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6주년기획: 위기의 韓 e스포츠①] 한국 e스포츠, 왜 정체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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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대에 흰색 천을 씌운 뒤 거기에 컴퓨터를 설치해 진행된 게임 대회를 통해 탄생한 e스포츠. 2010년 초까지 e스포츠 대회가 처음 개최된 한국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최고의 e스포츠 리그가 열린다고 평가받은 한국서는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스타1), '워크래프트' 등 다양한 글로벌 인기 종목의 대회가 열렸고, 피파온라인(현 FC 온라인), 서든어택, 카트라이더 등 국내서 인기가 높은 게임들의 대회까지 열렸다. 프로게이머라는 신종 직업이 생기면서 임요환(현 T1 스트리머), 홍진호, 문호준 등 스타 플레이어들이 등장했으며 초등학생들이 가장 원하는 직업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당시에도 '게임이 스포츠인가'라는 논란이 계속됐지만 온게임넷(현 OGN)이 진행하는 스타리그 결승전에는 많은 관심이 쏠렸고, 공중파 방송인 KBS에서 취재를 나와 9시 스포츠뉴스에 우승자 인터뷰가 방송되기도 했다. 부산 광안리에서 벌어진 프로리그 결승전서는 10만 관중(추정치)이 몰려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폭발적인 성장을 하던 한국 e스포츠는 2007년 블리자드가 한국 e스포츠에서 자사가 출시하는 게임에 대한 지재권(지적재산권)을 요구하면서 위기를 맞는다. 당시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스타1)가 중심이었던 한국 e스포츠는 블리자드의 요구로 인해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4년이 지난 2011년 극적으로 합의에 성공했으나 당시 합의로 인해 한국 e스포츠 힘의 중심은 방송국, 협회가 아닌 종목사로 넘어가게 됐다. 방송국과 협회 중심으로 급성장하던 e스포츠는 종목사 중심으로 전환되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0년과 2015년 두 차례 터진 승부조작 사건은 한국 e스포츠의 두 번째 위기였다. 2010년에는 일부 스타1 선수들이 관여했으며 2015년에는 스타2 선수들이 연관됐다. 승부조작에 관여됐던 감독, 코치, 선수들은 영구 제명 처분을 받았다. 두 번의 승부조작으로 인해 e스포츠에 열광하던 많은 팬이 떠났다.
'게임 셧다운제(청소년의 심야 시간 인터넷게임을 제한하는 제도)' 등 각종 규제로 한국e스포츠 성장이 주춤한 사이 2014년 막대한 '머니 파워'를 앞세운 중국으로 선수들과 많은 방송 관계자가 건너갔다. 한국 e스포츠의 방송 발전을 이끌었던 관계자들의 중국 회사 합류로 인해 한국 e스포츠는 리그뿐만 아니라 방송에서도 몇 년간 정체됐다. 반면 중국 e스포츠는 한국에 한참 뒤처져 있던 방송 분야까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스타크래프트가 중심이었던 한국 e스포츠는 리그 오브 레전드(LoL)와 오버워치, 펍지:배틀그라운드 등이 출시되면서 다시 한 번 성장 기회를 잡았다. 전문가들이 지적했던 특정 종목에서 벗어나 다 종목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맞아떨어졌다.
한국 e스포츠는 오랜 시간 동안 스타크래프트에 의존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LoL e스포츠 도입과 함께 '페이커' 이상혁(T1), '샤이' 박상면, '매드라이프' 홍민기 등 많은 스타 플레이어가 등장하며 흥행몰이를 시작했다. LoL의 성공 가능성을 본 기업 팀들도 e스포츠에 들어왔다. 더불어 OGN이 출범한 오버워치 APEX와 배틀그라운드 대회도 많은 팬이 현장을 찾았으며 발전하기 시작했다.
2020년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코로나19는 많은 이에게 고통을 안겼지만 한국 e스포츠로서는 호재였다. 사회적 거리두기, 비대면 활동으로 사람들이 밖보다는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인 게임이 각광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야구, 축구 등 전통 스포츠가 무관중으로 경기를 진행하거나 올스톱된 사이 온라인 대전이 가능한 e스포츠 리그는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이 덜했고, e스포츠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더욱 늘어났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3 e스포츠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22년 국내 e스포츠 산업 규모는 전년도보다 44.5%가 늘어난 1514억 원이었고 게임단 예산, 스트리밍, 종목사 매출 등의 확장 산업도 두 배 늘어난 2816억 원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코로나19 시국이 끝나고 프로 스포츠가 재개되면서 e스포츠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고 거품도 꺼졌다. 대회가 LoL 중심으로 바뀌면서 예전부터 한국 e스포츠의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특정 종목 쏠림 현상이 다시 나왔다. 블리자드가 무리하게 OGN의 오버워치 APEX를 없애고 만든 오버워치 리그는 지난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여성 팬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던 카트라이더의 경우 올해 상반기는 대회를 치르지 않았다. 후반기 리그 재개도 불투명하다. 한국 e스포츠에서는 LoL, 배틀그라운드, FC 온라인을 제외하면 눈에 띄는 종목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님블뉴런이 개발한 이터널 리턴이 지역 연고제를 채택하는 등 본격적으로 e스포츠로서 시작을 알린 건 기대해 볼 만 하다.
현재 한국 e스포츠를 먹여 살리고 있는 LoL의 경우 선수들의 연봉이 천정부지로 뛰면서 게임단들은 고사 위기다. 살아남기 위해 게임단들은 예산을 줄이기 시작했다. 야구, 축구 등 프로 스포츠의 경우 구단은 '사회공헌활동'이라는 이름 아래 모기업으로부터 예산을 받아와 사용하지만 LoL의 경우 한화생명e스포츠, 농심 레드포스, T1 등을 제외한 나머지 게임단들은 자금력이 부족하기에 '각자도생'해야 하는 상황이다.
총선, 대선 등 많은 정치인은 MZ세대의 표를 얻기 위해 게임과 e스포츠 현장을 기웃거리고 공약을 발표하지만, 선서가 끝나면 나 몰라라 하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다.
LCK 한 관계자는 "LCK에서 흑자 구단은 없으며 어떻게든지 적자 폭을 줄이려고 노력 중이지만 쉽지 않다"며 "앞으로 이런 기조는 계속될 것이며 '각자도생'이기 때문에 새롭게 투자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용우 기자 (kenzi@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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