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저출생, 돈 줘서 해결될 게 아니다

이슬기 기자 2024. 6. 2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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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아이 학교에서 알림톡이 왔다.

부모 대신 교문 앞에서 아이를 맞이하고, 길을 같이 건너주는 것도 관장님 몫이다.

그런데 아이를 길러보니 가장 필요한 건 '돈'이 아니었다.

하교 시간과 퇴근 시간, 아이 방학과 부모의 가용 휴가, 아이가 부모를 원하는 시간과 부모가 낼 수 있는 '시간의 간극'을 어떻게 채우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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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아이 학교에서 알림톡이 왔다. 여름방학 4주간 돌봄교실 참여 및 중식 신청 여부를 알려달라 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망했다. 1학년 첫 방학인데 아무 준비도 못 했네.’ 1~2주 휴가론 택도 없었다. 일단 회사 업무부터 처리하자며 미뤘다. 피하고 싶은 현실이었다. 그래도 학교 문을 연다니 감개무량이다.

학교에선 1~3학년 통틀어 10명쯤 참석한다고 했다. 9시부터 19시까지 ‘자유 선택 놀이’와 ‘EBS 시청’ 후 점심을 먹고, ‘독서’ ‘보드게임’ ‘종이접기’를 하는 일과였다. 절반도 안 찬 교실에서 매일 TV를 보거나 알아서 놀다가 밥 먹고, 또 알아서 노는 식이다. 방치되는 것 같았다. 만 8세까지 적용되는 ‘육아기 단축근무’를 알아봤다. 무조건 3개월 이상만 쓸 수 있는 데다 월급도, 내년 연차도 다 깎인다고 했다.

이럴 때 ‘구세주’가 있다. 동네 태권도장 관장님이다. 오후 3~4시면 노란색 승합차로 아이를 데리러 와준다. 부모 대신 교문 앞에서 아이를 맞이하고, 길을 같이 건너주는 것도 관장님 몫이다. 도장에선 태권도, 줄넘기, 피구, 축구로 실컷 땀을 빼준다. 훈육에 인성교육까지, 태권도장은 대한민국 초등학생 돌봄의 최전선에 있다. 맞벌이 가정이 도저히 낼 수 없는 ‘시간’을 메워준다. 정부도, 정책도 아닌 관장님이 이걸 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저출생 대책을 냈다. 합계출산율 0.72명. 그냥 두면 국가 존속이 위협받는 ‘비상사태’라고 했다. 육아휴직 급여를 최대 월 250만원으로 올리고, 직장 동료의 ‘육아기 단축근무’로 내 업무가 늘어나면 월 20만원씩 준다. 출산하면 전세자금대출 소득요건을 낮추고 특별공급 기회도 더 준다. 결혼으로 일시적 2주택이 된 가정에는 종부세 혜택도 있다. 국회에선 아동수당 확대, 저금리 주택자금대출 대책을 내놨다. 반가운 변화다.

그런데 아이를 길러보니 가장 필요한 건 ‘돈’이 아니었다. 하교 시간과 퇴근 시간, 아이 방학과 부모의 가용 휴가, 아이가 부모를 원하는 시간과 부모가 낼 수 있는 ‘시간의 간극’을 어떻게 채우냐는 것이다. 일하는 부모가 그 시간을 확보하려면 조직에 ‘피해를 주는 사람’으로 낙인 찍히고, 금전적·경력상 패널티도 감수해야 한다. 그런 괴리가 출산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을 키웠다. 직장에 시간을 간청하고, 대가도 치러야 하는 구조말이다.

이 두려움의 대부분을 여성만 느끼는 것도 문제다. ‘임신-출산-육아-사회 복귀’ 트랙에서 배우자의 영역을 넓혀야 한다. 현재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등의 제도는 ‘여성=주양육자, 남성=보조’라는 인식에 기반해있다. 똑같이 직장을 다녀도, 임신·출산을 감내한 여성이 양육까지 떠안는다. 수유와 건강 회복 등 필수 기간이 지나면, 남성도 ‘제1 양육자’로서 충분한 휴직을 제대로 보장 받아야 한다. 인력수급 여건상 비현실적이라 할 건가. ‘비상대책’ 없이 ‘비상사태’가 끝나길 바라는 건 그냥 망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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