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IOC 선수위원 겸 대한탁구협회장, “탁구를 비롯한 모든 종목이 국민들에게 기쁨 주길 바라” [파리올림픽 특집 인터뷰]
2014년 라켓을 내려놓은 유 위원은 짧은 지도자 생활을 뒤로하고 2016년부터 행정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행정가로서 그는 선수 시절 이상의 활약을 펼치며 세계무대에 이름을 떨쳤다.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직후 IOC 선수위원에 당선됐고, 2018평창동계올림픽 선수촌장을 거쳐 2019년부터는 대한탁구협회장직을 역임하고 있다.
IOC 선수위원으로서 한국의 스포츠외교력 강화에 기여했고, 대한탁구협회장으로서도 올해 2월 2024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유치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한국탁구에 12년 만의 메달을 가져오는 게 궁극적 목표지만, 내심 탁구를 비롯한 전 종목이 국민들에게 기쁨을 가져주길 기대한다. 유 위원은 “지금 시점에선 선수들이 자신의 컨디션과 기량, 위치에 대해 충분히 알고 올림픽을 준비해야 한다. 순간순간 판단력이 흐려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 순간을 잘 극복해야 메달을 목에 걸 수 있다”고 응원했다.
●선수단 규모와 기대치는 별개의 문제
파리올림픽을 향한 비관적 전망이 적지 않다. 130여 명에 그친 한국선수단의 규모는 1976몬트리올대회(50명) 이후 처음으로 200명 아래로 줄었다. 단체구기종목 중 여자핸드볼만 이번 올림픽 본선 진출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 위원은 선수단 규모와 기대치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한다. 양궁과 펜싱 등 강세 종목이 높은 경쟁력을 보이고 있는만큼 희망적 요소가 남아있어서다. 그는 “과거 우리가 300여 명이 출전했을 때 금메달이 7~13개를 수확했었다. 강세 종목들이 분발한다면 그에 근접한 금메달을 가져올 수 있다”며 “수영과 배드민턴 등은 오히려 금메달을 점칠 수 있는 선수들이 늘어났다. 수영의 황선우와 김우민, 배드민턴 안세영 등의 등장은 호재”라고 낙관했다.
다만 과제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선 하향세가 뚜렷한 일부 종목의 반등이 절실하다는 의견이다. 유 위원은 “비관적인 예측에 앞서 단체구기종목과 투기 종목 등 하향세를 뚜렷하게 그리고 있는 종목들에 집중해야 한다. 이 종목들을 되살릴 방법을 찾는 게 한국스포츠의 과제”라며 “메달 수에 집착하기 보단 근본적인 고민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유 위원은 하향세를 그리고 있는 종목들을 언급하면서 탁구를 향한 걱정도 빼놓지 않았다. 탁구는 2012런던올림픽에서 유 위원~오상은 미래에셋증권 남자부 감독~주세혁 남자탁구대표팀 감독이 합작한 남자단체전 은메달 이후 2대회 연속 노메달에 그쳤다. 그는 “이번에도 노메달에 그치면 탁구를 향한 위기감도 고조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다만 지난해 더반세계선수권대회와 2022항저우아시안게임, 올해 부산탁구선수권대회에서 희망을 봤기 때문에 파리올림픽도 긍정적으로 준비하려 한다. 특히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탁구대표팀은 여자복식 전지희-신유빈이 21년 만에 금메달을 가져오면서 금1, 은2, 동5로 중국에 이어 종합 2위를 차지했다.
파리올림픽에서도 남녀단체전은 물론, 임종훈-신유빈이 출전하는 혼합복식에서 메달을 노린다. 유 위원은 “지금까지 대표팀 지도자들의 지도 방침을 존중하며 지켜봐왔다. 이번 파리올림픽에서도 남자부 주세혁 감독과 여자부 오광헌 감독을 믿는다”며 “성적 문제에 대해 지도자들이 스트레스와 책임감을 느끼기에 앞서 협회가 더욱 절실히 느껴야 한다. 협회가 지도자들에게 부담을 준다고 경기력이 살아나진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내가 경기인 출신이기 때문에 부담감이 팀에 득이 될 때와 실이 될 때를 잘 안다고 자부한다. 대표팀과 관련한 선발과 기용 등의 문제는 경기력향상위원회와 코칭스태프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며 “탁구계엔 선수, 지도자, 심판, 생활체육인 등 여러 조직이 있다. 회장 한 사람의 독단으로 운영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유 위원은 IOC 선수위원 임기는 파리올림픽 폐막과 동시에 끝난다. 대한탁구협회장직 임기도 올해로 끝이다. 연임이 불가능한 선수위원직은 차치하더라도 대한탁구협회장직 연임 이야기를 꺼낼 법도 하지만, 그는 미래를 바라보기 보단 파리올림픽을 앞둔 한국스포츠에 조금이라도 더 헌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마침 IOC 토마스 바흐 위원장도 선수 출신이라 유 위원의 임기 동안 든든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선수들을 향한 규제가 유 위원 덕분에 많이 풀렸는데, 과거와 비교해 정치적 표현과 앰부시 마케팅을 유연하게 할 수 있게 됐다. 국내에서도 유 위원이 목소리를 낸 덕분에 포털사이트 스포츠 기사의 댓글이 폐지되는 등 선수권익도 한층 더 보호됐다. 그가 국내‧외에서 얼마나 열띤 활동을 펼쳤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메달 개수만큼이나 스포츠외교력이 중요해진 현재, 유 위원은 자신이 임기를 마친 뒤에도 한국이 최고수준의 스포츠외교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 그는 “사실 그 동안 무슨 문제만 터지면 ‘한국의 스포츠외교력이 부재한 탓’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한국이 스포츠외교력이 부족한 나라였다면 동계올림픽을 개최하고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유치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한국 IOC 위원으로 나와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 국제빙상경기연맹 김재열 회장 등 3명이 있다. IOC 위원을 3명이나 보유한 나라는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선수로서나 행정가로서나 늘 부지런히 살았다. 주변에서도 많은 지원과 응원을 아끼지 않아주셨다”며 “스포츠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후배들이 선수, 유튜버, 지도자, 해설위원, 행정가 등 다양한 직군에서 한국스포츠에 힘을 보태고 있다. 나 역시 이들과 함께 한국스포츠에 힘을 보태며 선수들이 파리올림픽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돕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권재민 기자 jmart22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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