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모델학교’로 시작하는 유·보통합, 재원·인력 대책 선행돼야
정부가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통합해 영유아 돌봄의 질을 제고하기 위한 ‘유보통합’ 실행 계획을 27일 발표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2명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역대 정부가 30년 동안 변죽만 올리다가 실행에 옮기지 못한 유보통합의 첫발을 뗀 것은 의미 있다. 하지만 이날 정부 계획안에는 구체적 재원 마련 방안이 빠져 있고, 이해당사자 간 갈등이 촉발될 수 있는 중요한 쟁점 대부분을 또다시 미뤄놔 과거 정부의 혼선과 전철을 밟지 않을지 우려된다.
정부는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로 이원화된 영유아 교육·보육 관리체계를 교육부로 일원화해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들쑥날쑥한 서비스 질을 균질하게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어느 기관을 이용하든 양질의 보호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교육·돌봄 서비스 이용시간은 하루 최대 12시간으로 늘리고, 교사 대 영유아 비율도 0세반은 1 대 3에서 1 대 2로, 3~5세 반은 1 대 12에서 1 대 8로 낮춰 과밀학급을 해소하겠다는 방향도 담겼다. 정부는 하반기부터 100개 내외 모델학교를 선정해 시범 운영에 나설 방침이다.
하지만 정부는 정작 유보통합 추진의 가장 큰 난제인 교사 자격·양성체계·처우 문제 등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당초 올 1월까지 유보통합 추진안을 내놓겠다고 했다가 5개월이나 ‘지각 발표’를 했지만, 이번에도 이해당사자들과 조율·합의가 필요한 쟁점들은 모두 추후 결정 사항으로 미뤄놓은 것이다. 유치원·보육 교사는 지금도 자격증 취득 조건이 달라 새로운 교사 양성 체계와 기존 교사 자격 기준을 어떻게 일원화할지를 두고 교사들 간 입장이 갈리고 있다. 재원 마련 대책도 보이지 않는다. 돌봄시간 확대, 방과 후 프로그램 강화 등 유보통합 과정에서 연간 2조원 이상이 추가로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정부는 “교육·돌봄 책임 특별회계를 신설하겠다”고만 했을 뿐, 재원 마련 대책을 묻는 질문에는 “관계 부처와 협의 중”이라며 답변을 피했다.
역대 정부가 추진해 온 유보통합이 매번 좌초했던 건 바로 재원 마련과 이해당사자 간 갈등 때문이었다. 이러한 쟁점 해소 방안이 빠진 이번 정부 발표는 추진안이라기보다는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정부가 진정 유보통합 의지를 갖고 있다면, 재원 마련을 위해 부자 감세부터 중단할 필요가 있다. 또 의대 증원 추진 과정에서 나타난 난맥상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충분한 의견 조율 과정을 거쳐야 한다. 돌봄 서비스 제공 시간을 하루 12시간까지 늘리는 것보다는 장시간 노동 문제부터 해소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이라는 사실 역시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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