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관리 돌입하나? 한국은 러 대사 초치, 러는 한국 대사와 '면담'
러시아에 대한 적대적 정책을 재검토하라는 러시아 정부 고위 당국자의 요구에 대해 외교부는 러시아 측에 엄중한 우려를 표명했다며 관련 설명을 듣는 자리를 가졌다고 밝혔다. 북러 조약 체결 이후 긴장이 높아지던 한러 관계가 상황 관리 단계로 진입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7일 외교부는 " 이도훈 주러시아 대사는 26(수) 오전(현지시간) 안드레이 루덴코(Andrey Rudenko) 러시아 외교부 아시아태평양차관을 면담하고, 최근 푸틴 대통령의 방북과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에 대한 러측 입장을 청취하였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이 대사는 동 면담에서 러북 간 조약에 대한 우리의 엄중한 우려를 표명하였으며, 북한의 군사력 증강에 도움을 주는 어떠한 협력도 우리의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행위임을 강조하고, 이에 대한 러측의 분명한 설명을 요청하였다"며 " 러측은 금번 방북 관련 한국측 대응에 유감을 표하고, 최근 러·북 협력은 한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며, 동 조약은 오직 침략이 발생한 경우만을 상정한 방어적 성격의 것이라고 하면서 관련 조항 등에 대해 설명하였다"고 전했다.
앞서 26일(현지시각)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차관은 이도훈 주한 러시아대사와 만나 북러 조약 체결에 대응한 한국의 조치들에 대해 러시아 측의 입장을 전달하는 면담을 가졌다고 러시아 외무부가 밝혔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날 오후 6시 37분(한국 시각 27일 오전 0시 37분) 공개된 면담 내용 결과에서 러시아 측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이번 (북한) 국빈 방문에서 러시아 연방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사이의 양자협력 발전과 관련, 한국 고위급 인사들이 용납할 수 없는 반러시아 발언을 한 것에 주목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러시아 측은 "러시아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에 위협을 조성한다는 근거 없는 비난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찾기 힘든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공격적 계획으로부터 국제사회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것임을 강조한다"며 한반도 안보 위기의 책임을 미국으로 돌렸다.
러시아 측은 이어 동북아에서의 미국 행보에 대해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북아에 미국 중심의 군사 블록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러시아 측은 "우리는 한국 당국이 긴장 고조를 촉발하는 대립적인 한반도 정책을 재고하고 동북아에서 화해, 평화, 안정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할 것을 촉구했다"며 윤석열 정부의 러시아에 대한 적대적인 정책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측은 "동시에 수십년 동안 쌓아온 건설적인 동반자 관계의 협력 산물이 파괴되는 것에 대한 책임은 한국의 현 지도부에 있음을 시사한다"라고 밝혔다.
한국은 북러 간 조약 체결과 관련해 21일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러시아대사를 초치해 이에 대해 항의했다. 하지만 러시아 측은 이도훈 주러시아 대사를 초치한다는 표현을 쓰지 않고 면담했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에 러시아가 면담이라는 용어를 썼지만 내용이나 형식으로 보면 초치나 다름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27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러시아는 면담과 초치를 구분한다. 어제 면담한다고 보도자료를 냈고, 내용이나 분위기를 보더라도 초치라고 하기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러시아가 면담으로 했기 때문에 저희도 면담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초치가 아닌 일반적인 양국 고위급 회동이라면 관련 사실 및 언론 공개 등이 합의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러시아 측의 보도자료가 한국시간 기준 이날 0시 37분에 나온 반면 한국 측의 보도자료는 이보다 약 16시간이 늦은 27일 16시 30분 경에 배포됐다.
이에 사전에 언론 공개 형식이나 내용, 범위 등이 합의되지 않은 것이냐는 질문에 이 당국자는 "면담 결과를 어떻게 언론에 알릴지에 대해 합의되거나 조율된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한편 루덴코 차관은 지난 2월 초 양국 간 설전으로 긴장이 높아졌을 당시에도 방한해 장호진 국가안보실장과 비공식 접견을 하며 상황 관리에 주요한 역할을 한 바 있다.
당시 설전은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으로 시작됐다. 윤 대통령은 1월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57차 중앙통합방위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북한 정권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 선제 사용을 법제화한 비이성적인 집단"이라고 말했는데, 이에 대해 다음날인 2월 1일(현지시각)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편향적이며 혐오스러워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러자 3일 외교부는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의 발언은 일국의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으로는 수준 이하로 무례하고 무지하며 편향되어 있다"는 입장을 내놨고 주한 러시아 대사를 외교부로 초치해 항의한 바 있다.
하지만 외교부가 주한러시아대사를 초치한 당일 장 실장과 루덴코 차관은 서울의 모처에서 비공식으로 만나 최근 상황에 대한 논의를 가졌다. 루덴코 차관은 장 실장이 주러시아한국대사를 지낼 때 러시아 측 상대 파트너였고 장 실장이 외교부 제1차관으로 보직을 이동한 이후 러시아 방문에서도 만남을 가진 바 있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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