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4시간씩 ‘공부-운동-일’…삶의 소명 위해 힘써”
[서울&] [다시, 시작] ‘부모님 고생’ 생각하며 고등학교 자퇴
홀로 공부하며 “한자 공부 필요” 느껴
선배가 준 책 ‘열심 공부’…철학과 입학
두 번 직장 거친 뒤 1996년 자영업 시작
2005년 일본 학자가 쓴 한자책 접하고
‘동이 천자문’ 등 저술 뒤 지인들과 학습
소명에 관심 없는 세태 안타까움 느껴
“시골서 식량 해결하며 글 계속 써갈 것”
개인사업가였던 김점식(57)씨는 한자 관련 책을 세 권 썼다. 사업가였던 김씨가 어떻게 한자책을 세 권이나 쓰게 된 걸까? 그가 한자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홀로 공부하면서부터다. 혼자 공부하니 ‘분지’(盆地) 같은 한자어의 뜻이 뭔지 잘 몰랐다. 옥편을 찾아 ‘분’(盆) 자가 ‘그릇 분’이라는 걸 알게 되니 공부가 쉬워졌다. 그때 그는 한자 공부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전북 고창에서 태어난 김씨는 고등학생 때 안양으로 올라왔다. “어머님이 새벽에 일어나 두부를 만들어 파셨는데 힘들게 번 돈이 도시에선 얼마 안 되잖아요. 부모님이 고생해서 등록금을 내느니 내가 혼자 공부하는 게 낫겠다 하고 자퇴했죠.” 당시 김씨는 사회 참여가 활발했던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수도교회에 다녔다. 교회 선배가 준 교재를 닳도록 공부해서 ㄱ대 철학과에 들어갔다.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휴학하고 돈을 모았지만, 학비를 만들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학교를 그만둘까 고민하는데 목사님이 장학금을 받도록 도움을 줬다. 덕분에 대학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김씨가 1992년 ㄴ타이어에 입사했는데 노조가 어용이었다. 노조위원장이 그가 노조를 탈퇴했다고 회사에 알려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다. 영업부로 옮겼는데 직원들이 월말이면 대리점에 밀어내기로 실적을 올렸다. 수입은 괜찮았지만, 그는 의미 없는 일을 하는 게 힘들어 신혼인데도 사표를 냈다.
퇴직금을 받아보니 연차수당 일부가 누락돼 인사부에 지급을 요청했다. 직원은 판례를 들먹이며 연차수당을 안 주는 게 맞는다고 맞섰다. 그가 노동부에 신고하니 근로감독관이 회사 직원에게 딱 두 마디를 했다. “안 줬어? 줘!” 그게 다였다. 김씨는 모든 직원에게 연차수당을 지급하라 요구했고, 회사는 그의 것만 주겠다고 했다. 그는 회사의 잘못된 관행을 고치고 싶었다. 집안 어른이 ‘자기 앞가림’이 우선이라며 그를 말렸는데, 지금도 그는 그때 끝장을 보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남아 있다.
두 번째 회사를 그만두고 김씨는 1996년에 자영업을 시작했다. 두 번째 회사의 해외 구매를 대행해주는 일을 담당했다. 마침 대기업 물품이 필요해 4천만원으로 계약했는데 얼마 뒤 대기업에서 1천만원을 더 달라고 요구했다. “비즈니스 안 해도 좋은데 너희 버릇은 고치겠다고 그룹 감사실도 찾아가고 국회, 중소기업청, 기획재정부에도 민원을 넣었죠. 기재부 공무원이 ‘잘못하면 무고가 된다’고 그래서 제가 ‘네가 검사냐?’ 그랬더니 꼼짝을 못해요.”
결국 중기청이 중재를 섰다. 그는 갑질하는 큰 조직에 저항해서라도 변화를 이끌어내고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고 싶었다.
