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논란’ 영총 “영화인 존재하는 한 대종상 계속될 것”
파산 논란, 영화제 파행 등 입장 밝혀
“내분이라 부를 정도의 싸움이 아닙니다. 부끄럽지만 겨우 몇 사람으로 인해 영화계 전체가 수모를 당하고 있는 거죠. 영화인들이 존재하는 한 대종상은 계속될 겁니다.”
국내 최고(最古) 영화 시상식인 대종상을 주최하는 사단법인 한국영화인총연합회(이하 영총)가 내부 갈등으로 파산하는 등 부침을 겪는 것과 관련, 양윤호 영총 이사장은 27일 “올해 11월 시상식 정상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개최권을 가진 영총 조직 시스템이 기능을 상실하면서 올해는 대종상 개최가 사실상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영화계 안팎의 의혹에 선을 그은 것이다.
다만 시상식 정상 개최를 위한 예산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회생 여부를 두고 채권자와 법적 다툼이 진행되고 있는 터라, 중점 추진해 온 서울시 지원금 수령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양 이사장은 “곤란한 상황에 놓였다”면서도 “재원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대종상 파산? 개혁에 반발하는 구시대 기득권 때문”
영총은 이날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영총을 둘러싼 내홍 등 각종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기자회견엔 양 이사장을 비롯해 이장호 대종상영화제 위원장, 방순정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이사장, 이갑성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 등 영총 임원진들이 모두 참석했다. 영총 관계자는 “대종상 60돌을 앞두고 우여곡절에 관해 얘기하게 돼 마음이 아프다”면서 “내부 이야길 꺼내야 하는 자체가 부끄럽지만, 정확히 짚고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 급하게 자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1962년 시작한 대종상은 정부의 민간 이관으로 1992년부터 영총이 개최권을 갖고 진행하고 있다.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과 함께 ‘3대 영화 시상식’으로 꼽히지만 2010년대 들어 집행부의 정부 보조금 횡령, 불공정한 심사, 배우들의 연이은 불참 등 각종 논란을 일으키며 위상이 추락했다. 지난해 12월엔 전직 임원인 채권자 A(87)씨의 신청으로 법원으로부터 파산이 선고되면서 아예 시상식 자체가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현재 영총은 회생 절차를 밟는 중이다.
영총 임원진들은 2010년대 이후 대종상이 파행을 거듭하며 불미스러운 논란을 낳게 된 배경에 A씨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총은 “A씨는 2011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대종상이 구설에 올랐던 기간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라며 “이 기간 세 차례에 걸쳐 영화제 행사위탁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A씨가 요구한 소개비가 채무가 됐다”고 주장했다. A씨가 영총 임원진으로 활동하며 지원금을 댈 위탁업체를 연결해준 대가로 20~40%의 소개비를 요구했고, 이를 영총이 지급하지 못하자 채권자가 돼 파산 신청을 주도했다는 것. 영총에 따르면 A씨에게 지급해야 할 소개 수수료는 당초 1억 5000만원 정도로, 10여년 간 이자가 쌓이면서 3억 6000만 원으로 불어났다.
A씨는 20여년간 영총 임원으로 활동하다 2022년 현 집행부에서 징계받기 전 자진 탈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순정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이사장은 “통상 채무자가 채권 압박에서 벗어나려 하는 파산신청을 채권자가 신청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파산선고를 받게 됐다”면서 “법원에서도 파산보단 영총이 계속 사업을 이어가 회생하는 게 채권자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판결을 해 회생개시 명령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장호 집행위원장은 A씨를 겨냥해 “일부 연륜만 과시하는 사람들이 마치 장사하는 것처럼 행동해 대종상이 신뢰를 잃었다”고 비판했다.
○“글로벌 대종상 될 기회였는데…” 예산 확보 어떻게?
영총은 이날 “올해 제60회 대종상은 어떤 경우에도 개최할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오는 11월 개최를 목표로 8월 내 미디어데이를 열겠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양 이사장은 “프랑스의 세자르 영화제처럼 국내 로컬 영화제에서 글로벌 문을 여는 대종상이 목표”라며 “여러 문제에 시달리고 있지만, 올해 시상식을 기점으로 새롭게 출발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다만 재원 마련에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점이 문제다. 서울시가 최근 영화제뿐 아니라 영화시상식도 지원할 수 있도록 관련 조례를 개정하며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지만, 파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사실상 올해는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영총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씨와 면담도 가졌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양 이사장은 “어제 서울시 영화시상식 지원금 공모 심사가 있었는데 사실상 어렵게 됐다”면서 “만약 서울시가 대종상을 지원하다 영총이 파산하게 되면 지원금을 반납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영총 산하인) 서울시영화인연합회를 통해 지원금 받는 방안도 검토했는데, 업무표장도 법원에 걸려 있어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양 이사장은 “영화진흥위원회가 됐든, 서울시나 경기도가 됐든 안정적이고 투명하게 재원을 쓸 체계가 필요하다”면서 “영화제 정상 개최를 위해 스폰서 마련 등 다른 방안을 찾아볼 것”이라고 했다.
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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