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중심 기후정책 펼칠 때 녹색정치세력 힘 얻어”
바야흐로 기후위기 시대다. 기후변화에 대한 정치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지만 나라 안팎의 상황은 이런 기대와는 다른 모양새다. 최근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선 녹색 정치 세력이 이전보다 꽤 의석을 잃었고, 국내에서도 지난 4월 총선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맨 앞에 내세운 정당이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독일 ‘신호등 연정(빨강의 사민당, 노랑의 자유민주당, 초록의 녹색당 연립정부)’의 한 축인 독일 녹색당 소속 연방의회 의원은 이런 흐름을 어떻게 이해할까? 마침 서울을 찾은 토비아스 바헐레 의원을 지난 19일 서울 시내 한 호텔 식당에서 만나 지난 6월 6~9일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와 독일 녹색당의 정책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그는 유럽의회 선거 결과를 두고서 “결과가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충격적인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녹색당은 이 선거에서 전체 720석 가운데 51석을 획득했다. 이전보다 20석이나 잃었다. 하지만 바헐레 의원은 “안타깝지만,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였다”면서 “중요한 것은 왜 그런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이고 현재 그 과정에 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녹색 정치 세력의 퇴조는 근년 들어 사회적 위기가 잇따라 겹쳐 발생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특히 세 가지를 주요 원인이라고 밝혔는데, 코로나 팬데믹 이후 확대된 양극화가 그 하나이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군사적 갈등 증대와 에너지 공급 문제, 그리고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 등이 복합적으로 발생한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녹색당의 기후정책에 대한 반발, 이른바 ‘그린래시’가 원인이란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선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그런데도 그는 “녹색 정치 세력이 기후위기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방식에도 일종의 새로운 모멘텀(계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생각하는 새 모멘텀은 “사람을 중심에 놓는 정책과 환경정책의 결합”이다.
“우리의 환경정책을 시민들에게 분명하게 설명하되, 이를 펼치는데도 항상 사람이 중심이어야 합니다. 예컨대 자전거 도로를 낸다고 할 때, 도로 문제만이 아니라 통행하는 사람들, 특히 아이들과 노인들의 안전성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죠. 자동차 없는 거리를 만들 때도 사람들에게 공간을 돌려준다는 식의 접근이 필요하죠. 거리에 사람들을 위한 휴식 공간, 즉 숙박시설이나 레스토랑, 놀이시설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최근 유럽의회 선거 녹색당 패배
양극화, 전쟁 등 사회위기 겹친 탓
에너지 전환, 강압적 변화 아니라
스스로 참여하도록 동력 제공을”
외교위 소속 아시아태평양 담당
19살에 시의원 당선돼 정치 입문
“미래 설계하는 게 정치의 임무
젊은이들 참여가 매우 중요”
그는 이런 시각을 기후정책의 핵심인 에너지전환을 설명할 때도 일관되게 적용했다. 바헐레 의원은 “에너지 전환을 이끄는 것도, 그에 따른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도 강압적인 변화가 아니라 사람들이 변화에 스스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동력을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44년의 역사를 지닌 독일 녹색당은 내부적으로 근본주의 분파와 현실주의 분파 간의 격렬한 갈등이 있었다. 점차 현실주의 정치세력이 당의 중심을 차지해왔다. 당신은 어느 쪽이냐고 묻자 그는 “실용주의 노선”이라고 답했다. “예컨대, 탈석탄, 탈원전이란 목표 지점이 있다고 해도 이를 달성하기 위해 무조건 사용을 금지하는 게 아니라, 신재생에너지를 자연스럽게 확대함으로써 이런 변화를 통해서 시장에서 차츰차츰 사람들이 석탄 사용을 불필요하게끔 하는 식으로 변화를 추진하는 것이죠.”
그는 거듭해서 “이처럼 어떤 정책을 펼칠 때 사람들의 삶과 관련해 얘기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면서 “이번 여름에 녹색당은 물론 사민당 정치인들과도 함께 이런 관점에서 연정의 정책을 좀 더 깊게 살펴볼 작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3박 4일 방한 기간에 국내 정치인들을 두루 만났다. 독일 연방의회 외교위원회 소속으로 특히 아시아태평양 쪽을 담당하는 만큼, 총선 이후 한국의 정치 정세를 파악하고자 한 방문 목적에 따른 일정이었다. 한국의 녹색당이 창당 이래 10여년이 넘은 지금껏 단 1명의 의원을 배출하지 못한 상황과 관련해 의견을 묻자 그는 “대한민국 정치 상황을 잘 알지 못해 답하기 어렵다”면서도 “소수정당에 불리한 한국 선거제도 문제가 한 원인이라고 알고 있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국 녹색당도 독일 녹색당이 과거에 저지른 실책에서 좀 배웠으면 한다”면서 “기후보호만을 중점에 두고 정책적인 목소리를 내는 방식에서 탈피해서 기후보호라는 게 생존의 문제라는 점을 좀 더 알리고 에너지전환이 가져다주는 경제적 효과를 잘 설명하는 게 좋겠다”고 덧붙였다.
연방의회의 일원인 그가 주목하는 또 다른 열쇳말은 디지털이다. 그는 “미래의 인권문제, 21세기 인권의 문제는 결국 디지털 공간에서 사람들의 권리가 얼마나 보장되느냐에 달려있다”며 “이 점에서 디지털 정책을 매우 중시한다”고 밝혔다. “오늘날 이런 디지털 인권 문제는 미국과 중국의 움직임을 보건대 글로벌 차원에서 대처해야 해결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스물아홉의 청년 정치인이다. 2014년 자신의 고향인 진델핑겐 지역에서 시의원으로 출발해 2021년 9월 독일 연방의회 의원으로 당선됐다. 현재 외교위원회뿐만 아니라 디지털 위원회 간사, 유럽연합(EU) 위원회 부위원장을 동시에 맡고 있다.
어떻게 이른 나이에 정치를 하게 됐는가, 라고 물으니 “기성세대가 중심이 되는 정치풍토에 변화를 시도해보고 싶었다”고 답했다. “대의민주주의 제도는 다양한 세대가 참여해 서로 의견을 교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결국 미래를 설계하는 게 정치의 임무이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정치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녹색당을 선택한 이유는 “미래를 설계하는 데 기후보호가 굉장히 중요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마지막 질문 “정치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주저 없이 “공감”이라고 답했다.
이창곤 선임기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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