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처럼…‘사의 후 재신임’이 보수정당 ‘관례’가 된 이유 [여의도앨리스]

문광호 기자 2024. 6. 2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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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사의 표명 3일 만에 당내 “재신임”
국회 협상 등 난맥에 비판 무마용 사의
2008년 홍준표부터 2024년의 추까지
국민의힘 계열 정당들의 리더십 확인법
원내대표 사의를 표명한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이 26일 인천 옹진군 대청도를 찾아 대청도항 접안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국민의힘 제공.

국민의힘은 27일 잠행 중인 추경호 원내대표의 복귀를 결의했다. 사의를 표명한 지 3일 만에 재신임된 것이다. 배준영 원내수석부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 직후 “당 상황이 엄중해서 의원들이 하루 빨리 추 원내대표가 복귀해 당무를 맡아달라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원내대표를 자신들이 선출했기에 사퇴 수용 여부도 원내 총의에 달렸다는 논리를 폈다.

추 원내대표가 지난 24일 사의를 표명했을 때도 정말 사퇴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국민의힘 의원은 많지 않았다. 사의 표명이 곧 사퇴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정치권, 특히 보수정당에서 이어져 온 특유의 관례 때문이다. 한나라당 이래 국민의힘 계열 정당의 원내대표들은 사의 표명을 국회 협상 난맥상의 출구전략으로 활용해왔다. 대개 협상 상대 당을 겨냥했다기보다는 소속 의원들로부터 리더십을 재확인하기 위한 경우가 많았다.

지난 2008년 9월12일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추가경정예산안의 국회 처리 무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홍 원내대표는 원내 172석의 거대 여당을 이끌고도 추경안 처리를 위한 야당과 협상에 실패해 당내 비판에 직면한 상태였다. 그는 직을 유지한 채 재협상에 나섰고 11일 뒤인 9월23일 의원총회에서 재신임을 받았다. 박희태 당시 대표는 “추경안 처리를 한 뒤 결자해지 차원에서 관련자 책임 문제를 논의하자고 했는데 추경안이 잘 통과됐다”며 의원들의 박수를 유도해 재신임을 받아냈다.

2012년 7월 친박근혜(친박)계 중진인 이한구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이 소속 의원들의 이탈표로 부결되자 원내지도부 전원의 총사퇴를 밝혔다. 다수당이던 새누리당은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며 정 의원 체포동의안 가결을 공언했지만 실패한 것이다. 이 대표의 사퇴는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까지 책임론이 제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기 진화 성격이 컸다. 결국 이 원내대표는 의원총회 재신임으로 원내대표직을 유지했다.

2016년 12월에는 정진석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책임을 지고 “예산안 통과 후 원내대표직을 내려놓겠다”고 밝혔으나 12월6일 의원총회에서 재신임을 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리더십 공백에 대한 우려 때문으로 풀이됐다.

2020년 6월23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당시 원내대표가 강원도 고성 화암사를 찾아가 미래통합당 주호영 당시 원내대표와 경내를 걸으며 대화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제공

국민의힘이 소수당이 된 2020년 총선 이후에는 원내대표의 사의 표명과 재신임이 통과의례처럼 빈번해졌다. 특히 주호영 국회 부의장은 원내대표 시절 두 차례나 사의를 표명했다가 재신임을 받았다. 그는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였던 2020년 6월15일 더불어민주당의 상임위원장 단독 선출과 상임위원 강제 배정에 항의해 사의를 표명했다. 당내에서도 대여 협상 실패 책임을 묻고 사퇴를 요구해 진퇴양난인 상황이었다. 주 원내대표는 사의표명 후 전국 사찰을 돌며 잠행을 하다가 김태년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의 설득에 6월24일 국회로 복귀했다. 25일에는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의 만장일치 박수로 재신임을 얻었다. 그는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던 2020년 12월18일에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 처리 등을 막지 못한 이유로 사의를 표명했으나 현역 의원들이 박수로 재신임받았다.

김기현 의원은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던 2022년 1월3일 전격 사의를 표명한 바 있다. 김도읍 정책위의장, 추경호 원내수석부대표 등 원내지도부 3인방도 일괄 사의표명했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 후보 지지율이 급락하자 선대위 쇄신책의 일환으로 나선 것이었다. 불화설이 나온 이준석 당시 대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의 사퇴를 압박하기 위한 카드라는 해석도 나왔다. 그러나 당시 윤석열 대선후보는 1월6일 의원총회에 참석해 “당과 선대위가 어려움을 겪게 된 것에 대해 의원님들께 송구하다”며 원내 지도부가 사의 표명을 거둬달라고 요청했다. 여기에 의원들도 재신임하면서 김 원내대표는 직을 유지했다.

권성동 의원도 2022년 8월16일 이준석 전 대표의 거취 문제를 둘러싼 내홍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내부총질’ 문자 메시지 유출 등 논란의 책임론이 당내 사퇴 여론으로 표출된 상태였다. 권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 자신의 재신임을 묻고 표결을 통해 재신임을 받았다.

여소야대가 유지되는 22대 국회에서도 국민의힘에서는 사의 표명과 재신임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대야 협상력은 떨어지는데 당내 강경파도 설득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원내수석부대표를 역임한 이양수 의원은 이날 BBS라디오에서 “누가 추경호 원내대표 자리에 있어도 마찬가지 결과가 있었을 수밖에 없다”며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파트너 정당으로 인정을 한다면 좀 더 성의 있는 조치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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