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의사가 환자 먼저 생각해야"…세브란스 암환자의 분노
"어차피 끝낼 거 왜 자꾸 휴진하는지 모르겠어요."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암병원 앞에서 만난 70대 여성 이모씨는 격앙된 목소리로 집단행동에 나선 의사들을 성토했다. 이씨는 얼굴에 발생하는 두경부암으로 수술받았는데 뒤늦게 암이 전이돼 항암치료를 받고 현재 추적관찰 중이다. 이날 영상 검사를 위해 병원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쉰 목소리로 계속 기침하면서도 "의사가 환자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의사 집단행동에 대해 연신 불만을 쏟아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이날 세브란스병원 휴진에 대해 "용납할 수 없는 반인륜적 집단행동"이라며 "힘없고 관련 없는 환자생명을 볼모로 잡는 의사의 행태에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논평을 냈다.
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이 이날부터 '무기한 휴진'에 돌입했지만 병원 운영 상황은 이전과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내부 전광판에도 "세브란스병원은 정상 진료 중입니다"란 안내 문구가 노출돼 있다. 세브란스, 강남세브란스, 용인세브란스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둔 연세대 의대 교수 비상대위는 앞서 전체 교수를 대상으로 설문 조시를 실시한 결과 735명 중 무기한 휴진하겠다는 응답은 531명(72.2%)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애초 외래 진료가 없는 교수가 적지 않고 사전에 진료 일정을 조정해 큰 혼란은 발생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진료과별로 휴진 참여율은 달랐지만 비뇨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등 대다수 외래 진료실은 환자들로 붐볐다. 병원 로비에서 만난 한 70대 남성은 "비뇨기과 질환으로 검사를 받으러 왔는데 예약 날짜 변동 없이 편하게 진료받았다"고 말했다.
반면에 이날 오전 본관 5층 뇌신경센터(신경과·신경외과) 외래 진료실은 60여개 좌석이 휴진으로 모두 텅텅 비어 있었다. 외래에서 만난 한 환자는 "적어도 3분의 2는 항상 차 있었는데 오늘은 정말 없다"며 혀를 찼다. 다만, 중증·응급 환자나 약 처방이 필요한 환자는 예약 진료가 이뤄지는 듯 보였다. 몇 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혈관 약을 처방받으러 왔다는 70대 한 모 씨는 "몇 달 치 약을 한꺼번에 지어간다. 오전 11시에 외래 예약이 잡혀 병원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연세대 의대 비대위)는 전날(26일) 성명서를 내고 "기한이 없는 휴진을 현재의 혼란을 종식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결정했다. 현 의료정책의 심각한 문제에 대한 적극적 의사 표현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집단 휴진을 강행했다. 입원 병동과 응급실, 중환자실, 투석실, 분만실 등 필수 진료는 유지하되 경증 환자의 외래 진료, 비응급 수술과 시술을 하지 않거나 진료를 재조정하는 방식으로 '무기한 휴진'을 실행할 방침이다.
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은 "우리의 (무기한 휴진) 결정은 정부에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이라며 "최선을 다해 환자들을 보호하는 의료제도로의 변화를 끌어내겠다"며 집단행동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이미 의대 정원이 확정된 후 휴진을 실행하는 점. 서울대병원이 닷새 만에 휴진을 중단하고 삼성서울병원·서울성모병원은 유예했는데도 세브란스병원은 강행하는 점 등에 환자들은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암 검사를 받으러 온 이씨는 "의대 교수들이 휴가를 무한대로 쓰지 못할 텐데 무기한 휴진을 어떻게 할 것인지 알 수가 없다"며 "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환자 입장에서 너무 불안하다. 정부와 의사들이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환자는 물론 내외부적으로도 집단행동을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이강영 세브란스병원장을 비롯해 연세의료원 산하 각 병원장은 앞서 '존경하는 교수님들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서신에서 "집단 휴진이라는 방법은 우리의 가치에 반하고 해서는 안 될 선택"이라며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김국일 중앙사고수습본부 총괄반장(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수도권 주요 병원에서 또다시 집단휴진이 강행된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깝다"며 "대화를 통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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