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전 찾은 미셸 자우너 “슬픔의 물결 온전히 느껴보세요”

양선아 기자 2024. 6. 27.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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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마트에서 울다’ 저자이자 뮤지션
27일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주제 강연
27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24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 작가·뮤지션 미셸 자우너. 양선아 기자

“슬픔은 언어처럼 매일 변하는 것 같아요, 그 형태가. 그래서 언어와 같이 서두르면 절대로 안됩니다. 제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되었는데요. 예전에는 슬픔이 다가오면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지만, 지금은 오히려 감사해요. ‘내가 엄마를 정말로 사랑했고 이 감정은 어디로 가버리지 않구나’라고 느끼기 때문이죠. 슬픔의 물결이 다가오면 온전히 느껴보세요.”

밴드 ‘재패니즈 브랙퍼스트’의 리드 보컬이면서 ‘H마트에서 울다’의 저자인 미셸 자우너(35)가 다정한 표정으로 질문자를 향해 말했다. 고등학교 시절 자신을 이해해주던 삼촌을 암으로 잃은 한 청중이 이젠 만날 수 없는 누군가가 떠오를 때 당신은 그 슬픔을 어떻게 다루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2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진행된 자우너의 강연에는 자우너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기억으로 이어지는 레서피’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강연은 한소범 한국일보 기자의 사회로 진행된 뒤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는데, 자우너의 경험, 글쓰기와 음악 세계, 또 향후 계획 등에 대한 청중들의 질문이 끝없이 쏟아졌다. 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자우너는 2021년 음반 ‘주빌리’를 발매해 그해 빌보드 상반기 최고의 음반 50에 선정됐다. 그래미 어워즈 신인상인 ‘베스트 뉴 아티스트’와 ‘베스트 얼터너티브 앨범’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음악적으로도 성공했지만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그가 쓴 ‘H마트에서 울다’는 엄마와 딸, 사랑과 슬픔, 음식과 정체성에 대한 아름답고 감동적인 성장기로 2021년 미국에서, 2022년 한국에서 출간돼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대담을 진행하고 있는 미셸 자우너(가운데). 양선아 기자

현재 그는 ‘한국 1년살이’를 하고 있으며 한국에 산 지 6개월이 됐다. 연세대와 서강대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단다. 이렇게 한국어 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자우너에게 “한국에 1년 살면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게 될 거야”라고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한국어로 일기를 쓰고 있는데 내년쯤 이 일기를 보면서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돌아보고자 한다”며 “한국어 배움 과정과 30대에 언어를 배우는 것 등에 대한 책을 쓸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 책에는 뇌과학자를 만나 나이 먹어서 언어 공부를 하는게 어떤 것인지,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는 게 왜 어려운지, 두 가지 언어를 할 수 있다면 세 번째 언어를 배우는 것은 쉬운지 등에 대한 내용도 담을 계획이다. 책은 2026년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H마트에서 울다’에서 그는 매우 자세한 묘사와 감각적인 표현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람들 표정이나 옷에 묻은 얼룩, 음식을 먹을 때 느껴지는 맛과 향 자세하게 묘사했고, 이런 남다른 감각에 대해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많았다. 그는 이런 감각에 대해 “나는 매우 예민한 아이였고, 아주 작은 것에도 감동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코스트코에서 나이 든 커플이 핫도그에 양념을 올려놓는 것만 봐도 눈물이 나거든요. 어머니가 제가 편하게 신발을 신게 해주려고 카우보이 부츠를 미리 신고 계셨던 것에도 감동했고요. 작은 것에 감동하는 것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 같아요.”

미국에서 떠나간 어머니를 생각하며 한국 식재료를 파는 ‘H마트’에 자주 갔던 자우너는 한국에 살면서는 음식에 관해 또 어떤 발견을 했을까. 그는 “미국에서는 한국 음식이 그리웠는데 한국에 살아보니 ‘나는 다양한 음식이 필요하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멕시코 음식이나 중동 음식이 자신의 주변에 흔히 있을 땐 소중한 줄 몰랐는데 한국에 와선 그 소중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그는 냉면과 콩국수를 즐겨 먹는다. 밴드의 드러머가 ‘냉면 전문가’라 평양냉면 전문점 ‘을밀대’를 데려갔는데, 단순하고 슴슴한 평양 냉면이 정말 맛있었다고 한다.

“이메일이나 메신저에서 닉네임을 정할 때 신중하게 정하지 않잖아요. 밴드 이름은 음악을 듣다가 ‘일본 조식’이 갑자기 떠올라 큰 의미 없이 결정했어요. 그런데 그 이름이 미래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면 다른 이름을 선택했을 거예요. 이제는 바꿀 수 없게 됐지만요.”

밴드 이름이 왜 ‘저패니스 블랙퍼스트’인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한국에 와서 한국 사람들과 생활하고,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음식을 즐기는 그는 이렇게 한국 사람들과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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