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 칼럼] 집값 흐름, `현장 지표` 중심으로 판단하라

2024. 6. 27.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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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작년 전국 아파트값이 올랐다고 보시나요? 아니면 떨어졌다고 생각하세요?"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물어본다. 가격 변동을 어떤 기준으로 삼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런 질문에 어떤 이는 가격이 올랐다고 답변하고, 또 어떤 이는 내렸다고 말한다. 답변을 들어보면 제각각이다. 그런데 다 맞는 얘기일 수 있다. 어떤 지표는 하락, 어떤 지표는 상승을 가리키고 있어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아파트 실거래가격 지수(이하 실거래가)는 연간으로 3.5% 올랐다. 이 지표는 실제 거래된 가격을 이전 거래 가격과 비교해 변동 폭을 지수화한 것이다. 하지만 표본조사 통계는 같은 기간 오히려 4.8% 떨어졌다. 이는 전국 3만6,800개의 아파트 표본을 토대로 집계하는 것으로 국가 공식 통계이다.

서울은 격차가 좀 더 심하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는 9.9% 올랐지만, 표본조사 통계는 2.2% 떨어졌다. 그러니 아파트값이 올랐다고 해도 틀린 게 아니고, 내렸다고 해도 틀린 게 아니다. 그 기준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논문을 쓸 때 많이 얘기하는 '조작적 정의'를 하지 않으면 같은 시장흐름을 놓고 서로 딴소리를 할 수 있다. 조작적 정의는 일반적인 정의와는 달리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를 위해 인위적으로 조작해 정의를 내린 것이다. 다시 말해 연구 가설을 세울 때 목적에 맞게 용어를 정의하는 것을 의미한다.

좀 더 나가보자. 가격에는 명목가격과 실질가격이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가격은 명목가격이고, 명목가격에 물가상승률을 뺀 가격이 실질가격이다. 국제 부동산학 논문을 보면 명목가격보다 실질가격으로 변동률을 따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격이 올랐더라도 인플레이션, 즉 물가상승률을 빼야 진정한 가격상승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실질가격 기준으로 따진다면 지난해 전국 아파트 실거래가는 하락한 것으로 나온다. 지난해 소비자물가가 3.6% 올랐기 때문이다.

땅 시세 통계로 보면 더 심한 혼란을 부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미국발 고금리 쇼크로 아파트값이 곤두박질쳤던 2022년 전국 지가변동률은 플러스 2.7%로 나타났다. 그해 전국 아파트값이 연간 17%, 서울은 22%나 급락했는데도 땅값은 되레 올랐다. 지난해에도 지가는 0.8% 상승했다.

부동산 가격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는 땅값이다. 최근의 지가변동률만 따진다면 부동산 가격은 주야장천 우상향하는 재화가 된다. 자칫 시장상황과 동떨어진 판단을 할 수 있는 셈이다. 일부 통계를 가지고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 혹은 합리화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얘기다. '사슴(鹿)을 가리켜 말(馬)이라고 한다'라는 지록위마(指鹿爲馬)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나 할까.

요즘 부동산 시장은 상품과 지역별로 분화되고 있다. 같은 부동산이지만 아파트 가격은 오르지만 빌라나 다세대주택 같은 비(非)아파트는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파트 가격도 서울과 수도권은 상승하지만, 미분양이 넘치는 지방은 떨어진다. 심지어 상가시장은 디지털 소비의 확산에 인구감소, 내수경기 침체가 겹쳐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부동산 시장의 키워드를 각개전투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부동산 시장을 얘기할 때는 '어느 지역', '어느 상품'인지 명확하게 범위를 설정해야 의사 전달에 착오가 생기지 않는다. 막연히 집 혹은 부동산이라고 하면 화자(이야기하는 사람)와 청자(이야기 듣는 사람) 사이 소통에 균열이 생기기 마련이다. 부동산 시장에 대한 진단이나 해석을 놓고 서로 논쟁이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초점의 차이일 수도 있는 데 말이다.

여러 부동산 통계 가운데 실수요자는 어떤 통계를 보고 의사결정을 할까? 개인적으로 '현장 지표'에 좀 더 초점을 맞추는 것을 조언하고 싶다. 가령 아파트를 구매하려는 수요자들은 한국부동산원의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 KB선도아파트 50지수, 2000가구 이상의 대단지 시세 흐름을 주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가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장바구니 시세'나 '장바닥 시세'에 좀 더 가깝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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