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시각] 위장 이혼 권하는 상속 세제

윤희훈 기자 2024. 6. 27.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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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서울고등법원 가사2부(부장판사 김시철)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과 관련해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1조4808억원, 위자료로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만약 노 관장이 이혼을 통한 재산분할이 아니라 배우자의 사망으로 인해 상속으로 받았다면? 우선, 총 분할액 1조4828억원에서 배우자 공제금액 최대 30억원을 공제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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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훈 정책팀장

지난달 30일 서울고등법원 가사2부(부장판사 김시철)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과 관련해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1조4808억원, 위자료로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처럼 조 단위 규모의 결정이 나오면서, 세기의 이혼소송이라는 세평도 얻었다. 물론 최 회장 측이 항소하면서 대법원 판결을 기다려봐야 한다. 다만 2심 판결이 유지된다면 노 관장이 받는 액수는 조 단위의 재산분할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노 관장이 내는 세금은 얼마일까. 배우자의 증여나 사망으로 인한 상속으로 재산을 물려받게 되는 경우엔 세금이 붙는다. 하지만 이혼으로 인한 재산 분할에 대해선 세금이 붙지 않는다. 1998년 이전까지 배우자 증여공제금액을 초과해 받는 재산분할에 대해선 증여세를 매겼다. 하지만 헌재가 재산분할에 대한 증여세 과세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분할 재산에 대해선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도록 법이 바뀌었다. 위자료 역시 마찬가지다. 손해배상의 성격이기 때문에 과세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 결국 노 관장이 따로 내야 하는 세금은 없다.

재산분할에 세금을 매기지 않는 취지는 뭘까. 부부의 협력으로 형성된 재산이 이혼으로 청산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또 재산 형성 과정에서 소득세를 이미 냈는데, 이혼을 통해 분할된 재산에 세금을 매기는 것은 ‘이중 과세’가 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다.

만약 노 관장이 이혼을 통한 재산분할이 아니라 배우자의 사망으로 인해 상속으로 받았다면? 우선, 총 분할액 1조4828억원에서 배우자 공제금액 최대 30억원을 공제해 보자. 그럼 1조4798억원이 남는다. 여기에서 누진공제액 4억6000만원(약 5억원)을 제외하면 1조4793억원이 된다. 이것의 50%인 7397억원을 상속세로 내야 한다. 상속 재산의 절반을 국세로 납부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대규모 재산을 보유한 자산가에게 사망 전 위장이혼을 ‘세테크 기법’으로 소개하기도 한다. 이혼으로 자산을 분할하고, 분할하고 남은 자산만 자녀들에게 상속하라는 것이다. 재산 분할을 통해 총자산의 절반 정도를 털어내고, 나머지만 상속할 경우 과세표준에 따른 세율 인하 등 상속세액을 줄이는 감세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 같은 ‘세제 사각지대’를 노린 편법이 횡행하는 것은 현행 상속세제가 그만큼 비합리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배우자 간 상속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두고 학계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부부의 재산은 후대인 자녀에게 상속된다는 점에서 부부 사이에 부의 이전(transfer)은 조세 회피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게다가 부부의 재산 형성은 혼자 번 근로 소득보다 공동기여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배우자에 대해선 상속세를 면제하거나 최대한의 공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미국과 영국, 덴마크, 스위스(졸로투른 주) 등도 한국과 같이 ‘유산세’를 적용하고 있다. 해당 국가들은 배우자 공제를 한도 없이 전액 면제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만 배우자가 남긴 자산에 상속세를 물리고 있다. 이는 생존 배우자(주로 여성)의 재산 형성 기여를 인정하지 않는 남존여비 사상의 유산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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