조2천억원) 분야의 경우, 예산 삭감 전인 2023년(각각 2700억원, 2조4천억원) 수준을 회복하진 못했다. 올해 7.8% 삭감된 정부 출연 연구기관 예산은 2조1천억원으로, 2023년 수준(2조400억원)을 소폭 웃도는 정도다. 올해 신설·증액된 예산을 감안하면 공개되지 않은 나머지 분야 예산은 올해 6조7400억원에서 내년 6조1천억원으로 줄게 되는데, 이들 분야의 2023년 예산은 이보다 2배 이상 많은 13조3400억원이었다.
선택과 집중의 결과라지만 특정 분야에 예산을 몰아주는 이런 방식으론 연구개발 포기 위기에 몰린 많은 연구자들을 구제하기 힘들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문성모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 총연합회장은 “올해 삭감의 여파가 워낙 컸다”며 “‘가뭄 뒤 단비’는 되겠지만 이 정도 복원으로 중단된 과제들이 회복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과학기술계의 또다른 관계자도 “정부가 예산 삭감을 워낙 절차 없이 하다 보니 (꼭 필요한 예산의) 복원이 제대로 됐을지 모르겠다”며 “선택과 집중도 중요하지만, 특정 과제 선택 과정에서 제대로 의견 청취가 이뤄졌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특히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하면 내년 예산은 삭감 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한국천문연구원 출신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날 기자회견을 열어 “2023년(3.6%)과 올해(2.6%), 내년(2.1%·예측치)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실질 예산은 (삭감 이전인) 2023년 24조7천억원에 견줘 오히려 4.2%가 내린 23조7천억원에 불과하다”며 “역대 최대 규모라고 자화자찬이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박상욱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은 이런 비판에 대해 “내년도 정부 총예산 증가율은 4% 선으로 예측되는데, 연구개발 예산은 올해(21조9천억원) 대비 13.2% 늘어난다”며 “재정 여력이 정말 없는데도 최선을 다해 큰 폭으로 증액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일반 예산까지 추가되면 내년 정부 연구개발 예산 총규모는 이전 최대였던 2023년 29조3천억원을 넘어 30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며 “내용상으로는 환골탈태에 가깝게 달라져 복원이나 회복이란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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