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에게 AV 데뷔 권고까지…재밌으면 그만, 막가는 예능
일본 에이브이(AV∙실제 성행위가 담긴 영상물) 배우 오구라 유나가 한국 걸그룹 시그니처 멤버 지원에게 “몸매가 좋다”며 “일본에서 데뷔해달라”고 권한다. 지원이 난감한 듯 “한국에서 배우로 데뷔하긴 했다”고 말을 돌리자 이번에는 가수 탁재훈이 “그거랑 다르다”고 콕 집는다.
지난 19일 공개된 웹 예능 ‘노빠꾸 탁재훈’의 한 장면이다. ‘에이브이 배우’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선배가 도와주겠다”는 오구라 유나의 말과 탁재훈의 반응에서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라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20대 걸그룹 멤버에게 에이브이 배우 데뷔를 권하는 예능이라니.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성에 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빌미로 자극의 강도를 높이려고 에이브이 배우들과 협업하는 콘텐츠가 남발하면서 생긴 폐해”라며 “최근 웹 예능 콘텐츠들이 표현의 자유를 빙자해 방종으로 치닫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빠꾸 탁재훈’은 또 한국에서 에이브이물의 유포와 판매가 금지됐는데도 오구라 유나의 신작을 홍보하는가 하면, 오구라 유나에게 성행위를 연상케하는 동작을 유도하는 등 방송 내내 성희롱적 발언을 일삼고 성을 상품화하기 바빴다.
논란이 커지자 제작진은 공식 입장을 내어 “지원씨 본인과 소속사 관계자를 만나 사과했다”고 밝혔지만, 21일 방송에서 탁재훈이 다시 뭉친 카라의 멤버 니콜에게 “(카라는) 다 노땅들이다 (…) 뭐하는 거냐. 아줌마들끼리 모여서” 등의 막말을 던지는 내용을 여과없이 내보내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재미있으면 그만이라는 안일한 인식과 태도는 웹 예능만의 문제는 아니다. 티브이(TV) 에서도 헤어진 부부∙연인 사이를 상대의 입장은 고려않고 웃음의 소재로 써먹고, 뜬금없이 출연자의 뺨을 때리는(JTBC ‘아는 형님’) 등 ‘무례한 예능’은 넘쳐난다.
아동 학대에 가까운 일도 서슴없이 일어난다. ‘한 번쯤 이혼할 결심’(MBN) 지난 1월 방송에서는 정대세 부부가 가상 이혼하는 과정에서 9살∙10살 아이들에게 심리적인 충격을 주는 모습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정대세 부부는 이혼 협의서에 사인하고 남편이 집을 나가기 직전 이 상황을 두 아이에게 전했다. “엄마와 아빠가 집을 또 하나 샀다. 여기도 집이 있고 저쪽에도 아빠 집이 있다. 엄청 좋겠지?”라며 아이들을 이해시켰지만, 지금 이 상황의 예능의 설정인 걸 인지하기 어려운 어린아이들은 이내 고개를 저으며 “슬프니까” “가족이 더 좋아” “집 사지 마” 등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동종 업계 피디조차 “요즘은 모든 게 가상인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도 아역 배우의 심리와 정서를 살피는데, 부모의 이혼을 현실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큰 관찰 예능에서 어린아이들을 그런 설정에 참여시키는 걸 보고 놀랐다”고 했다.
학연∙지연 등 인맥 자랑과 개인의 부 과시도 무분별해지고 있다. 김희선, 이수근 등 진행자들이 매주 새로운 동네에 가서 친구들을 불러내는 ‘밥이나 한잔해’(tvN)는 출연자들의 인맥 자랑 프로그램이다. 지난 5월16일 ‘마포구’편에서 지인을 불러내지 못한 진행자 더보이즈 영훈이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진행자들이 지인을 불러내면서 “이 동네에 건물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노골적으로 미용시술과 성형을 공개하기도 한다. ‘런닝맨’(SBS) 5월19일 방송에서는 송지효가 수백만원하는 미용 리프팅 시술을 받고 붓기가 덜 빠진 상태로 등장했고, ‘미운 우리 새끼’(SBS) 지난 23일 방송에서는 이상민이 김종국의 형이 운영하는 병원을 찾아 턱살을 제거하는 장면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예능이 리얼리티로 흐르면서 평소 사적인 말과 행동들도 예능화되고 있다”며 “방송에서 지나치게 날 것 그대로를 보여주면 티브이 속 연예인의 화려한 삶이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어 자기 삶에 대한 우울감과 불행함이 커질 우려가 있다”고 했다.
예능이 갈수록 무례해지는 데는 매체와 플랫폼을 넘어 콘텐츠 경쟁이 심화한 탓이 크다. 한 방송국 간부는 “지금은 시청자 반응을 기다려주지 않고 재미없으면 바로 사라지는 시대”라며 “수많은 프로그램 중에서 어떻게든 눈길을 끌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라고 했다.
윤석진 교수는 “상대방을 희롱하고 학대하면서 만들어낸 웃음으로는 예능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며 “예능의 격을 높이는 표현 기법 개발은 게을리하면서, 말초적인 표현을 남발하는 방식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예능은 일회성 소모품”이라고 지적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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