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과 어른 [세상읽기]

한겨레 2024. 6. 27.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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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2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방통위법) 개정안 입법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홍원식 | 동덕여대 ARETE 교양대학 교수

세상에는 세 종류의 일이 있다고 한다.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이 그것이다. 하고 싶은 일만 있으면 좋겠지만, 해야 할 일이 많은 게 세상사이다. 이 중에서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을 처리하는 법을 배우는 게 바로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일 것이다. 22대 국회 개원 이후 보이콧을 하던 여당이 드디어 국회로 돌아왔다. 국회 법제사법위, 운영위 등 상임위원회의 위원장 배정에 반발해 개원과 동시에 국회 등원을 거부하던 국민의힘이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처음부터 국민의힘 자신도 예상했던 결과일 터이다. 총선에서 국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명확해진 지 채 며칠 지나지도 않은 상황인지라, 누가 봐도 국민의힘이 이 싸움에서 이길 방법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국정을 책임져야 할 여당이 별다른 대안도 없이 뛰쳐나갔다가 돌아왔으니, 이제는 좀 더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일지 모르겠다.

좀 더 어른스러운 태도를 기대하는 곳이 국회만은 아니다. 며칠 전 채 상병 특검법 입법청문회가 국민들의 많은 관심 속에서 치러졌다. 일부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지만, 청문회가 한층 더 중요한 이유는 이 사건과 관련된 일련의 관계자들이 국민들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국민이 증인과 참고인들의 표정과 목소리를 통해 누가 떳떳하고 당당한 몸짓인지, 누가 당황한 얼굴에 비루한 변명을 늘어놓는지 직접 판단할 기회를 제공하는 건 진실에 다가가는 하나의 통로가 된다.

그런데 한국방송(KBS)은 이를 생중계하지 않았다. 크고 작은 방송사 대부분이 유튜브를 통해 청문회를 생중계했음에도 정작 국가를 대표하는 공영방송은 이를 외면했다. 국민 대다수가 지지하고 국회의 정식 의결 절차를 통해 진행되는 채 상병 특검법의 입법청문회를 중계 거부하는 행위가 무슨 배짱에서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자신들이 하고 싶은 방송만 골라서 하고 하기 싫은 건 안 하겠다면 이제 ‘국민의 방송’이라는 낯부끄러운 이름은 그만 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한국방송처럼 납득할 수 없는 행태가 벌어지는 이유는 바로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 선임 방식의 구조적 문제 탓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일찌감치 공감대가 있었고, 지난 10여년 동안 수십개의 관련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이번 법사위에서는 여당이 반발하고 퇴장한 상황에서 야당 주도로 방송 3법이 통과되었다. 물론 더불어민주당이 제시한 방송법 개정안도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개선하기엔 완벽하다고 볼 수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서둘러 법안 처리에 나선 까닭은 오는 8월에 공영방송의 이사진 교체를 앞두고 있어서다. 특히 문화방송(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도 임기 만료를 앞둔 상황이라, 야당은 문화방송마저 정권 입맛에 맞는 이사장과 사장으로 교체되면 방송장악의 폐해가 막대할 것이라 본다.

방송 3법은 이제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지만, 비록 야당 뜻대로 국회 문턱을 넘어서더라도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로 법 시행이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는 문화방송을 포함한 방송계 전반의 극단적 갈등과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이라도 방송 3법이 여야 협의를 통해 원만하게 해결되려면, 정부와 여당의 자세부터 달라져야 한다. 무조건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고 논의를 진행할 책임이 정부·여당에 있다. 무엇보다 여야의 실질적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현재 선임 강행을 밝히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일방적 공영방송 이사 선임 작업은 중단돼야 한다.

방통위는 합의제 기관임에도 이를 무시하고 사실상 장관과 차관으로 구성된 독임제 기관처럼 운영되고 있다. 현재 2인 구조의 방통위에서 결정하는 모든 사안이 나중에 행정심판의 대상이 되겠지만, 법원 판결과 상관없이 현재 방통위의 파행적 운영은 민주주의 원칙이나 국민적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방통위는 우선 ‘국회가 방송통신위원 추천을 완료하고, 여야가 방송 3법을 합의하기 전까지는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여야는 차분하게 타협안을 만들어 가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눈감고 있다고 사라지지 않고, 입 틀어막는다고 가라앉지 않는 게 세상일이다. 할 일을 회피하거나 하지 않았을 때 되돌아오는 것은 대부분 자신에게 더 큰 손해와 고통이 된다. 먼 산은 그만 보고 이제 할 일을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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