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도 체험도 아닌 타인의 삶, 박보검이 경험한 것은('My name is 가브리엘')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4. 6. 2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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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name is 가브리엘’, 타인의 삶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사실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본다는 콘셉트를 가진 JTBC 새 예능 <My name is 가브리엘>은, <무한도전>을 봤던 시청자들이라면 단박에 떠오르는 아이템이 있을 게다. 2011년 1월 <무한도전>에서 '타인의 삶' 특집으로 방영됐던 아이템이 그것이다. 박명수와 정형외과 의사가 하루 동안 서로의 삶을 바꿔 살아보는 콘셉트였다. 당시 의사가 된 박명수는 재활치료를 받는 예진이라는 소녀와의 따뜻한 교감으로 의외의 감동을 선사했고, 정반대로 박명수 역할을 한 의사는 <무한도전> 클래식 버전의 원초적인 도전을 하는 모습을 큰 웃음을 선사한 바 있다.

타인의 삶을 살아본다는 콘셉트가 같고 또 그 출연자로 박명수 또한 들어 있다는 점이 과거 <무한도전>의 그 아이템을 떠올리게 하지만 <My name is 가브리엘>은 그것과는 또 다른 차별성을 느끼게 한다. 우선 스케일 자체가 글로벌 버전이다. 타인의 삶을 살아보는 대상을 국내가 아니라 전 세계로 넓혔다. 그래서 박보검은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박명수는 태국 치앙마이로, 또 염혜란은 중국 충칭으로, 홍진경은 르완다 키갈리로, 지창욱은 멕시코 과달라하라, 가비는 멕시코 멕시코시티, 덱스는 조지아 트빌리시로 날아갔다. 그 세계 각지에 사는 인물들의 삶을 대신 살기 위해.

또한 다른 점은 '바꿔 살아보기'가 아니라 주어진 타인의 삶을 출연자들이 살아보는 과정만을 집중했고, 어떤 삶을 살아봐야 하는가에 대한 사전 정보도 제공되지 않았다. 그건 그만큼 출연자들이 낯선 타국에 뚝 떨어져 아무런 정보도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리얼 상황을 보여줘야 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리얼리티쇼가 트렌드로 자리한 현 상황에 맞는 시도로 보인다.

하지만 가장 큰 차별점은 타인의 삶으로 들어온 출연자를 그 주변인물들이 전혀 이물감 없이 받아들임으로써 출연자가 온전히 그 삶 속에 깊이 동화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첫 회에 출연해 아일랜드 더블린에 사는 루리의 삶 속으로 들어간 박보검은 일정에 맞춰 나간 카페에서 오래도록 잘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친구들의 환대를 받았다. 또 박보검이 며칠 간 대신 살아야 할 루리가 꽤 큰 합창단을 이끄는 단장이고, 며칠 후 버스킹을 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래서 연습을 위해 합창단들이 다 모이는 자리에 나갔을 때, 너무나 긴장하는 박보검과 달리 단원들은 오랜 친구처럼 박보검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것은 태국 치앙마이에서 아내와 딸을 가진 우티의 삶을 살게 된 박명수도 마찬가지다. 낯선 여자가 다가와 '당신의 아내'라며 이제 6개월된 딸도 있다는 황당한 상황에 박명수는 당황하지만 차츰 그 가족의 삶에 동화되어 간다. 그 집에서 예쁜 딸을 안아주고, 목욕을 시켜주고, 재워주면서 그는 자신이 젊어서 바쁘다는 핑계로 실제 자신의 딸을 잘 안아주지 못했던 삶을 되돌아본다. 그래서 이 타인의 삶은 박명수에게는 그때 못했던 회한을 다시 채워넣는 의미를 갖게 됐다.

물론 낯선 삶 속에서 맞닥뜨리는 당혹감이 만들어내는 웃음들이 여기저기서 터지지만, 그보다 <My name is 가브리엘>은 그 삶 속에서 느껴지는 타인들의 따뜻한 환대와 공감이 주는 진정성과 감동에 더 무게를 뒀다. 합창단과 함께 영화 <원스>에 들어갔던 노래 'Falling Slowly'를 부를 때 박보검이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게 된 건, 그 노래의 화음 하나하나에 담겨진 이들의 배려와 환대가 감동을 줬기 때문이다. 박보검은 말했다. 그들이 잘하고 있고 잘 해낼 수 있다고 자신을 다독이는 것만 같았다고.

다만 조금 아쉽게 느껴지는 건 이처럼 진정성에 무게를 둔 방향성 때문인지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웃음의 포인트를 채워넣으려 마련한 관찰카메라 방식이 과연 효과를 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찍어온 영상을 관찰하며 데프콘과 다비치 이해리, 강민경이 더해 놓는 리액션들은 웃음을 줄 지는 몰라도 실제 영상들이 주는 몰입감을 깨기도 하는 면이 있어서다. 적절한 강약 조절이 필요하다 생각된다.

아쉬움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지만, 역시 <My name is 가브리엘>이 괜찮은 시도를 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건, 다름 아닌 '타인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느낀다는 그 지점 때문이다. 갈수록 파편화되어가는 SNS 시대의 우리의 얄팍한 관계들을 염두에 두고 들여다보면, 피상적으로만 지나치기 마련인 타인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거기서 공감하면서 동시에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건 배척이 아닌 환대가 필요해진 우리네 현실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가치를 갖는다. 세상에는 참 많은 이름들이 있고, 그 이름들 하나하나에는 저마다의 가치 있는 삶이 있다는 걸 이 프로그램이 보여줄 수 있기를.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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