사업하면서도 풍족한 삶에 대해 경계하는 마음이 있었다. 당시 <동아일보> 김중배 논설위원의 강연을 들었다. “청와대에도 연탄아궁이를 둬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부자가 되더라도 가난한 사람의 삶을 느끼고 살아야 한다는 거였죠.”
2005년쯤 일본의 저명한 중국 문학 학자인 시라카와 시즈카(1920~2006)의 책 <한자 백 가지 이야기>(2005, 황소자리 펴냄)를 접했다. 그가 대학에 다니면서 형성했던 유물론적 사고와는 배치되는 내용이었다. 시라카와는 한자가 주술적 의례를 형상화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이 양반은 굉장히 검소하게 살았어요. 돈을 벌면 연구를 못한다 그러고.” 김씨는 시라카와의 관점에서 한자를 연구했다.
2015년에 김씨는 <동이 천자문>(아이엠북 펴냄) 책을 펴냈다. 천자문의 기원은 중국 양나라의 무제 시절로 올라가야 한다. 당시 무제는 죽을죄를 지은 주흥사(470?~521)에게 왕희지가 쓴 글자 중 1천 자를 골라 하룻밤에 시를 지으면 살려준다고 했다. 주흥사는 하룻밤에 천자문을 짓고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 김씨는 우리 민족이 속한 동이족의 관점에서 책을 쓰기 위해 단어의 어원에 관해 공부했다. 한자 어원뿐 아니라 영어의 어원인 라틴어와 그리스어도 공부했다. 친척을 뜻하는 ‘kin’에서 ‘kind’가 나왔다. 그래서 kind의 뜻이 친척에게 ‘친절’하단 뜻과 함께 같은 ‘종류’라는 뜻이 파생됐다. 그는 지인들과 매주 <동이 천자문>을 교재로 학습모임을 가졌다. 이듬해 쓴 책은 <한자, 우리의 문자>(아이엠북 펴냄)다. 다음해에 김씨의 거래 회사가 합병되면서 그는 사업을 정리하게 됐다. 그의 세 번째 책인 <지적인 어휘 생활>(2023, 틔움 펴냄)은 문해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주목받았다.
그는 한자와 영어에 대해 연구하면서 서양은 개인을 중시하고 동양은 공동체와 자연을 중시한다는 걸 알게 됐다. 서양 자동차 회사 이름은 대부분 ‘벤츠’처럼 사람 이름이다. 그러나 동양은 ‘정주영 자동차’라고 부르지 않는다. 또한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단어는 ‘생명’(生命)처럼 신체적인 ‘생’과 정신적인 ‘명’이 합쳐져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물질적인 ‘생’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생’을 다루는 의사가 최고의 직업이고 사람들은 온통 건강과 몸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소명을 뜻하는 ‘명’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이런 세태가 안타깝다.
김씨는 학교에서 배우는 단어에 대한 문제의식도 갖고 있다. 학생들은 영어의 ‘부정사’(不定詞)를 처음 배울 땐 그 뜻을 ‘긍정’의 반대로 오해를 많이 한다. 그러니 부정사보다는 ‘미정사’(未定詞)로 부르는 것이 학생들의 이해를 도울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교육제도를 바꾼다면 뭘 바꿔야 한다고 생각할까? “프랑스처럼 대입에 철학적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문제가 출제되고 학교에서도 그런 걸 교육하면 좋겠어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시골에 가서 내 식량은 내가 해결하면서 시라카와 선생의 문자학을 알리는 글을 쓰고 싶어요.”
그는 아침에 첫차를 타고 도서관에 가서 4시간 공부하고 4시간 운동하고 4시간 일하는 삶을 산다. 점심도 도서관에서 먹으니 최소한의 돈으로 살 수 있다. 그가 하는 운동도 자연을 느끼기 위해서 흙길을 맨발로 걷는 것이다. 그는 스승인 시라카와처럼 연구에 집중하는 삶을 살려고 한다. 김점식씨는 오늘도 삶의 소명을 다 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강정민 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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