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고전하는데…카뱅·한화생명, 인니에 뛰어든 이유는
시중은행과 차별화 전략…지분 투자 방식으로 리스크 줄이고 협업↑
(시사저널=정윤성 기자)
최근 카카오뱅크가 지분 투자한 인도네시아 디지털 은행 '슈퍼뱅크'가 출범했다. 지난 5월에는 한화생명이 인도네시아 노부은행의 지분을 인수하며 현지 은행업에 뛰어 들었다. 현지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시중은행들의 상황과 사뭇 다른 행보에 관심이 모인다. 카카오뱅크와 한화생명은 시중은행과 다른 시장 진출 방식을 택하면서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인도네시아 디지털 은행 '슈퍼뱅크'가 공식 출범했다. 슈퍼뱅크는 동남아시아 최대 슈퍼 앱 '그랩'을 비롯해 현지 최대 미디어 기업인 '엠텍', '싱가포르텔레콤(싱텔)' 등이 주요 주주로 참여하는 인도네시아 디지털 은행이다. 카카오뱅크는 지난해 1000억원을 투자해 지분 10%를 소유하게 됐다.
슈퍼뱅크는 카카오뱅크의 첫 해외 투자처라는 점에서 관심이 모인다. 그간 카카오뱅크는 신사업 동력을 찾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주주인 카카오의 적격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지난해 추진한 신사업들이 불발되는 상황이었다. 국내 신사업 속도는 더딘 가운데, 카카오뱅크가 기존 국내에서 축적해 온 서비스 역량 및 경험을 녹여낼 해외 전초기지로 인도네시아를 택한 모습이다.
올 들어 보험사인 한화생명도 인도네시아 은행 시장에 뛰어들었다. 한화생명은 지난달 3일 현지 '리포그룹' 산하 중형 은행인 노부은행의 지분 40%를 매입하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국내 비은행 금융사 중 해외 은행업에 진출한 곳은 한화생명이 처음이다.
인도네시아는 금융시장 잠재력이 높은 국가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1인당 GDP와 금융산업 성숙도를 고려할 때 은행 이용률이 급증하는 단계에 속한다. 경제 수준이 전 세계 17위인 데 비해 은행 자산규모는 국내은행의 26%에 그친다. 거대한 인구를 중심으로 한 경제 성장 잠재력을 감안하면 신사업 동력을 확보하기에 매력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이성엽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세계 4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 가능한 잠재력과 3억 명에 육박하는 거대 인구에도 불구하고 금융 침투율은 태국, 말레이시아 등 인접국 대비 낮은 수준"이라며 "세계 질서의 변화를 고려하면 인니의 성장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이는 곧 금융 수요로 연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먼저 진출한 시중은행…수익성은 '글쎄'
2010년 중반 이후 국내 시중은행들도 인도네시아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4대 시중은행(KB국민·하나·신한·우리) 모두 현지 중소형 은행을 인수해 시장에 진입했다. 현지 은행 인수 이후에도 대규모 증자 및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며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시중은행들은 인도네시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의 인도네시아 KB뱅크(옛 부코핀은행)는 2018년 진출 이래 적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KB뱅크는 지난 한 해 동안 2613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고, 올해 1분기에도 688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다른 은행도 현지 성장에 고삐를 당겨야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나은행의 인도네시아 법인 순이익은 올 1분기 98억원에 그쳤다. 전년 동기 115억원 대비 14.8% 감소했다. 우리은행이의 우리소다라은행은 올해 1분기 142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5.3% 감소했다. 신한은행의 신한인도네시아은행은 올해 1분기 순익 73억7400만원을 기록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법인보다 제휴·협업…차별화된 방식 통할까
카카오뱅크와 한화생명은 이같이 쉽지 않은 여건을 시중은행과 다른 참여 방식으로 보완한 것으로 보인다. 두 회사는 현지 한국계 법인 설립이 아닌 현지 회사 지분을 매입하는 방식을 택했다. 시중은행과 동일하게 법인 형태로 진출할 경우 인수 단가도 높을 뿐만 아니라 리스크가 크다는 판단에서다.
카카오뱅크는 전략적 지분 투자를 통해 다른 주요 주주들과의 협업을 넓혀 사업성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현지 대형 기업의 영향력과 카카오뱅크의 국내 인터넷은행 경험 시너지를 활용해 다양한 상품·서비스 기획 및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발 삼아 사업 경험을 축적해 동남아 사업 기반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한화생명 역시 현지 재계 서열 6위인 리포그룹 산하 은행 지분을 매입하는 방식을 택했다. 앞서 한화생명은 리포그룹과 MOU를 맺은 데 이어 산하 금융사인 리포손해보험과 칩타다나 증권·자산운용까지 인수하며 은행업 진출의 포석을 둔 바 있다. 현지 금융 사업을 확장하는 데 있어 리포그룹과의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해 다각도의 지원과 협력을 꾀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현지 전통 금융사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라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현지 회사의 지분을 인수한 만큼, 주요 고객도 현지 고객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의 경우 현지에 진출한 한국계 기업을 주 고객으로 삼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시중은행들은 한정된 현지 대기업과 교민들을 위주로 경쟁한다는 어려움이 있다"며 "이와 다른 방식을 택한 금융사의 경우 현지 전통 은행들의 공고한 점유율을 뚫어야 한다는 점에서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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