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파견 노동자, 매일 16~17시간 노예 노동”…윤석열 정부 두번째 북한인권보고서 발간

유새슬 기자 2024. 6. 27.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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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증언에 기반한 북한인권보고서
윤석열 정부 들어 두 번째 공개 발간
“한국 노래·영화 유포했다고 공개처형”
“북 주민 80~90%가 마약” 증언
탈북자 증언에 기반해 과장 가능성도
북한 예민하게 반응할 가능성 커
6·25전쟁 발발 74주년인 25일에 ‘6·25 미제반대투쟁의 날 군중집회’가 각지에서 진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6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통일부는 26일 탈북자들의 증언에 기반한 480쪽 분량의 2024 북한인권보고서를 발간했다. 지난해에 이어 윤석열 정부가 공개 발간한 두 번째 보고서다. 지난해 보고서는 탈북자 508명, 올해 보고서에는 추가로 141명의 경험담·목격담이 반영됐다.

보고서에는 마약이 의료품 대용으로 쓰이면서 주민 다수가 마약 경험이 있고, 해외 파견 노동자들이 ‘노예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증언이 담겼다. 탈북민들의 증언을 기반으로 펴낸 것이어서 보고서 내용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황해남도에서 22세 청년이 한국 노래 70곡과 영화 3편을 시청하고 유포했다는 이유로 공개 처형당했다. 북한 당국은 길거리, 자택 등 장소를 불문하고 주민들의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검열해 ‘아빠’ ‘쌤’ 같은 남한식 표현이 있는지 확인한다. 결혼식에서 신랑이 신부를 업는 행위, 신부가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는 것, 선글라스를 착용하거나 와인 잔으로 술을 마시는 모습도 ‘반동사상문화’로 규정해 처벌한다.

탈북을 시도했다가 강제 북송되면 인권 침해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여성들에 대한 성범죄는 빈번하고 강제 낙태, 아동들에 대한 잔혹행위도 이뤄지고 있다. 강제 북송된 사람들은 조사 결과와 뇌물 여부 등에 따라 처벌 내용이 달라지지만 수위가 전반적으로 높아지는 추세다.

해외파견 노동자들도 매일 16~17시간씩 주말 없이 일하는 노예 노동에 시달린다고 탈북자들은 증언했다. 잠은 하루에 4시간 자고 휴일이 1년에 이틀만 주어졌다는 증언도 나왔다. 임금의 90% 이상은 당국에 상납해야 했고, 1년간 일했는데 빚만 남았다는 진술이 있었다.

2020년 초부터 코로나19가 확산하자 북한은 방역을 이유로 국경 지역 통제를 강화했다. 철조망에 전류를 흘려보내고, 국경경비대원들에게는 실탄 60발씩 지급하며 봉쇄 구역에 진입하는 자는 즉시 사살하라는 지시가 내려지기도 했다.

북한 사람의 80~90%가 마약 경험이 있는 것 같다는 증언도 나왔다. 의료 환경이 열악해 마약을 의료 대용품으로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에서는 필로폰 입자가 얼음처럼 생겨서 ‘빙두’라고 부르는데 ‘함흥에는 코 달린 사람은 얼음(빙두)을 한다’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개인 간 거래에서 아편 1g은 쌀 10kg 가격이어서 주민들은 밭에 옥수수와 양귀비를 섞어 심는 방식으로 마약을 재배하기도 한다. 아편은 북한 당국 간부들에게도 뇌물로 상납된다.

2016년 시행된 북한인권법에 따라 역대 정부는 2018년부터 매년 북한인권보고서를 작성했지만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과 북한이탈주민 개인정보 공개 등을 우려해 3급 비밀로 비공개해왔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인권 상황을 국내·외에 알리는 것이 통일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기조 아래 지난해 3월 역대 정부 중 최초로 북한인권보고서와 북한 경제·사회 실태 보고서를 공개적으로 발간했다. 보고서 영문판도 제작해 국내·외 정부 기관, 교육기관, 연구기관, 민간단체 등에 배포했다.

올해는 북한 인권 보고서에 대한 국민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소책자 형태의 요약보고서와 영상보고서도 제작해 공개했다. 영문판도 조만간 배포될 예정이다. 통일부는 “이 보고서는 정부가 북한인권의 실질적 개선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는 의지의 결과물”이라며 “공개 발간은 단순히 북한 인권 상황 고발에 그치지 않고 현 실태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바탕으로 실질적 해법을 모색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발간사에서 “정부의 북한 인권 정책이 당장 가시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고 아쉬워하실 수도 있다”며 “하지만 우리의 이런 노력이 북한 인권, 그리고 통일 여건의 변화를 가져오는 소중한 마중물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탈북민들의 목격담, 경험담에 의존해 만들어진 것이어서 실제 보고서에 담긴 내용 중 일부가 과장됐을 가능성은 상존한다. 실제로 지난해 인권보고서 영문판에는 ‘통일부는 이 보고서에 담긴 수치, 분석, 의견 등 정보의 정확성, 완결성, 신뢰성, 적시성에 대해 보증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이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대통령실이 통일부를 상대로 감찰에 나서기도 했다. 통일부는 해당 서술을 삭제한 뒤 영문판을 다시 펴냈다.

탈북민이 보고서 내용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상황은 이날 실제로 벌어졌다. 지난해 동해에서 목선을 통해 탈북한 A씨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보고서에 담긴 ‘북한 주민의 80~90%가 마약을 한다’는 증언에 대해 “80~90%는 좀 아닌 것 같다. 정확히 50%정도 마약을 쓰고 있다”며 “제가 있던 지역은 특히 마약 생산을 많이 하는 지역이었다. 함흥 쪽은 70% 정도가 마약을 썼다”고 말했다. A씨는 “2022년부터 김정은이 한국 드라마와 함께 마약을 같이 뿌리 뽑기 시작했다. 마약 생산자들을 다 잡아서 총살했다”면서 “그래서 이제는 무서워서 (마약) 생산을 못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는 상황에서 이번 인권 보고서에 북한은 예민하게 반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올해 7번째 오물풍선 살포를 전날 밤 단행했고 다탄두 미사일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이날 밝혔다. 한·미·일은 첫 다영역 훈련을 이날 시작하는 등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점증하고 있다.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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