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170엔까지 갈 수도"…日정부, 美채권 내다팔까
근본 원인은 연준 피벗 지연…가속화는 투기세력 때문
日개입 불가피·美눈치 부담…BOJ 금리인상도 어려워
강달러 끝날 때까지 ‘시간벌기’일뿐…170엔대 갈수도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달러·엔 환율이 두 달 만에 160엔을 돌파하며 약 3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달러화 강세가 계속되는 한 엔저 가속화도 멈추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투기세력까지 가세해 일본 정부의 시장 개입도 ‘시간벌기’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확산하고 있어서다.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졌던 160엔선이 두 달 만에 다시 깨지면서 개입 한계가 명확해졌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엔화가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하면, 변동성 확대시 자산 시장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키는 등 ‘블랙 스완’이 될 우려가 있다.
엔화, 두달만에 다시 1달러=160엔…38년 만에 최저
27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 등에 따르면 이날 도쿄외환시장에서 달러·엔 환율은 160.57엔(오후 5시 기준)으로 마감했다. 전날에는 일본 당국의 개입을 경계해 159엔대 후반 좁은 범위에서 움직이다가, 오후 한때 잠시 160엔을 넘어섰다. 달러·엔 환율이 160엔을 돌파한 건 지난 4월 29일 이후 약 두 달만이다. 이후 간밤 미국 뉴욕외환시장에선 장중 160.8엔까지 올라 1986년 12월 이후 37년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이날 도쿄외환시장에서는 160엔대에 완전히 안착했다.
달러·엔 환율이 상승한 근본적인 원인은 미일 통화정책 차이 및 이에 따른 미일 장기금리 격차 확대 때문이다. 하지만 엔저 가속화는 헤지펀드 등 투기세력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인하가 지연되면서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엔화를 팔아 달러화를 사려는 움직임이 강해지자, 이러한 흐름에 편승해 투기세력이 엔화 약세에 베팅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데이터에서도 대규모 엔화 순매도 포지션이 확인된다.
닛케이는 “달러·엔 환율이 지난 4월 29일 개입을 촉발한 160.24엔을 가뿐하게 돌파해 160엔대 후반까지 뛰었다”며 “엔저 압력이 (전보다) 강화한 것은 시장이 일본 당국 개입의 한계를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지난 4월 29일 당시 투기세력은 일본 금융시장이 공휴일로 휴장한 틈을 타 기습적으로 달러·엔 환율을 160엔으로 끌어올렸는데, 이를 두고 일본 당국의 대응 속도와 규모, 개입 의지 및 효과 등을 테스트해본 것이라는 견해가 적지 않다. 역사적으로도 엔화는 지난 수십년 동안 투기세력의 크고 작은 공격을 꾸준히 받았다.
일본 당국이 외환시장 개입을 위한 ‘총알’, 즉 달러화를 구하기 위해 미 국채를 매각할 수 있다는 우려도 엔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실제 간밤 뉴욕시장에서는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4.33%로 큰 폭 오르면서 미일 장기금리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이외에도 유럽중앙은행(ECB) 등 주요 중앙은행들이 연준보다 먼저 금리인하에 나섰다는 점, 세계 각지에서 쏟아지는 포퓰리즘 정책 및 이에 따른 각국의 재정악화 우려 등이 달러화 강세를 부추겨 엔화 약세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개입 불가피·美눈치는 부담…BOJ 금리인상도 어려워
과도한 엔저는 수입물가 상승, 가계소비 및 기업투자 위축, 핵심 자본 및 인재 유출 등 일본의 경제 경쟁력, 나아가 국력까지 약화시킬 수 있다. 이에 따라 일본 당국의 시장 개입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스즈키 슌이치 재무상은 이날도 “급격하고 일방적인 (엔저) 움직임은 바람직하지 않다. 긴장감을 갖고 엔저 진행 배경을 분석해 필요에 따라 적절한 대응을 취할 것”이라며 24시간 준비중이라고 강조했다. 투기세력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다만 일본이 미국의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재지정됐다는 점은 부담이다. 아울러 주요 7개국(G7)은 ‘환율의 과도한 변동이나 무질서한 움직임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경우 개입을 허용한다’고 합의했지만, 최근 달러·엔 환율 변동폭이 2주 동안 최대 4%에 그쳐 개입 명분도 충분하지 않다고 닛케이는 짚었다. 2022년 9~10월 대규모 개입 당시에는 2주 동안 변동폭이 약 6%에 달했다.
일본은행(BOJ)이 금리를 올리면 장기금리 격차를 줄일 수 있지만 여의치 않다. 정부가 보유한 국채 규모가 1000조엔(약 8637조원)을 넘기 때문에 금리를 1%만 올려도 이자 등 재정부담이 폭증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BOJ가 7월 금리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오카산증권의 하세가와 나오야 수석 채권 전략가는 “국채 매입 축소와 추가 금리인상을 동시에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 내부에선 ‘리파트리에이션’(repatriation) 감세 도입도 거론되고 있다. 해외에서 보유 중인 외화를 일본 국내로 환류시키는 기업, 즉 벌어들인 외화를 엔화로 환전해 국내로 가지고 들어오면 법인세를 낮춰주는 등 세제 혜택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무성은 큰 효과를 보기 힘들 것이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연준 금리인하까지 ‘시간벌기’일뿐” …170엔대 갈수도
어느 시점에는 일본 당국의 개입이 이뤄질 것으로 보이지만 효과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이미 지난 4월 말, 5월 초 두 차례 대규모 개입으로 검증됐다. 9조 7885억엔(약 85조원)을 쏟아부어 달러·엔 환율을 151엔까지 떨어뜨렸지만 160엔 복귀까지 불과 두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에 미즈호은행 등 시장 전문가들은 달러·엔 환율이 170엔대까지 치솟을 수 있다며 현실화할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일본 정부가 환율 방어를 위해 미 국채를 매도하면 미일 장기금리 격차가 더욱 확대, 엔화 약세 압력이 가중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닛케이는 일본 당국 역시 시장 개입이 ‘시간벌기’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준이 금리를 내릴 때까지 엔저 속도를 늦추는 게 목표라는 얘기다. 미국 배녹번글로벌포렉스의 마크 챈들러는 “일본 정부의 환율 개입은 일방통행 움직임(엔저)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며 “달러화 강세 기조가 끝날 때까지, 즉 연준의 금리인하 전까지 시간벌기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방성훈 (ba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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