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이스라엘, 생존의 절박함이 만든 ‘젖소 없는 우유’

김지원 기자 2024. 6. 27.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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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기후테크’ 현장 찾았더니...전쟁 와중에도 뜨거운 창업 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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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에서 배양기술로 만들어진 이스라엘 스타트업 '리밀크'의 우유/리밀크

이 회사 회의실에 들어가니 직원이 환영한다며 초콜릿 우유 한 잔을 ‘웰컴 드링크’로 내왔다. 짙은 고동색 빛깔은 일단 합격. 한 모금 들이켜니 진하고 꾸덕한 초콜릿 풍미에 진한 우유 맛이 입안을 감싼다.

지난 20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위치한 스타트업 ‘리밀크(remilk)’. 웰컴 드링크로는 다소 어울리지 않았던 초코 우유의 반전 정체는 이 우유가 ‘젖소 없는 우유’로 만들어졌다는 점이었다. 젖소에서 생산한 게 아니라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배양 우유’를 썼다는 얘기다. 이 우유로 만든 크림치즈 역시 시중 크림치즈보다 맛과 식감 어느 하나 빠지지 않았다. “조용한 ‘유제품 혁명’을 일으키는 회사”란 평이 나올 법했다.

경상도만 한 땅에 서울 인구보다 적은 인구(약 950만명)를 가진 소국이지만, 인구 대비 스타트업 수 세계 1위라는 이스라엘. WEEKLY BIZ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와중에도 창업 열기가 꺾이지 않는 이 ‘스타트업 왕국’을 찾았다.

그래픽=김의균

◇위기감이 만든 재창조

이스라엘은 원래 세계적인 낙농업 강국으로 꼽혀왔다. 2021년 기준 12만두(頭)의 젖소가 연간 150만t의 우유를 생산하고, 유제품 자급률은 80%에 달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인구가 매년 1.7~2%씩 증가하는 데 비해 젖소를 키우는 농장의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위기가 닥쳤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수입 가축 사료 비용이 크게 오르며 농가 타격도 컸다.

이 같은 분위기 속 배양 우유에 대한 관심도 더욱 커졌다는 게 리밀크 측 설명이다. 이 회사에 따르면, 배양 우유엔 젖소가 생산한 우유와 동일한 단백질이 함유돼 있다. 배양 우유는 우유의 핵심 성분인 단백질을 생산하는 유전자를 효모에 삽입해 발효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데, 이 과정을 거치면 일반 우유와 동일한 단백질이 증식하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우유는 콜레스테롤이나 유당 불내증이 있는 사람들에게 복통을 유발하는 유당도 없다는 게 장점이란 설명이다. 특히 유대인이 키운 가축에게서 얻은 유제품만 먹을 수 있도록 규정하는 ‘코셔(kosher)’라는 유대교의 독특한 규율에서도 자유롭다.

2019년 설립된 ‘리밀크’는 ‘지속 가능한 유제품 생산’을 목표로 한다. 웬디 싱어 리밀크 수석 고문은 “전통적 유제품 산업은 (온실가스 배출과 비효율적 토지 이용 등의 측면에서) 지구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며 “이에 동물에게 의존하는 대신 유제품 산업을 ‘재창조(reinvent)’하게 됐다”고 했다. 글로벌 시장 분석 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이스라엘 대체 단백질 시장의 매출 규모는 올해 478만달러에서 2029년 1038만달러로 연간 16.8% 성장률을 보일 전망이다.

◇기후변화는 ‘실존의 문제’

텔아비브에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130㎞쯤 달렸을 때, 창 밖엔 황량한 사막이 끝없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섭씨 35도에 육박하는 기온에 모래와 돌이 섞인 땅이 이글거렸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허허벌판을 통과하는데, 말도 소도 아닌 낯선 동물이 보였다. 낙타였다.

이스라엘이 ‘기후변화’를 기민하게 받아들인 데는 환경적 영향이 크다. 이스라엘은 국토의 55%가 척박한 사막이다. 사막 지역 특유의 토양 침식, 물 부족, 사막화 등의 문제가 이미 일상과 맞닿아 있다. 이들에게 가속되는 기후변화는 곧 ‘생존의 문제’다. 이미 2022년엔 수천년에 걸쳐 이스라엘의 ‘젖줄’ 역할을 했던 갈릴리 호수가 기후변화로 메마르기도 했다.

이에 세계에서 인구 대비 스타트업 수가 가장 많은 이스라엘에서 ‘기후 테크(climate tech)’는 최근 가장 촉망받는 산업으로 떠올랐다. ‘리밀크’가 추구하는 주요 목표 중 하나도 낙농 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이다. 지난해 기준 전체 스타트업 9000개 중 8.7%(784개)가 기후 관련 스타트업이었다. 2022년 694개에서 1년 만에 90개가 늘었다. 드로르 빈 이스라엘혁신당국(IIA) 최고경영자(CEO)는 “신생 스타트업 6개 중 1개가 기후 스타트업”이라며 “기후 관련 기술이 ‘기회’로 인식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2021년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나프탈리 베네트 당시 이스라엘 총리가 “이스라엘을 ‘기후 혁신 국가’로 만들겠다”고 천명한 이래, 2019~2021년 3년 동안 기후 스타트업 정부 지원금 규모도 총 2억8000만달러(약 3900억원)에 이를 정도다.

19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열린 '플래닛테크(Planetech) 2024'에서 만난 노암 소넨버스 플래닛테크 이사/김지원 기자

◇”기후 위기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이스라엘 산업계에 적잖은 상흔을 입혔다. 기후 테크 분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2022년 25억달러(약 3조4700억원)에 달했던 투자 규모는 해외 투자자들이 빠져나가면서 6억4800만달러(약 9000억원)가 돼 4분의 1가량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와 기후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이런 시국에도 기후 위기 대응은 중요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지난 18일 텔아비브 자파 항구에서 열린 기후 산업 콘퍼런스 ‘플래닛테크(PLANETECH) 2024′ 현장엔 기후 스타트업 70곳과 관계자 15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당초 이 콘퍼런스는 지난해 10월 열릴 예정이었지만, 개최 일주일 전 하마스 공격이 일어나며 기약 없이 연기됐었다. 노암 소넨버그 플래닛테크 이사는 “이스라엘이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기후 위기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기후 위기와 이 지역의 협력을 위한 잠재적 돌파구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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