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승찬 ETRI 원장 “국가 R&D 제 기능하려면 묶음 예산 필요”

“인건비 충당하러 작은 과제 수주, PBS 개선해야
70년대 전전자교환기 성공, 대형 묶음 예산 덕분”

방승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은 27일 서울 강남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PBS 제도를 개선 해야 국내 R&D 성과가 개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한국전자통신연구원

방승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이 27일 “파편화된 연구중심제도(PBS)가 국내 연구 현장에서 가장 큰 문제”라며 “기초연구에서는 소규모 연구가 중요하지만, 상용 기술에는 대형 연구가 필요한 만큼 ‘묶음 예산’ 방식이 PBS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방 원장은 이날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대규모 인공지능(AI) 개발 같은 연구를 위해서는 PBS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PBS는 정부에서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자의 인건비를 일부만 지원하고 나머지는 연구과제에서 충당하도록 하는 제도다. PBS가 도입된 이후 출연연이 인건비를 모으기 위해 소규모 연구 과제를 수주하다 보니 연구력 낭비가 크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전날 발표한 정부출연연구기관 혁신 방안에 PBS 개선이 담길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막상 발표된 대책에는 PBS 부분은 빠져 있었다. 방 원장은 “이번 출연연 혁신안에 PBS 제도 개선안이 담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며 “출연연의 R&D를 효율화하고 국내 R&D를 살리려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방 원장은 ETRI의 대표 연구성과 중 하나인 ‘시분할 전전자교환기(TDX)’를 예로 들었다. 1970년대에는 전화통화를 위해 교환기가 필요했는데, ETRI는 1977년 국산 기술로 전자교환기 개발에 성공했다. 이후 1986년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값비싼 해외 제품을 들여오는 데 필요한 예산을 크게 절감했다.

당시 연구에는 240억원 이상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으나 경제적 효과는 이보다 훨씬 컸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TDX 기술 개발을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만들고 이를 하나로 묶어 예산을 지원하는 묶음 예산 제도가 활용됐다. 방 원장은 “과거 TDX 시스템 만들었던 방식대로 묶음 예산 방식을 도입하자고 제안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며 “국내 R&D 사업의 성공률이 99.8%에 달한다는 것도 PBS와 밀접하게 관련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작은 사업이 많아지면 정부가 지적한 ‘나눠 먹기’ 수주가 나올 수 있다”며 “차라리 원장에게 예산과 권한, 책임을 지우고 연구자들의 자율성을 보장하면 우수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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