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업종별 차등적용 '또' 충돌…최저임금 시한인 오늘 표결 전망
노동계 "차등적용은 최저임금 근간 흔드는 것"
경영계 "최저임금도 감당 못하는 소상공 고려"
"심의 결론내기 힘들 듯"…또 법정기한 넘기나
[세종=뉴시스]권신혁 기자 = 노사가 최저임금 심의·의결 마지막 날까지도 업종별 차등적용을 두고 여전히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양측은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을 제출할 예정이지만 입장 차가 큰 만큼 법정기한 내 합의가 힘들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사는 27일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제6차 전원회의에서 업종별 차등적용 관련 공방을 벌였다.
노동계는 지난 25일 5차 회의에 이어 "업종별 차등적용은 최저임금법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근로자위원 간사인 류기섭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업종별 차별 적용은 저임금 노동자 생활 안정을 위해 존재하는 최저임금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를 또 다른 차별의 사회로 진입시키는 악순환의 고리이자 도화선이 될 것이다"고 우려했다.
류 위원은 "오늘은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법정 심의 기한"이라며 "저임금노동자는 올해 최저임금이 혹여 또 저율로 결정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지금 이곳을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부로 최저임금 본래 목적과 무관한 업종별 차별 적용 주장은 멈추고 저임금 노동자 생계 안정을 위한 심의가 진행되길 강력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근로자위원인 이미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특정 업종 노동자의 임금 최저 수준과 생활 안정을 보장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우리 사회의 경제생태계가 무너져도 신경 쓰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최저임금의 목적과 취지를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 위원은 "사용자위원들이 기어이 임금을 깎고야 말겠다고 주장하는 편의점, 음식·숙박업, 택시운송 등에서 일하는 최저임금 노동자는 월평균 185만원을 받는다"라며 "최임위에 보고된 작년 비혼 단신 노동자의 월 실태 생계비는 246만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최임위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도 246만원이 필요하다고 했으면서 185만원으로 가정을 꾸려야 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은 더 깎자고 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사용자 측이 차등적용의 근거로 주장하는 '중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경영난'과 관련해 "이들의 경영이 어려운 이유는 최저임금이 높아서가 아니다"라며 "한국경제인연합회가 실시한 조사에서조차 자영업자들이 가장 고통스러운 이유는 임차료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하는 논의와 결정으로 수백만명의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삶과 일상이 달라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반면 경영계는 소상공인과 소규모 사업장의 고충을 언급하며 구분 적용할 것을 촉구했다.
사용자위원 간사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전무는 "미국, 스위스 등 선진국에선 일반적인 최저임금보다 더 낮은 별도의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 국가들은 대부분 오랫동안 최저임금 수준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오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구분 적용을 통해 수용성을 제고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단기간에 급격하고 일률적으로 최저임금 수준을 높였기 때문에 노동시장의 수용성이 현저하게 저하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 위원은 "숙박·음식업, 보건사회복지업 등의 사업장에서는 현 수준의 최저임금도 감당하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며 "이러한 시장 현실을 외면한 채 업종 구분 없이 일률적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해 온 관행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저임금 수준도 감당하지 못하는 업종이라도 먼저 구분 적용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사용자위원인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노동계가 차등적용 반대의 근거로 주장하는 '낙인 효과'와 관련해 기우라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노동계는 구분 적용 받는 업종이 낙인 효과로 구인난이 발생할 수 있다고 걱정한다"며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경영난을 겪는 기업이나 소상공인은 지금 경영 활동이 유지되고 있고 신규 채용 수요가 있어 상황이 괜찮은 것"이라며 "구분 적용과 관계없이 적정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면 구인난을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다수의 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는 구인난보다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폐업이 훨씬 더 큰 걱정거리"라고 했다.
또 이 위원은 "구분 적용을 받게 되는 사업장 근로자의 생계비는 어떻게 하느냐"라는 지적과 관련해 "일리는 있지만 그 책임을 취약사업장의 사업주가 모두 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불능력이 낮아진 이유에는 근로자의 생산성이 낮은 점도 있다"며 "노사의 공동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노사가 끊임없이 신경전을 벌이는 가운데, 이날 회의에서는 업종별 차등적용 표결이 이뤄질 전망이지만, 통과될 가능성은 낮게 점쳐진다.
지난해 최임위에서도 노사는 차등적용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에 최임위는 안건을 표결에 올랐으나 찬성 11명에 반대 15명으로 부결된 바 있다.
공익위원들이 차등적용 문제를 올해 최임위 종료 후 회의장 밖에서 논의를 이어가자는 제3의 안을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 13일 열린 제4차 전원회의에서도 공익위원 측은 노동계의 '최저임금 확대적용' 주장과 관련해 "심의 종료 후 근거자료를 준비하면 추후에 논의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이날 노동계는 최저임금 최초 제시안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류기섭 근로자위원 간사는 "지난 회의에서 위원장께서 최초 요구안 제시를 요청한 만큼 본격적인 수준 논의가 시작되길 다시 한번 요청한다"며 "한국노총은 위원장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합리적인 수준의 요구안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용자 측에 "위원장의 요청을 받아들여 오늘 최초 요구안을 제시해 주시길 요청한다"고 했다.
노동계는 지난해 최임위에서 최초안으로 시간당 1만2210원을 제시했다. 올해 노동계가 저임금노동자의 생활 안정을 위해 끊임없이 최저임금 인상을 촉구한 점을 고려하면, 올해 최초 요구안은 1만2210원보다 더 높은 수준을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경영계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이른바 '3고(고금리·고물가·고환율)'로 인한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근거로 현재 적용되고 있는 최저임금인 시간당 9860원을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저임금 수준 논의는 올해 최임위에서 이날 처음 진행되는 것이며, 노사의 요구안에 간극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예년과 같이 심의 기한 내 결정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공익위원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도 이날 회의에서 "최선을 다해 심의는 하겠지만 기한 내에 결론을 내기엔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법정 심의 기한 준수는 일종의 훈시규정으로,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심의 기한을 넘기는 것은 관행처럼 반복되고 있다. 지금까지 법정 기한을 지킨 사례는 1988년 최저임금제도 도입 이후 9번뿐이다.
최저임금 고시 시한은 매년 8월5일이다. 이의제기 절차 등을 감안하면 늦어도 7월 중순까지는 심의를 마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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